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대충 망했다. 흔히 기대하던 핵전쟁이나 좀비 같은 것도 아닌, 고작 전염병으로 인해 망했다. 처음에는 방역 체계가 무너졌고, 다음에는 경제가, 마지막으로는 정부와 군대가 무너졌다.
이쯤 되면 유비소프트의 한 똥겜처럼 사회가 무너질 때 일어날 양반들도 있을 법 했지만. 전염병 하나도 통제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가 그런 것을 대비할리 만무했고, 결국 대한민국은 완전한 무정부 상태로 빠져버렸다.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교육부도 마찬가지였다. 때 늦은 개학을 준비하던 전국 곳곳의 학교들은 중앙의 통제를 잃고 버둥거리다가 '교장 재량' 이라는 명목으로 무제한 휴교령을 때려버린 뒤.
자기 집으로 도망쳐 버렸고, 그 덕에 모의고사를 준비하던 학생들은 더 이상 공부할 의미가 없게 되었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한창 모의고사를 준비하던 도중 들은 무제한 휴교령의 소식은 더 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환호와 이럴꺼면 시험 준비를 왜 시켰냐는 분노를 동시에 일으켰다.
아, 그리고 부모님 두 분은 사태가 점차 심각해지자 어쩔 수 없이 시험을 앞둔 나에게 체크 카드 한 장을 쥐어주시고선 친가의 조부모님과 여동생과 함께 용인에 있는 외가로 가셨다.
또 큰누나는 수원에 있는 대학원에서 기숙 생활 중이고, 작은 누나는 음.. 약사 시험을 본다고 어디 고시원에 있을텐데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아무튼 지금 집 안에는 나 혼자 밖에 없었고, 나는 지금 평소에 생갤과 포아갤을 드나들던 놈 답게 언젠가 있을 벅-아웃(Bug-out) 상황을 대비한답시고 부모님에게 욕먹어가며 용돈을 잔뜩 꼬라박은 장비들을 드디어 꺼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먼저 방독면은 2달치 용돈을 모아 3M 6800을 사뒀고, 안경 클립까지 끼워둔 것에다 거기에 붙일 필터도 한달치 용돈 8만원을 전부 꼬라박아 흔히 금괴라고 부르는 7093C를 12개 정도 구비해 놓았다.
그리고 식량, 식량은 가능한 한 레토르트 보존식이나 통조림 위주로 챙겼고 예전에 밀덕질 할때 사두었던 프랑스군 전식과 미군 MRE도 남은 걸 챙겨 엄마가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사주셨던 탄색 가방에 집어넣었다.
옷가지는 평소에 아끼던 우샨카와 아디다스 트랙수트, 마찬가지로 밀덕질 할 때 사놓고 아직도 입어보지 못한 독일군 야상을 꺼내 입었다.
플레이트 캐리어도 하나 있었길래 그것도 걸쳤지만 정작 방탄판이 없어 지난번에 배부받은 고등학교 교과서 중에 그나마 크기 맞고 두꺼운 놈을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는.. 무기다, 평소 생갤이나 포아갤에서 엽총이 있다고 기만질을 해대던 나였으나 지금은 수렵 기간도 아니고 총의 주인이신 할아버지도 외가에 가 있으셔 엽총을 밖으로 반출할 수가 없다.
다행히 엽탄은 집에 잘 보관되어 있으니 경찰서에 간 뒤. 보관고에서 찾아오면 된다지만 맨손으로 가기에는 아무래도 무리다.
나는 결국 공구상자를 뒤져 부무장으로 쓸 빠루 한 자루를 꺼내들고, 주방에서 식칼을 가져온 뒤. 아버지께서 목공 취미로 만드셔 매끈하게 깎인 나무 막대의 끝자락에 청테이프로 칭칭 감아 주무기로 써먹을 급조된 창을 만들었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장비를 바닥에 늘어놓은 뒤, 완전 무장을 갖추자 스스로가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면 훌륭한 황금 고블린이다, 충분히 엽총을 되찾으러 갈 수 있을 것이다.
...
그렇게 다짐하고서 며칠 뒤에야 나는 문 앞을 나섰다, 말은 그렇게 해도 솔직히 쫄렸기 때문이다. 식량 사정도 그리 나쁘지 않은데 나갈 이유가 없기도 했고, 하지만 최근 들어서 습격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탓에 결국 엽총을 되찾으러 가기로 했다.
"씹.. 존나 무겁네."
아직까지는 전기가 끊기지 않은 덕에 엘리베이터가 작동한다지만 혹시 모를 장기 작전을 대비해 식량을 잔뜩 넣어 꾸린 배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진장 무거웠다. 젠장, 그냥 방독면하고 무기만 챙길껄.
- 구우웅.. 띵!
