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곰돌이 바람개비 마을의 곰돌이 - 개미굴 중




가지산



산에서는 가장 늦게 눈이 내리지만

가장 늦게 눈이 녹는 산봉우리 중봉


대설의 절기 가지산이 함박눈이 이불처럼 가지산을

살포시 덮으면요


갑번자기 같은 새하얀 함박눈과

드러누운 공룡의 등 같은 암회색의 바위산이

흑백의 쌍을 이루었대요

그래서 옛 사람들은 까치산이라고 불렀대요

역사의 인고를 간직한 듯

바위산은 쉬이 등산을 허락하지 않아요


가지산의 바위산들은 저마다 산봉우리를 가지고 있어요

바위산 꼭대기에 이상하게 자리잡은 산봉우리들은

신선이 장난으로 쌓아올린 돌탑일까

아니면

바위산이 구름을 움켜잡으려고 하늘을 향해

회색의 돌주먹을 하늘로 뻗었다 굳은 흔적일까




곰돌이 친구들은 가지산에 서식하는 화산개미들의 둥지들을 찾아서 여왕개미랑 알집까지 소탕하라는 황당한 임무를 받고 지금 가지산 정상을 향해 등산을 하고 있었다.

가지산은 과거 가지산도립공원으로서 알프스 산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영남지방에서는 나름대로 산세가 험하고 거친 암벽에 가까운 바위산 등반이 매력적이라 등산 매니아들에게 인기있는 경상남도의 관광지였다.

집밖에 나가기를 싫어하는 정석이도 가끔 생존주의 체력을 기른답시고 석남사 중봉 가지산 쌀바위 상운산 갓바위 석남사 루트로 등산하는 객기를 부리다가 퍼져서 며칠을 끙끙 앓곤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물론 과거의 일이다.

2050년 핵겨울 시대의 지금은 그저 가지산 시티의 사람들이 돈을 벌게 해주는 밥줄인 동시에 무시무시한 돌연변이인 괴짐승들이 우글거리는 마경이 된 지 오래.


"헉헉 곰돌아 쉬엄쉬엄 가자, 요한나 다리 아퍼."

"리리카도 간만에 바위산 등산을 하니 힘든 것이에요."


네소베리 여자애들이 힘들다고 깽깽거렸다. 쉴 시간이 없는뎀.


"곰돌이는 빨리 개미집들 살펴보고 밤이 되기 전에 내려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러지말고 곰돌아 여기서 잠깐 쉬다가 가자. 역시 이 한반도는 산양이 놀기 딱 좋은 나라야. 뭐 주위에 산 밖에 없어"

류드밀라도 힘들다고 투덜거렸다.


곰돌이 친구들은 용병인 류드밀라, 명중사 동자승인 승권이와 함께 아침에 명중사(구 보덕사)에서 출발해서 지금 1165m 중봉 근처의 벙커 대피소에 도착해서 잠시 숨을 돌렸다.

이 벙커 대피소는 공기밥을 엎어놓은 듯한 벙커에 슬레이트 건물이 하나가 옆에 딸린 산장 대피소였다. 대피소 옆에는 사람들이나 석남사와 명중사 스님들이 고수레 기도를 드리기도 하는 성황당 제단이 있다. 관리는 석남사와 명중사 스님들이 관라하였다.


"얘들아 이유식 꺼내먹자."

"그래 그래."

곰돌이 친구들은 산장 대피소 벙커에 들어가서 이유식을 먹었다.

곰팡이유과(곰팡이빵이라고도 불린다)랑 곤충양갱을 양파강판에 갈아서 만든 가루에다가 버섯가루와 효모분유를 함께 섞은 혼합가루를 넣은 이유식 티백이었다.

edc팩에 이유식 티백을 여러개 들고 다녔다가 우유병에 물을 넣고 티백을 뜯어서 가루를 풀면 맛있는 골렘전용 이유식이 되었다.

류드밀라와 승권이는 edc 파우치에서 버섯과 강아지풀 가루와 분유를 섞어 만든 버섯 비스킷을 꺼내 씹어먹었다.

