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자연과학이라 불릴만한 학문이 이 땅위에 남아있을적,나는 과학잡지에서 누군가가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라 생각했다는 이론을 읽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 지구,어머니 자연같은 표현을 숱하게도 봐왔던 것같다.
지금의 나는 그 말도안되는 소리를 자랑스레 책에다 적어두고 스스로를 명필이라 자화자찬했을 그 학자들에게 한마디 해주고싶다.
만약 자연이 인류의 어머니라면 인류는 대단히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난거라고말이다.
세상 어떤 어머니가 미치지않고서야 자기 자식을 요람채로 냉동고에 쳐박아 얼려죽이겠는가?
단언컨데 그것은 자신의 팔을 잃을 각오로 잘라낸 소매자락으로 아이가 얼어죽는것을 막을,이시대의 모든 어머니들이 품은 숭고한 뜻에 대한 모욕이며 모성애라는 가치에 대한 조롱이나 다름없다.
"피고는 비과학적이며 민중을 우롱하는 거짓을 퍼뜨림으로써 사회에 혼란을 가져온 사실을 인정합니까!"
"자식이 아무리 배은망덕하기로서니,어머니를 살해하고 그 노여움을 멸시하는구나! 어찌 우리에게 시련을 내리는 어머니 자연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하는것이냐!"
처형대의 늙은 남자는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으나 민중은 그의 말을 듣지않았다. 사람들에게 광신도의 처형은 그저 지루하며 썩 잔혹하지도 않은 지루한 행사에 지나지않았으며,며칠전 일어났던 에코 파시스트들의 공장 테러덕분에 '자연'따위를 입에올리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극에 치달은 상황이었다.
"피고는 스스로의 혐의를 인정합니까!"
"나에겐 죄가 없다,있다면 너희들과 같이 부모의 은덕을 알지못하는 인간으로 태어난것이 나의 죄다!"
"노망난 새끼,끝까지 헛소리하다 뒤지겠네."
"빨리 레버나 당겨! 출근시간까지 얼마나 남았다고 시간을 끌고있는거야!"
"아직 늦지않았다! 너희들이 마귀의 자식들이 아니라면 어서 사악한 굴뚝을 막고 회개해라,회개해라! 어머니는 아직 자애로우시..."
-덜컹—
목이 매달린 노인은 발판이 내려가 자유낙하하는것과 동시에 밧줄에 목이 부러져 말을 멈추었다. 컥,컥대는 소리와 함께 덫에 걸린 쥐처럼 두어번 몸을 움찔거리던 노인이 힘없이 축 느러지자 공무원으로 보이는 남자 두명이 매달린 노인의 시체로 걸어가 힘없이 늘어진 몸을 발로 차서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서둘러 죄수용 방한복을 벗겨갔다. 앙상히 뼈만남은 노인의 몸은 마지막으로 속에 남아있던것을 쏟아내고 힘없이 바람에 떠밀려 흔들거렸다.
"명심하세요,앞으로도 우리 도시의 화합과! 단결을 해치는 이런 족속들은 중범죄자로..."
재판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민들은 각자 연장을 챙겨들고 일터로 떠나갔다. 권위를 무시받은 재판장은 여전히 그자리에 엄숙한 얼굴로 서서 떠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죽지못해 사는 도시의 빈민들에게 사람의 죽음은 그다지 공포스러운 장면이 되지못했고 공개처형은 그렇게 권위와 힘을 잃어갔다. 그도 그럴것이 여태껏 처형으로 매달린 자들이라곤 도시에 들어와 자연의 징벌따위를 외치고 다닌 정신병자들뿐이었으니,하루벌어 하루먹고사는데 급급한 이들은 그들처럼 자연이 어떻니하는 "고상한 철학"을 가질 여유따윈 없었으며,자연스레 스스로 도시의 질서를 어지럽힌 죄로 공개처형장에 매달릴 중죄인이 된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할수없는 일이 되었다.
