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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삼성-북조선 전쟁이라 불리우는 이 전쟁은 2029년 5월 26일부터 2031년 1월 2일까지 약 2년간 벌어졌으며 메트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쟁으로 기록됩니다. 

이 전쟁의 발단은 삼성 동맹과 북조선 인민전선 간의 완충지대인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을 먹을 식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북조선 인민전선의 약탈부대가 공격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이에 삼성 동맹은 반발하였고 장갑열차와 40명의 무장 병력으로 구성된 신속대응군이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으로 급파되었습니다. 북조선 인민전선의 약탈부대는 압도적인 화력의 차이로 인해 박살났으며 이 작은 해프닝은 그대로 종결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북조선 인민전선의 정규군이 끌고 온 85mm 대전차포가 장갑열차를 향해 불을 뿜으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장갑열차의 병력수송칸 하나가 완전히 대파되고 그 자리에 있던 삼성 동맹군의 병력 16명이 그대로 즉사했습니다. 이 탓에 장갑열차와 살아남은 소수의 병력은 쫒겨나듯이 홍대입구로 급히 후퇴했으며 디지털미디어시티역과 같이 홍대입구역도 곧 함락될 것 처럼 보였습니다.

삼성 동맹의 수뇌부는 경악했고. 홍대입구역을 사수하고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을 탈환하기 위해 동맹령의 모든 역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닥치는대로 용병들을 모집하여 총 1,260명의 병력을 전선에 들이부었습니다. 이후 쌍방 모두 막대한 인명피해를 내고 나서야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을 탈환하는데 성공했지만 삼성 동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자본이 낭비됐고, 100인 평의회의 대주주들이 보상을 요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삼성 동맹군은 수색역으로 진군하여 그 곳에  주둔하던 인민전선군 병력들을 소탕하고 동맹령으로 편입했습니다. 그러자 북조선 인민전선은 부르주아 제국주의자들에 대항하는 조국해방전쟁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3,456명이라는 메트로 역사상 최대의 병력을 끌어모아 제파식 전술로 수색역에 주둔하는 삼성 동맹군을 계속하여 압박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수색역 공방전이 벌어질 무렵,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대파당한 장갑열차의 수리가 마침내 완료되었습니다. 

장갑열차의 수리가 완료된 것을 전달받은 삼성 동맹군은 드디어 효과적인 전선 돌파 수단을 얻었다고 확신했고. 잔존한 945명의 병력과 장갑열차로 강행돌파를 시도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인민전선군은 붕괴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세를 몰아 강매 , 화전역을 점령하고  동맹령으로 편입시킨 삼성 동맹은 북조선 인민전선에게 종전협정을 제의했고 

북조선 인민전선 측에서 이를 받아들이면서 2031년 1월 2일, 디지털미디어시티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전됩니다.이 전쟁 기간 동안 양측 사상자는 2,756명 으로 추산되며 행방불명자나 전시 실종자를 합산하면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삼성 동맹군 참모본부 전쟁사 기록실 편찬

주 : 이거 모바일판 디씨로 작성해서 PC판으로 보면 행갈이 개판일 확률이 존나게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