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량한 갈색 땅 위에 세워진 작은 오두막의 침실 안, 한 늙은이가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늙은이는 눈을 감은 채 잠들어있었다. 죽은 듯이 고요하게, 하지만 정말로 죽지는 않았다. 늙은이처럼 낡은 오두막 안은 통조림과 식수, 약품, 탄약, 기타 잡다한 물건들로 가득 차있었다. 잠시 후 오두막에 무언가가 들어왔지만, 늙은이는 여전히 죽은 듯이 잠들어있었다.
오두막의 삐걱거리는 쇠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다 해진 수의를 뒤집어쓴 사람이었다. 침입자는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그곳이 마치 제집인 양 제멋대로 돌아다녔다. 그는 탄약 더미를 둘러보고, 약품 더미를 둘러보고, 통조림과 식수 더미를 둘러보았다. 그렇게 오두막 곳곳을 돌아다니다 그는 마침내 침실에 다다랐다. 침실의 침대 위에 누워있는 늙은이는 여전히 잠에 빠져있었다. 침입자는 방 안에 있던 적당한 의자 하나를 끌고 와서는 침대 앞에다 두고 그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늙은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텅 비어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점점 느려져가는 늙은이의 심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심장이 멎기를 기다리며 지금은 은퇴한 자신의 친구들을 떠올려 보았다.
역사상 두 번째 핵전쟁이 시작될 무렵 그들 네 명은 달리기 시작했다. 검을 든 사람이 앞장섰다. 그는 도시들을 향해서 달려 나갔고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들이 그의 뒤를 따라왔다. 폭격기들이 그 뒤를 따랐고, 전차들이 그 뒤를 따랐고, 병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검을 든 사람은 방사성 낙진이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유목민들의 왕처럼 도시를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였다. 그는 검을 치켜들고 광소를 지으며 말을 몰았다.
그 뒤를 이어 왕관을 쓴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 나갔다. 알과 구더기를 잔뜩 품고 있는 파리 떼가 그의 뒤를 따랐다. 그것들은 썩은 물이 흘러나오는 시체더미를 찾아다니며 알과 구더기를 낳았고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 사람들은 항생제와 소독약을 찾아 헤맸지만 불타버린 세상에서 그런 것들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고 설령 찾았다고 해도 충분하지가 못했다. 왕관을 쓴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화살을 마구 쏘아대면서 온 세상을 정복할 기세로 질주했다.
그 뒤를 이어 비쩍 마른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 나갔다. 그는 달려 나가면서 논과 밭을 불태우고 헤집었다. 곡식은 썩어갔고 가축은 말라죽어갔다. 그는 주워온 밀 한 줌, 보리 한 줌을 씹으면서 말을 몰았다. 그가 지나간 곳은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 나지 않았다. 먹을 것을 미리 쟁여두지 못한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서 통조림과 생수를 빼앗기 위해 서로를 죽이거나 흙과 모래를 씹어 먹었다. 비쩍 마른 사람은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먹을 것과 똑같은 무게를 가진 것을 사람들에게 요구했다.
그 뒤를 이어 수의를 뒤집어쓴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 나갔다. 그는 한 손에 쇠스랑을 들고서 먼저 달려 나간 셋을 따라다녔다.
사람들은 불타버린 세상에서 어떻게든 계속 살아보려 노력했다. 서로 힘을 모아서 집을 짓고 농사도 지었다. 하지만 방사성 낙진으로 뒤덮인 흙과 물은 집을 짓고 농사를 짓기에는 부적합했다. 결국 사람들은 흩어지고 그저 죽어갈 뿐인 야만인이 되었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견디고 견디다가 결국 미쳐서 야만인이 되거나 그러기 전에 야만인들에게 죽었다. 그리고 야만인들도 죽었다.
세상이 제집 앞마당인양 헤집고 다니던 네 명은 이제 할 일이 끝나갔다. 사람들이 거의 모두 죽어 전쟁은 사라졌다. 사람이 없는데 전쟁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역병도 사라졌다. 누군가가 병에 걸려도 그건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퍼지지 않았다. 그저 아무도 없는 황무지를 홀로 떠돌다가 죽을 뿐이었다. 기근도 사라졌다. 먹을 것을 모아두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모아둔 사람들도 대부분 그것을 다 먹어버렸거나 야만인들에게 빼앗기고 죽었다. 먹을 것을 빼앗은 야만인들도 결국에는 굶어 죽었다. 거의 모두가 죽었다.
할 일이 모두 끝난 네 명이 할 일은 이제 하나였다. 은퇴. 그게 전부였다.
검을 든 사람은 싸움 끝에 한 사람만 남기고 전멸해버린 두 작은 야만인 무리의 한 가운데에 말을 세워두었다. 그리고 말에서 내려 손에 들고 있던 리모컨을 조작했다. 그러자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그리고 유일하게 작동하는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이 어디선가 발사되었다.
왕관을 쓴 사람은 온 몸이 종기와 물집으로 뒤덮인 한 사람을 따라다녔다. 그 사람은 썩어가는 살을 흘렸고 그 안에는 병균과 기생충들이 꼬물거리며 건강한 사람들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었고 결국 그것들은 햇볕에 말라 죽었다. 잠시 후에는 그 사람도 말라 죽었다. 그리고는 말에서 내려 땅바닥에 구덩이를 파서 거기에 시체를 집어던졌고 자기도 그 안에 들어갔다.
비쩍 마른 사람은 배가 고팠던 한 사람을 따라다녔다. 그 사람은 모아둔 먹을 것이 오래 전에 바닥이 났고 수십 년 동안 숨어살던 방공호에서 기어 나와 주린 배를 채워줄만한 것을 찾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오직 방사능과 먼지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사람은 있지도 않은 희망을 찾아 그곳을 떠났지만 결국에는 쓰러졌다. 걸을 힘도 없었다. 비쩍 마른 사람은 말에서 내려 쓰러진 사람 옆에 앉았다. 굶어죽을 때까지.
모두가 죽었다. 한 사람만 빼고. 그 사람은 전쟁을 피했고, 역병을 피했고, 기근을 피했다. 황량한 갈색 땅 위에 세워진 작은 오두막 안에서 그 사람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은 늙은이가 되었고 결국 죽음이 찾아왔다.
마침내 늙은이의 심장이 멎었다. 수의를 뒤집어쓴 사람은 의자에서 일어나 오두막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오두막 앞에 세워둔 자기 말을 지나쳐, 조용히 은퇴했다.
------------------
쓰다 보니까 무진장 난잡해졌지만 일단 올려봄.
4차 세계대전 이후가 배경인가 봐요
그나저나 전차가 있는데 말을 타고 검을 들고 다님니까
묵시록의 네 기사를 말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팩트) 폴란드는 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