그것은 안전반의 작업요원으로 일하며 그들보다 조금 나은 사정을 가진 나도 마찬가지였다. 광장옆에 붙어있는 우리집은 창밖으로 처형장면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곳이었는데,이상한 취미를 가진 누군가에게는 정말이지 따로 없을 명당이었지만 네살배기 아들을 가진 나에게있어 공개처형이란 그저 자녀의 정서발달에 좋지못한 영향을 미칠 불건전한 행사에 불과했다.
"오늘도 지하근무인가요?"
"그래,망할 지하근무지."
'...오늘 최고 낮기온은 영하 40도로...'
나는 매달린 노인의 시체가 창문 너머로 보이는것이 불쾌해 커튼을 닫아버리고 식탁에 앉았다. 유통기한이 언제 지났는지도 모를 통조림 베이크드 빈과 감자 가루가 섞인 토스트 빵,말고기 소시지와 블랙 푸딩이 이가 나간 접시에 담겨 향기로운지 역겨운지 모를 냄새를 풍기고있었다.
'God save our gracious queen-long live our—'
텔레비전에서는 매일 아침 정부에서 송출하는 폭설 피해 현황과 일기예보가 끝나고 국가가 흘러나오고있었다. 나는 도시 내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펼쳐들고 국가를 비웃으며 코웃음쳤다.
"베스가 아직도 우리 여왕이었나? 버킹엄이 아니라 그리스에 가있다던데!"
"그래도 여왕폐하께서 살아계셔니 우리가 아직 연합 왕국(united kindom) 국민이라 자부할수있는거 아니겠어요?"
"도시단위로 쪼개져서 석탄가루 마시고 사는데 연합 왕국이라,거창하군."
"나이젤,제발."
"미안해."
"뼛속까지 영국인인 당신한테서 블랙 유머를 빼앗고싶진 않아요,하지만 지금은 식전기도가 먼저잖아요."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 신문을 내려놓고 두손을 모았다.
"면사포 가지고올게요."
"리지,제발. 식전기도잖아! 우리집이 성당도 아닌데!"
아내인 리지는 아일랜드 출신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성공회 신자인 나와 안맞는것은 아니지만 어려울때일수록 돋보이는 그녀의 신앙심은 가끔식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철저했다.
"아서,너희 엄마 오기전에 먼저 먹자."
나는 면사포를 찾으러간 리지가 내려오기전에 서둘러 포크를 들어 접시위의 음식을 입에 쓸어담고 차를 들이키며 아침식사를 간신히 목구멍 너머로 넘겼다. 안방에서 브리짓이 면사포를 찾아 내려올때 나는 이미 현관에서 방한 점퍼를 입고 머플러를 두르고 이중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다.
"나이젤!"
"오늘 출근이 7시까진걸 깜빡했어,미안해 여보!"
"지금 이미 7시에요. 7시 반까지인걸 내가 모를줄 알아요? 또 블랙 푸딩 남겼죠! 나이젤,당신은 어떻게 하는짓이 아서랑 똑같을수 있죠?"
"엄밀히 말하자면 아서가 날 닮은거지,리지."
아내는 체념했다는듯 다시 주방으로 걸어들어가버렸다가,다시 황급히 계단을 뛰어내려와 방한 유리문을 두드렸다.
"조심히 다녀와요."
"조심히 다녀올게."
리지는 하나밖에 남지않은 팔로 내 목을 끌어안았다. 나는 아서를 살리기위해 희생한,나머지 한쪽 팔이 있던 리지의 허전한 어깨를 애써 외면하며 계단만 바라보았다. 매일 아침이 이랬다.
"...빨리 올라가봐."
나는 리지를 되돌려 주방으로 올려보내고 돌아서서 소총을 꺼내 모포로 감싸기 시작했다.추운 날씨에 가스관이 얼어붙어버리거나 격발 불량이 밥먹듯 일어나는 일을 막기위한 조치였다. 육군 예비역(Army Reserve) 시절 지겹도록 손에 잡아보고,지금도 모포로 감싸 등에 둘러맨 L116 소총¹은 캐나다제 자동소총이었지만 기대와 달리 추위에 그닥 강하지않았다.
"니미 씨발. 좆같이 춥겠군."