승권이가 간식을 먹다가 곰돌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곰돌아, 너희들 화산개미 둥지들 박살내러 간다며? 그것도 굴 속으로 들어가서 대빵 여왕개미 잡아야 한다던데.. 특급용병도 아니고 왜 너희들한테 그걸 맞겼는지 모르겠어."

"곰돌이는 높으신 분에게 말을 들었어, 관리자 형이 곰돌이에게 좁은 굴에 들랑날랑 하는 우리가 이번 임무에 제일 적합하다고 그랬어"

"그냥 특급용병 형들이 드릴이나 곡괭이 들고 와서 다 깨부시면 안 될까. 곰돌이 친구들한테는 좀 위험한 임무 같은데"

"리리카는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게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초롱이는 이게 그 옛날 정석이 오빠가 말하던 부조리라고 생각해."

"픽시는 골렘이 세상에 귀한 쓰임을 받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뭐 누군가는 어차피 해야할 일이었을 테니까냥"

아니 요즘 네소베리들은 뭔가 세상에 불만이 많은 거 같다. 말 속에 뼈가 있는 거 갔았다.


"곰돌이 친구들에게 뭔가 큰 짐을 지우는 거 같아서 명중사 수행자로서 미안하게 생각해."


승권이가 무안한 표정으로 곰돌이에게 말했다.

"곰돌이 괜찮아. 다 모두를 위한 일인걸.. 무사히 임무 끝나면 같이 또 딱지치기하자. 승권아"

"그래 곰돌아"

승권이가 웃으면서 곰돌이를 안아들고 곰돌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처님, 제발 꼬마 보살님들을 보살펴 주시기를.."

승권이가 두 손 모아 부처님께 나직이 기도를 드렸다.



벙커에서 잠깐 쉬다가 곰돌이 친구들과 인간 친구들 일행은 중봉에 도착했다.

중봉에 도착한 후 주위를 내려다보았다.

여름이 되어가지만 핵겨울이라 가지산은 여전히 백설에 뒤덮혀 있다.

비록 핵전쟁 후에 머리에 난 땜빵처럼 곳곳에 구덩이가 생기고, 분화구 같은 크레이터가 생기고, 상운산은 숟가락으로 푸딩을 떠먹듯이 단면이 아주 깔끔하게 동그란 모양으로 잘려나가 사라졌지만 가지산의 위엄은 어디 가지 않았다.

방사능에 오염된 후 푸른 솔잎이 아닌 빨간 솔잎이 자라는 소나무들이 뛰엄뛰엄 군락을 이루면서 그려내는 빨간색 파스텔과 억새풀의 은은한 황색,

함박눈에 뒤덮힌 바위산이 이루는 하안색과 기기괴괴하게 솟아오른 기암괴석과 산봉우리들이 그리는 암회색의 붓줄기가 나란히 조화를 이루어서 만드는 절경은 여전했다.


"진짜 풍경 아깝네, 핵전쟁만 아니었어도 느긋하게 도시락들고 등산하면서 감상하기엔 딱 좋은 풍경인데 말이야."

류드밀라도 가지산 등산은 짜증나지만 두 눈에 들어오는 가지산의 풍경만은 예쁘다고 인정하였다.



"저기 풍경 감상은 좋은데 이 포치는 그 화산개미의 둥지인지 머시기가 어디있는지가 젤 궁금하다 아잉교"

"가지산까지 올라갈까?"

"아 그건 좀.."


결국 곰돌이 친구들은 1200m 가지산 정상까지 올라간 후에야 망원경으로 산세를 내려다보니 화산개미 둥지들의 위치를 볼 수 있었다.

개미둥지들은 뭔가 역사 교과서에서 보던 왕릉같이 생긴 흙더미에 흙탑이 두 세개씩 솟아올라 있었다.

