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그런 계절이었다.
잎은 제몫을 다하고는 깔끔하게 물러나 땅을 아름답게
물들이며 차근차근 덮여갔던, 그런 계절이었다.
낙옆은 떨어져가며 땅을 감싸앉았지만
더이상 낙옆이 떨어지지 못하고, 빈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마저
대지를 돌보지 않겠다 선언할때, 땅을 보듬아 앉았던 낙옆마저 눈에 묻혀 제 색을 잃고 하얗게 물들여져갔다.
겨울은 그런 계절이다.
나는 내가 눈을 뜬 이유를 알지못한다.
더이상 햇빛도 알람도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어떠한 요인이
나를 이토록 모질게 깨우는가하고 예측하는건 좋은 경험이
될 수 없었다.
특히 하루를 시작하는 지금은 더더욱.
잠에서 덜깬건지 아님 추위에 몸이 눌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방금일어난 나의 몸은 여전히 둔하여 마치 타인의 몸과
같다고 순간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 회색빛의 공간을 둘러보았고
원통형의 드럼통이 더이상 온기가 아닌 한기만을 내뿜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뼈를 찌를듯한 냉기, 그것이 나를 일깨운 범인이었다.
자기전에 넣어둔 장작이 벌써 제 몫을 끝낸상태로 덩그러니
담겨져있는 모습은 더이상 나에게 온기를 전해주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승강기는 이미 작동을 멈추었기에 계단으로 향했다.
서서히 움직일수록 잠이 깨지고 몸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몸은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고 나는 이러한 변화를 겪으며
내가 움직이고 있는 이 몸이 나 자신의 몸이라고 몇번이나
속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계단은 위로올라갈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단점이 있듯이 양 옆으로 난 기다란
철제 손잡이는 결코 건들어선 안되었다.
사람의 손길이 끊겨 잡기에 너무나 차가워진 손잡이는
사람의 손길을 결코 놓지않았기 때문이었다.
한층 한층 올라가다 보이는 손들, 말 그대로 손들만이
손잡이를 움켜쥔 상태로 당당하게 목을 높이 치켜새우고 있었고 이러한 예시들은 나에게 무언의 경고를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손잡이는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옥상의 철문에 비하면 말이다.
문은 반쯤 열려있어 바람을 막지도 그렇다고 눈을 막는것도
아니었지만 뭐가 그리 잘났는지
경첩의 나사가 반쯤 풀려있음에도 문은 멀쩡하게 서있었다.
서커스의 사자가 불이 붙은 원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을 상상해보아라.
사자는 불이 붙은 원과 접촉하면 안되지만 그렇다고 그 원안으로 가지 않아도 안되는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나 또한 비슷한 상황이었다.
철제 문틀과 문에 접촉하지 않은체 틈으로 통과하려 시도하는
나의 모습은 분명 위의 예시를 이해한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렇게 올라간 옥상에서 내가 볼 수 있는 색은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얀색.
비유적이거나 상징적인 표현은 아니다.
그렇다고 은유적인 표현은 결코 아니다.
정말로, 말 그대로, 모든것이 하얗게 물들여져 있었다.
하늘을 찌를정도의 마천루도, 그 밑의 건물들도 이제는
그저 실루엣만 남아 자신의 위치와 형태만을 알릴 뿐이었다.
눈이 더 쌓여 그 실루엣조차 약간 희미해진걸 제외한다면
어제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나와 이 도시는, 끝없이 내리는 눈에 파뭍여 그대로 매장되어야 하는가? 그것이 결말이란 말인가?
억울했다. 슬펐다.
나는 갈곳을 잃은 이러한 감정을 입밖으로 내뱉으며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소리마저 돌아오지 않았다.
모든것을 먹어치운 눈이라는 괴물이, 그 저주받을 백색괴물이
소리마저 먹어치운 것이었다.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는 웃기는 일이었다.
아니, 가장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인류가 만든 가장 뜨거운 무기가 휩쓸고 지나간 곳에
열기가 아닌 냉기만이 존재하다니.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그 원리는 알 수 없어도 참으로
괴상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어느세 몸이 무거워졌고
빠르게 몸을 털자 하얀가루가 옷에서 떨어져 나왔다.
저 식성좋은 녀석이 이 도시로도 모자라서 나 또한 자신의
위장에 넣으려고 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인데, 내가 옥상을 떠난것은 결코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을것이다.
나는 어릴적 보았던 책을 기억한다.
예절에 관련되었던 것이었던 그 책은 나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학교에서는 교복을 일상에서는 단정한 복장을
장례식에서는 검은 정장을 입어야 한다고.
하지만 기억을 아무리 쥐어짜내도 얼어죽은 도시를 성묘할때
입어야 하는 옷이 무엇인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이상 필요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고 여긴 그 책은
몇일전에 던져버렸지만 어쩐지 후회가 든다.
지금 옷을 입으며 그 책은 아직 땔감으로써의 가치는 있다고
다시금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두꺼워진 몸을 이끌고 창문으로 몸을 날렸고
눈과 두꺼운 옷이 나를 받쳐주었다.
아직 내 몸이 멀정하다는것을 즐기며 주변을 둘러볼때, 작은 실루엣이 보였다.
건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하지만 사람, 사람의 형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알맞은 크기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내가 헐래벌떡 그에게 뛰어가는 것도 결코 이상하다
생각할것은 아니었다.
눈을 털고, 털었다.
나는 그가 살아있는것을 보고싶었고, 그래서 그에게서 눈을
쫓아낸거지만...