벽에 붙여둔 디지털 온도계의 외부온도는 영상 98도라는 말도안되는 수치를 가리키고있었다. 바깥 온도가 진짜로 98도인건 당연히 아니고,추운 날씨에 온도계가 맛이 가버린것이다. 나는 집안에서 들리지않게 작은 소리로 욕을 내뱉고 머플러를 콧잔등까지 끌어올려 얼굴을 덮고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탄광 사무소로 향했다.
"나이젤,아침에 소시지 먹어봤나?"
"먹어봤지,데이비스. 혹시 말 방광이라도 갈아넣었나? 냄새가 지독하더라고."
"많이 늙은 놈이라 그럴거야. 오래 버티다 죽은 놈을 도축했는데 향신료는 부족하니 어쩔수 없겠지."
"부족하기는,돈많은 새끼들이 다 가져다 자기네 목욕물에 풀어넣어버려서 없겠지."
가는 길에 같은 안전반의 동료를 만난 나는 아침에 먹은 소시지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에 대해 불평했다. 신선한 고기가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귀했다. 털가죽을 얻기위해 키우는 양과 깃털을 뽑는 거위,오리같은 가금류는 늙어죽기 직전에야 도축되어 시장에 나왔고,소시지에 쓰이는 고기들은 대부분 수레를 끌지못할정도로 쇠약해진 말따위를 잡아다 썼다. 양껏 먹을수있는 고기는 키우는데 공간이 크게 필요하지않은 닭과 쥐뿐이었다.
"그래도 오늘 빵은 감자가루가 좀 덜 들어갔잖아."
"네가 받은 빵은 그랬던 모양이지? 아침에 일어났더니 주방에서 해쉬 브라운 냄새가 나던데."
채소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않았다. 석탄을 때워 얻은 전력의 대부분이 지하농장의 인공태양을 밝히는데 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소의 생산량은 터무니없었다. 밀,잎채소,당근,모든것이 부족할때 그나마 풍족한건 빙하기의 날씨에서도 적응해 살아남은 감자뿐이었다.
"오늘은 발파작업이 있나?"
"아니,아직은 채굴량이 안정적이니 굴을 더 넓히진 않을것같아. 300m 정도나 내려가서 캐다 나오겠지."
"그랬으면 좋겠군."
"너도 좀더 이쪽으로 걸어."
데이비스는 내 팔을 잡고 길바닥을 지나는 납작한 네모 모양의 증기 파이프 가까이로 당기자 발목 부근에 뜨끈한 열기가 전해져왔다. 하루에도 3층 건물높이로 쌓이는 눈을 녹여 길이 막히지않도록하기 위해 도시의 모든 도로에는 크고작은 증기 파이프가 바닥에 깔려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증기파이프를 보면서 석탄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더라."
"그래,이제 석탄 없이는 못살아가겠지."
나는 씁쓸한 기분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시커먼 연기들이 기둥을 이루어 잿빛일색인 하늘로 올라가 흩어지고 하늘을 더 진한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빨리 가자. 늦으면 또 작업반장이 지랄할거야."
"청어대가리처럼 생긴 망할 노친네."
나는 머릿속에서 지금도 지하에서 미친듯이 돌아가며 전기와 증기를 생산해내고있을 화력 발전소와 노망난게 분명한 작업반장의 얼굴을 번갈아 떠올리며 탄광 사무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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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L85A2 소총의 캐나다 면허생산형. 극지대에서의 작전을 위해 여러가지 변경점을 갖췄음.
프롤로그쯤 되는 부분.
지적 질문 욕설 가리지않고 반응은 다 받음.
배경 설정같은거 물어봐도 좋음.
문학 칸으로
개추, 대화문이 술술 읽힌다 - dc App
배경이 영국이야? 시대는?
중동이 핵전쟁으로 망하고 석유산업이 무너져버린 현대가 시대적 배경임. 공간적 배경은 영국 랭커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거야?
주인공과 석탄 회사와의 갈등?
좋다 글 잘쓰네 근데 모바일로 보니 문단이나 이런게 글이 잘안들어온다. 좀 더 문장간 간격을 늘려줄수있어? - dc App
공앱으로 글쓰는데 쓸때랑 업로드할때랑 여기저기 조금씩 달라져서 나오더라; 가독성은 개선할 방법을 찾아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