가지산과 중봉 사이 골짜기, 그러니까 가지산에서 남서쪽 끝에 있는 백운산과 호박소 터널 부근에 이르는 긴 골짜기 옆 능선에 개미들 둥지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군락이 한 두개도 아니고, 저 개미둥지들 어디에 대빵 여왕 둥지가 있다는 말잉교? 이거 원 한양가서 김 서방 집찾기 아잉교?"

곰돌이 친구들은 망원경을 보면서 개미둥지들 몇 개를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여왕개미 중의 여왕개미 둥지를 찾고 있었다.


"요한나는 유독 커다랗고 삐죽삐죽한 탑이 솟아있는 제일 큰 무덤같은 게 둥지라고 생각해"

"곰돌이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사무소에 보고하러 가자냥."

"그래 그래"



다음 날 곰돌이 친구들은 도시 사무소로 갔다. 어제 본 개미둥지들의 모습을 높으신 분들에게 보고하였다.

사무소에는 도시 관리자인 최진우 형과 주임원사인 최해산 아저씨를 비롯해서(최해산 아저씨는 관리자 형의 삼촌이라 하였다)

명중사의 만월스님과 공월스님, 그리고 전에 교역 장터에서 만났던 이상한 안경을 쓴 기계매니아인 카마쉬도 있었다.


"곰돌이는 다른 동네 어른들도 같이 모인 거 처음 보는 거 같애."

"리리카도 오늘 풍경 신기한 것이에요."

"미티는 사무실이 뭔가 북적북적한 것 같아서 싫다냥."

곰돌이 친구들은 좁은 사무실에 인근 마을들 간부급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뭔가 세계정부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공월 스님이 말했다.

"아, 개미 문제로 골치를 앓는 건 가지산 시티뿐만이 아니거든. 가지산 시티뿐만 아니라 다른 동네도 화산개미 때문에 난리란다."


카마쉬가 곰돌이에게 질문햇다.

"그래서? 듣자하니 개미 군락이 중봉 골짜기의 비스듬한 구릉에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고?"

"""네"""


"근데 가지산 자체가 사실 표면을 덮고 있는 부엽토 걷어내면 사실 쌩 바위산 아닙니까?"

"간간히 사암이나 흙무더기가 좀 있기는 하지 우리도 버섯농장으로 쓰려고 터널 파는데 얼마나 애먹었는데 드릴로 근성으로 팠어"

"그럼 화산개미들도 깊게는 둥지를 파지는 못할테고, 아메바처럼 둥지들이 넓게 퍼진 형태인가?

"아마도 그럴껄, 아파트 삼층 정도 깊이 까지는 구불구불 파고 들어가서 그 다음엔 잎맥처럼 좍좍 골짜기 능선 주변을 뒤덮는 모양일꺼야."

"그럼 그 퀸 오브 퀸 이란 여왕개미 찾기 쉽지 않을까"




"곰돌이 친구들은 둥지 중에서 다른 둥지보다 유독 크고 휜개미탑처럼 요란하게 솟아있는 탑을 가진 둥지를 하나 보았어."

카마쉬가 곰돌이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아마도 그 탑은 둥지의 공기를 교환하는 환기탑일껄. 그 정도 환기탑이면 먹이 창고나 알집들이 있는 육아방이랑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몰라

둥지의 중앙에서 아래쪽에 여왕개미방이 위치하는 걸 고려하면,

음..환기탑 꼭대기의 입구에서 줄타고 내려가서 중앙의 방에 도착한 후에 그 다음에는 가지산이 단단한 바위산이라 굴을 파기 힘든 땅이니까 아마 동굴이 산 능선의 기울기에 따라 옆으로 퍼졌을꺼야. 그렇다면 암벽타기 할 필요없이 그냥 통로를 따라 기어가면 될꺼야.

개미들을 졸졸 따라가다보면 가까운 위치에 곰팡이를 재배하는 개미들의 농장이 나타날 거야.

그리고 일개미들이 저장한 고기나 곰팡이 조각을 물고 아기들에게 먹이를 주려면 육아방이 농장 가까이 있어야 하겠지?"

"""네."""

"그 농장 방 일명 팜 체임버와 육아방은 짧은 통로로 이어져 있을거다 아마도.

