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백색 사막의 이동도시'에서 이어집니다.




좋은 소식이 하나 있고, 나쁜 소식이 하나 있다.

일단 좋은 소식은 몰아치던 눈폭풍이 멈추고 사람들이 더 이상 얼어죽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나쁜 소식은 그 여파로 인해 이동 도시의 보조 엔진 하나와 8줄의 무한 궤도 중 하나가 파손되었고, 그걸 수리할 때 까지는 움직일 수 없다는 것.

다행히 도시의 주 동력인 원자로는 무사하지만 상황은 썩 좋지 못하다. 본래 16개여야 할 보조 엔진 중 남아서 작동하고 있는 것들은 총 7개, 여기서 또 하나가 줄어든다면 도시 내부의 전력 소요를 원자로가 좀 더 짊어져야 한다.

필연적으로 원자로의 수명 단축이 동반되리라. 안 그래도 500년은 묵은 녀석이라 잔고장도 많은데 여기서 수명이 더 준다면 심히 곤란하다.

"자칫하면 여기서 몇 년 정도 버티다가 결국 원자로가 망가져 다 얼어 죽을테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기껏해야 같이 껴안고 버티다가 얼어죽는 정도? 사냥 부대가 부품을 찾아올 때까지 절실히 기도하는 것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만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던 도중. 벽에 설치된 전성관에서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2년 전의 함장 취임식 때 이후로는 처음 듣는 목소리, 옛 시대의 폐허와 인간을 싣고 움직이는 도시의 왕. 이번 세대의 함장이다.

"..안녕하십니까 승조원 여러분, 갑작스러운 눈폭풍우에 많이들 놀라셨을겁니다. 하지만 걱정 마시고 생업에 종사해 주십시오. 도시는 안전합니다."

이름과 성씨는 모른다, 도시가 처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함장의 일족이라 불렀을 뿐.

"..그러나 좋지 못한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폭풍우로 인해 온실을 가동할 전력이 부족해지면서 배급량을 줄이기로 결정되었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기존의 3분의 1의 양만 배급될 것입니다. 만약 정량을 배급 받고 싶다면 사냥병 부대에 지원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동공이 흔들리는게 뇌에서 체감되고 있다. 배급량이 준다고? 이런 젠장, 안 그래도 부족한 식량인데 여기서 더 줄인다면 강아지를 키우기는 커녕 역으로 삶아먹어야 할 판이다.

"별 수 없군, 사냥병에 지원하는 수 밖에."

결심은 빠르게 이루어져, 나는 문을 박차고 나가 도시의 2층에 위치한 사냥병 부대의 모병소로 향했다.

...

"..다음!"

배급이 줄어든다는 소식을 참을 수 없었던 사람은 꽤 많았다. 사냥병 부대의 지원자들이 넘쳐나 모병소 앞에 대략 10m 가량의 줄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냥병 부대의 조건은 꽤나 엄격해서 갑판 경비병 출신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탈락했고, 얼마 가지 않아 내 차례가 다가왔다.

"이름과 생년월일."

"얀, FP 482년 2월 17일."

"복무 이력이.. 있군, 갑판 경비대 출신인가?"

"예."

"통과."

아무리 방한 마스크를 쓰고 있다 한들 입을 열면 안이 시리다. 그런 고로 대화는 짧게 토막난 단문으로 진행되었고, 면접을 맡은 사냥병은 내가 갑판 경비대 출신이라는 것을 알자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무심한 목소리로 '통과'를 외쳤다.

"1시간 30분 뒤, 선수 갑판으로 집합해라."

이 말도 뒤에 덧붙여서 말이다, 그리고 시간은 빠듯하게 주어졌다. 나는 서둘러 3층으로 올라가 갑판 경비대의 총기 거치대에 있던 내 소총과 장구류를 챙기고, 전열 조끼와 소총의 열선 재킷에 사용할 납 전지를 등에 짊어메고선 선수 갑판으로 뛰어 올라갔다.

"4번째, 빠르군."

빨리 뛴 보람이 있었다. 사냥 부대의 신규 지원병 중에서는 4번째로 빠르게 집합 장소에 도달한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눈 앞에 서 있는 상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테고 이번 임무에서 살아남는다면 지휘관 재량에 따른 배급을 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5번째 , 6번째 , 7번째 , 8번째 , 9번째 , 10번째.'

내 뒤로 6명의 신병들이 오고 나서야 도착 순번을 부르는 목소리가 없어졌다. 그렇게 갑판에 모인 병력은 총 10명, 1개 분대 정도다. 고작 이정도 병력으로 갑판 경비 이외의 무얼 할 수 있나 생각하고 있던 도중. 명령이 하달되었다.

"좋아, 다 모였군. 탈영병은 없어서 다행이야. 임무 시작도 하기 전에 추적해서 족치는 것도 일이거든. 각설하고, 오늘 임무는 간단하다. 스노모빌을 타고 매머드 사냥이다."

매머드.. 분명히 책에서 본 녀석이다. 지금은 멸종된 코끼리의 조상이라고 했었나, 정작 그 놈의 후손은 대한파로 다 죽었는데 조상만 다시 살아나 움직이는게 참 웃기는 꼴이다. 

아무튼, 매머드는 훌륭한 식량 공급원이다. 하나만 잡아도 10t에 달하는 지방과 고기를 얻을 수 있는데 맛도 썩 괜찮은 편이고, 게다가 잡기도 쉬워서 사냥 임무를 거부할 이유도 없다. 나는 소총을 꼭 쥐어잡았다.

...

갑판 위에 주차되어 있는 스노모빌은 총 3대, 이동 도시가 아직 병기였던 과거에 실려 있었던 장갑차를 설상용으로 개조한 것으로 상부에 50구경 중기관총이나 뇌관식 작살이 달려 있는 반궤도형의 4인승이다.

경비대 시절에 몇 번 보기는 했으나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고, 그것들은 갑판 위에 설치된 큼지막한 가설 크레인이 내린 와이어에 연결되어 있었다.

"조는 1개 조를 제외하고선 4명씩, 선임 1명과 신병 2명으로 나눈다. 그리고 각 조에 배속될 인원 차출은 선임병에게 일임하겠음. 싹수 있는 놈들 가로채겠다고 괜히 싸우지들 말고, 이상이다."

방금 전에 도착 순번을 센 남자, 아마 이번 작전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귀찮다는 투로 일장 연설을 끝마치자 인상 험악해보이는 - 어차피 방한 마스크에 가려 눈 밖에 안 보이지만 - 선임병들은 서로 쑥덕거리더니 각자 자기 조에 차출된 인원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1번 조, 한스 , 오스카 , 얀 , 해리스."

"2번 조, 안드레이 , 조르지오 , 민호."

"3번 조, 토드 , 마사미츠 , 히데오."

나는 1번 조였다. 사람이 가장 많은 조였기에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사람이 많은 만큼 고기의 분배를 다른 조보다 적게 받을까봐 내심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조를 배정받고서 생각만을 계속해서 굴리던 도중, 스노모빌에 타 있던 내 몸뚱아리가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크레인이 스노모빌들을 들어올려 지상에 내려놓으려 한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지를 밞는다는 사실에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고양감이 몸을 휘감았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약간의 충격이 전해져왔다.

"이것은 인류에게 있어서 작은 한 걸음이지만, 나에게 있어서 위대한 도약이라."









FP는 F(파이어) P(펀치) 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