1층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음, 배낭이 무겁다는 사실에 짜증내던 내 신경을 곤두세웠다. 혹시라도 필터의 결합이 헐겁지는 않은가 만지작거리게 되고, 괜한 마스크를 더욱 밀착시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적막한 공기가 필터를 타고 약간의 빛과 함께 내 안으로 흘러들어왔고, 아파트의 정문을 향해 저벅저벅 걷자 점차 들어오는 빛이 커지면서 마치.. 폴아웃 4의 명장면이 생각났다.
"전쟁..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지, 근데 전쟁 때문에 망하질 않았잖아 씨발 베데스다 새끼들아."
그렇게 아무도 듣지 않는 일갈을 토해낸 나는 완충되어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아직 인터넷이 살아 있을 적에 생갤에서 추천받아 미리 다운 받아놨던 오프라인 지도를 뒤졌다. 거기서 할아버지의 엽총이 영치되어 있는 경찰서의 위치를 찾아보았는데, 그리 멀지 않았다.
축.. 뮈시기 법을 적용해서 보면 대략 600m 정도 걸으면 되는 짧은 거리. 나는 '진짜 식량 괜히 챙겨왔다' , '이게 나라냐' ,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수듄' 이렇게 투덜거리며 걸었다.
평소에는 사람이 많은 거리지만 사태 이후 사람은 티끌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적막해서 바람에 굴러다니는 신문지가 내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 이렇게나 사람이 없는데 괜히 쫄아가지고 나가길 두려워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야 이거 이불킥 30일 각이다.
경찰서에 도착하니 겉에서 보기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안에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급조한 식칼 창을 쳐들고 날을 앞으로 겨눈 채 문을 발로 걷어차 안으로 진입한다.
"하나, 둘, 셋..!"
- 쾅!
"FBI open up!"
항상 외쳐보고 싶던 대사를 시원하게 내지르고 창날을 앞세운 채 진입한다. 그리고 안에서 보인 것은.. 암만 봐도 포붕이 새끼였다. 파오후인데 롱소드와 리커브 보우를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핑크게이 방독면을 쓴 놈이 어찌 포붕이가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약탈 빌런인지 대충 그런 놈으로 추측되지만 전투력은 없어서 대체로 무해할 것이다. 말로 설득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으나 예상 외의 일이 벌어졌다. 근력도 딸리는 지방 가득한 팔로 활시위를 당겨 나를 쏜 것이다.
- 푹!
"...!"
쏘아진 카본제 화살이 내 복부에 적중했다. 다행히 플레이트 캐리어에 넣어둔 교과서가 화살을 막아내 하나도 아프진 않았지만 배에 가해진 약간의 충격이 나를 어지럽게 했고, 활을 쏜 포붕이 녀석은 '첫 살인..' '사람을 죽였어..' 이 지랄을 하며 동공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헬멧.. 아니, 플케가 아니었으면 즉사였다."
또 다시 평소에 하고 싶었던 대사를 읆으며 플케에 똑바로 박힌 화살을 무심하게 뽑자 포붕이 놈의 얼굴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됐고, 당신 포붕입니까?"
되돌아오는 말은 없었지만 익숙한 단어가 들리자 포붕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황금 고블린 한 마리 제대로 잡았다.
"그럼 저 좀 도와주십시오, 여기 영치된 엽총을 가져가려는데 혼자 힘으로는 힘듭니다."
"아.. 예."
방독면의 진동판 때문에 적절히 변조된 음성은 아직 어린 티가 남아있는 내 목소리를 어른스럽게 가공했고, 그러자 포붕이 - 본명은 아직 모른다. 이따가 물어보든가 해야지. - 는 가방에서 볼트 커터를 꺼내 단단히 잠겨 있던 무기고의 자물쇠를 간단히 부순 뒤. 안에 영치되어 있는 엽총들을 가져갈 수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가장 좋아보이는 것으로 골랐다. 베넬리 M4 반자동 엽총, 예전에 할아버지와 함께 찾아간 총포상에서 초고가로 수입되었다는 소식만 들었는데 여기서 찾을 줄은 몰랐다. 혹시 몰라서 쌍대도 2자루 가져갔지만.. 이게 가장 큰 수확이다.
엽총 파밍을 마치고, 포붕이와의 작별 인사를 하기 직전에 나는 그의 이름과 연락처를 물었다. 같은 갤 하던 놈들인데 나중에 만나면 서로 도울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는 자신을 그저 '포붕이'라 부르라 했고, 연락처 대신 무전기를 건네 주었다. 나중에 볼 일이 있을까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떠났다, 개학이 없는 나의 집으로.
심심해서 써봄.
잘읽음 근데 저 앱 이름이 뭐였지 - dc App
innawoods
ㄱㅅ - dc App
개추, 글 하나는 오지게 잘쓰네 - dc App
개추 형 필력 지린다
그래서 욕먹어가며 돈은 꼴아박으셨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일갈 ㅇㅈㄹ
그래서 지도 어떻게 받누 - dc App
ㅅㅂㅋㅋㅋㅋㅋ뭔데 재밌냐 - marvel App
사람...사람을주겪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