어째서 죽은자가 눈을 뜬 상태로, 허리가 펴진체 서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하얀괴물은 만족하다는듯이 쉽사리 물러났지만
나는 그의 몸을 건 투쟁에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진 상태였던 것이었다.
이건 반칙이다, 이건 부당하다.
내가 이렇게 외쳐보아야 뭐하는가?
공정한 심판과 규칙이 자취를 감춘 곳에서는 시간이 심판이자
규칙의 임무를 떠맡았기에 패자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나야한다는 법은 없었기에
하나의 조각상을 감상하듯이 그의 몸을 지켜보았다.
그의 몸은 생기를 잃었지만 그렇다고 형체를 잃은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도시 또한 그러했다.
어중간한 모습으로 형채를 지키며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인류는 사라졌고, 문명은 망했지만 그 흔적만큼은
기이할 정도로 멀쩡하게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눈만, 저 깊게 쌓인 눈만 치운다면 이 잠든 도시는 다시금
일어나서 한때의 활기차던 봄으로 돌아갈 수 있을것이다.
살기위해선 때론 모순적인 일들을 행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것 말이다.
살기위해 죽어버린 도시 안으로 들어가다니.
죽음속에서 삶을 이어나가려는 이러한 행위는 참으로
모순되거나 기이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문은 이미 파묻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고
그렇기에 창문이 문의 역할을 대행해주었다.
가방에서 꺼낸 나무망치는 창문이 문의 역할을 대행해주는데
크나큰 도움을 줄것이었다.
'쨍!'
창문이 깨지고 입구가 트였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낸 입구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으로 먼저
들어가는것은 내가 아니었다.
눈, 이번에도 눈이 그 작은 몸을 이용하여 먼저 들어가고는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리는 깨져서 창문을 이루지 못할것이었지만
여전히 문틀에 남아있는 조각들은 무시못할 위험이었다.
바람이 점점 거세졌기에 바람을 피해서, 또 먹을것을 위해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바람이 내몸을 밀었지만, 다행이도 쓰러지지는 않고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먹을것은 없었다.
이 곳은 음식점도, 가계도, 가정집도 아니었다.
쓸모없는 종이다발과 위험한 금속쪼가리들이 모여있는
은행, 은행이었다.
땔감은 구했지만, 나는 무엇보다 음식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내가 알기에 은행은 가장 음식이 없는 곳이었다.
내가 욕설을 내뱉으며 이 곳을 빠져나갈때 내 몸이 앞으로 쏠렸다.
그건 기습이였다.
나는 어찌할 틈도 없이 완전히 쓰러져 깨진 유리조각에
내 배를 맡길 뿐이었다.
유리조각은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은채 내 복부를 유린했고
나는 그저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괴로워하였다.
나를 민 바람이 창문사이로 지나가며 비웃는것같은 소리를
내었다.
비열하고, 더러운 소리였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배를 보았을때, 그곳에는
오직 붉은색만이 존재하였다.
큰 상처를 입고도 여기까지 오다니, 이것은 기적일까?
아니, 기적은 없었다.
기적이 있었다면 내가 이런꼴을 당하지는 않았겠지.
얼어붙은 그가 보이고, 또 나의 집이 보였지만
둘다 갈 수는 없을것 같았다.
그에게 다가가서, 그에게 기대었다.
붉은 피가 온기를 가지고 빠져나가고 있는것을
나는 더이상 막을 수 없었다.
나를 오랫동안 괴롭히던 추위가 내몸을 완전히 감쌌고
백색 괴물과의 싸움에서 내가 결국 무릎을 꿇은것이다.
내가 패배를 선언했으니, 승자는 모든것을 삼키고는
자기 자신마저 먹으려 할 것이었다.
피가 땅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왠지 눈이 잦아든 기분이 들었다.
승리를 즐기려는듯, 느리고 천천히 내 몸을 뒤덮는 눈에 대해서 나는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추워, 봄이 오면 나를 깨워줘."
내 앞에 서있지만 나를 보지 않는 그에게 하는 말일까?
승자인 눈에 대한 패자의 비굴한 발언일까?
나조차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저 봄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이상하거나 부족하거나 고쳐야할점은 댓글로 남겨줘
포붕이들 항상 고맙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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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묘사가 그리 긴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럼 분위기 미쳤네
고맙다ㅠㅠ, 혹시 부족한부분은 없음? - dc App
이런 단편에서는 알기 힘듬. 일단은 문체나 문장전개에 흠은 없는듯..장편계획은 없누
장편은 필력이 후달려서 가능할지 모르겠다ㅠㅠ - dc App
나도 후달려도 쓰자너
어..음 거짓말은 하지말자 - dc App
아... 이게 단지 내 생각인데 초반 시작은 산문시인가? 라고 느꼈어. 두번째 문단을 보면서 아 소설이구나 라고 깨달았는데... 음.. 문제는 문장을 너무 예술적이고 순수문학처럼 쓰려는 노력의 흔적이 보여서 상황설명이 직설적으로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다는거야. 좀 직선으로 가야할 표현의 길마저 모두 구불구불 꼬아서 차를 몰고 언덕을 힘겹게 올라가는 느낌?
아ㅠㅠ 그럼 어떻게 고쳐야 할까? - dc App
잘 쓰려는 노력이 문장을 너무 순수문학처럼 예술적 표현으로 가득 채워서 좀 직선적인 표현도 섞어서 서술한다면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올것 같다.
ㅇㅋ 노력해볼께, 고마워 - dc App
기름진 음식만 먹으면 느끼하니까 중간중간 김치도 먹어야 하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