"그럼 여왕개미 방은요?"

"여왕개미는 하루에 세 번 꼴로 애호박 굵기의 알집을 낳지 여왕개미가 알집들을 옆에 쌓아두면 일개미들이 그 알집들을 하나씩 물고 육아방에 가져다 놓아야 하지

그럼 농장, 육아방, 여왕개미 이 세개는 삼각형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지. 이해가 가지?"

""""...네.. 네"""

카마쉬는 휜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곰돌이 친구들애게 대략적인 화산개미집을 설명해 주었다.

아마도 몇 번 정도는 화산개미집을 직접 파내서 관찰해봤다보다.. 궁금한 건 못 참는다는 과학자의 탐구정신이 철철 넘치는 괴짜 아저씨니, 아마 포크레인이라도 동원해서

후벼 팠는지도 모르겠다.


개미굴 그림을 보고 대략적으로 공략 작전을 들은 후에 곰돌이 친구들은 사무소를 나왔다.

카마쉬는 화생방 방호복을 개조해서 개미굴 공략전 전용의 특제 방호복을 만들어 주겠단다.

최해산 아저씨는 곰돌이 친구들에게 약간의 병두껑과 쇠구슬, 건전지를 주었다.


"병두껑이랑 쇠구슬이랑 건전지는 뭐예요?

"그거 사흘 후에 있을 개미굴 공략에 쓰라고 주는 돈이야.. 장비같은 거 사라"

"탱구는 개미굴 공략에 총알은 필요없다고 생각해 너굴."

"곰돌이는 이걸로 뭐 살지 생각해봤어."

"뭐 살려고요? 탱구 궁금하다 너굴."

"개미굴은 좁잖아? 그리고 곤충들은 톡톡 튀어오르는 대신 맷집이 약하니까 낫이나 송곳을 사는 게 좋다고 곰돌이는 생각해. 알집도 태워야 하니까 기름이나 알콜도 사아햐고"

"요한나는 살충제 스프레이도 사야한다고 생각해."

"픽시도 스프레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냥 뿌려도 좋고 불의 심판을 할 수 있으니까요."

"리리카는 화염병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점점 네소베리들 성향이 과격해지는 거 같다. 여자애들이 뭔 욕구불만이 있는 지 모르지만, 시위현장 가면 시위운동 잘할 것 같다.

무서워



곰돌이 친구들은 최해산 아저씨가 주는 선금으로 개미굴 공략에 필요한 도구들을 사러 사부소를 나와 마을 시장에 갔다.


"자 여기 구 대한민국 국군이 쓰던 k1c1 팝니다!"

"아니죠 구하기 쉬운 중국제 56식 소총을 사세요!"

"내구성 좋고 깡통도 뚫는 새총이요! 자석 쇠구슬 장전대도 있어요"


시장에서 무기상들이 자기네 물건을 파려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무기상점에 자주 들르지만 이번 임무와는 궁합이 좋지 않으므로 패스.

이번 임무에는 원거리 무기 자체를 살 필요가 없었다.


곰돌이 친구들은 잡화상이랑 기름집이랑, 군장점에 들러서 이것저것 샀다.



집보는 당번 에이미를 제외한 8마리 골렘은 각각 장비를 다음과 같이 맞추었다.


근접무기 : 송곳, 접이식 낫

투척무기 : 날붙이, 못

화염계열 무기 : 미니화염병, 지포라이터(라이터와 대용량 기름 1통), 살충제 스프레이

개미퇴치 : 계피, 치약, 후추, 녹인 고무타르 등등


개미퇴치용 물질들은 정석이랑 곰돌이가 노량진 자취방 시절부터 핵전쟁 시절까지 애용하던 방법이었다.

레몬이 있으면 좋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법, 계피와 치약은 개미들이 냄새때문에 싫어하고 후추는 매워서 싫어하고, 고무타르 같은 석유계을은 개미 몸에 해롭다 카더라

네 가지 물질들을 섞어서 페인트처럼 만들어 특제 방호복에 바를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