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곰돌이 바람개비 마을의 곰돌이 - 개미굴 하




이틀 후 카마쉬가 개미굴 소탕을 위해 제작한 골렘전용 특제 방호복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곰돌이와 친구들은 점심 쯤에 사무소에 출근을 하였다.


곰돌이는 친구들과 함께 언제나 그렇듯이 늘 입던 누덕누덕 패딩잠바 위에 가죽조끼에 고무를 두르고 개미 껍데기와 게딱지, 책받침을 잘라 덧댄 허름한 방검조끼를 걸쳐 입고 판초우의를 입고 방독면을 쓰고 나서 채비를 단단히 하고 방공호 밖을 나섰다.

곰돌이가 사무소에 들어가니 카마쉬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아마 우리에게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발명품 자랑하려고 목이 빠져라 기다린 모양이었다.


"어서 오너라 꼬마 친구들아. 지금 이 카마쉬가 만든 골렘전용 특제 방호복을 보여주마!"


마른 얼굴에 빨갛고 둥그런 안경알 두 개가 붙어 있는 야간투시경 같이 생긴 요상한 안경을 껴서 안 그래도 괴짜같이 보이는데 비쭉한 턱을 내밀고 헤맑게 웃으니 더 괴짜같이 보였다. 그래도 인상파같이 생긴 외모와 달리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아 다행이었다. 그저 뭔가 만들기 좋아하는 괴짜일 뿐.


카마쉬는 난로 위에 얹어진 보글보글 끓는 민들레 커피에 설탕을 한 숟갈 퍼부어 마신 뒤에 방호복을 소개했다.


"너희들 체형에 맞추어서 제작한 골렘 전용 방호복이란다. 고무랑 라텍스를 이용해서 만들었고 납을 붙이는 대신에 실리콘이랑 합성수지를 섞은 페인트를 두껍게 발랐단다.

게다가 합성수지 페인트 덕에 화산개미들이 물어도 방호복이 쉽게 찢어지지도 않고 오히려 개미의 가위 같은 턱이 미끄러져서 개미들의 공격을 떨쳐내기도 좋지."


"리리카는 점박이 방호복 처음 보는 것이예요."

"요한나는 저 방호복이 마치 짱구처럼 보여. 움직이기 둔해 보이는데.

"아니, 방호복을 입고도 팔다리 가동에 지장도 없어서 움직이기 편하단다."

"초롱이는 방호복 느낌이 장어같이 미끌미끌해서 좀 그래."


"곰돌이는 앞뒤에 달린 수통같이 생긴 건 뭔지 궁금해."

"그건 예비 산소통들이란다.

"예비 산소통이 왜 있는지 궁금하다냥 굳이 산소통 없어도 음성진동판처럼 생긴 호흡망이 있어서 숨쉴 수 있지 않냥."

"너희들이 알집을 싹 불태울 때도 그렇고 스프레이로 개미튀김을 만들다보면 필연적으로 굴 속이 연기로 꽉 찰 거 아니냐. 임무 마치고 여왕개미 방에서 굴 밖까지 탈출하는 동안 호흡망을 닫고 산소통 벨브를 열고 숨을 쉬어야 할 때가 필요하지"

"그렇구나."


"탱구는 방호복에 치약이랑 계피 타르 섞은 물을 바르면 더 좋다고 생각해 너굴."

"맞아 맞아."

"안 그래도 이미 발라 놓았단다."

"곰돌이가 보기에 점박이 같이 찍힌 까만 점들이 개미퇴치즙이라고 생각해."

"곰돌이가 생각하는 거 맞단다."



"포치가 입어 봐도 괜찮은교? 포치가 친구들 중에서는 제일 덩치가 큰 하마라서 함 입어봐야 쓰겄소."

"체형 별로 있으니 입어 봐라."


곰돌이 친구들은 각자 카마쉬가 만든 방호복을 입어보았다. 두꺼운 고무로 만들어서 방호복이 조금 무거워서 행동이 약간 둔해진 거 빼고는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고 팔다리 움직이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방호복 손도 우리가 쓰는 <판다 장갑>을 참고하고 만든 것인지 판다 손 같이 생긴 고무장갑에 철사 갈고리 손톱이 붙어 있고 손바닥에 고무 언덕이 붙어 있어 빨대도 쥘 수 있었다. 거의 판다 장갑 꼈을 때랑 느낌이 비슷했다.




모든 밑준비가 끝나고 임무 의뢰를 받은 지 사흘 후 가지산의 개미굴 퇴치 작전 당일이 다가왔다.



작전은 이러했다.


1. 먼저 용병들이 개미 군락 주위에 흑색화약으로 만든 콩알탄을 멀찍이서 터드려서 개미들의 주위를 끈다.

2. 개미들이 굴 밖으로 우수수 나타나면 용병들이 개미들을 한 두 마리씩 화살로 쏘면서 어그로를 끈다. 그 다음에 페로몬 신호에 끌려 개미들이 굴 밖으로 다 빠져나오면

용병들의 개미 사냥이 시작된다.

3. 병정개미들이 출동해서 약간의 일개미만 남은 개미 둥지에 곰돌이 친구들이 들어가서 빈집 털이를 한다.

4. 대빵 중의 대빵 여왕개미집에 쳐들어가서 알집을 싹 태우고 여왕개미를 헤치운다.

5. 훈제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곰돌이 친구들이 빠져 나온다.


대충 순서가 이러했다.



가지산 중봉에 올라온 곰돌이 친구들과 용병들은 망원경으로 산자락에 위치한 개미 군락을 바라 보았다.

"저게 개미 군락인가. 둥지랑 탑을 보니 꼭 공동묘지 같이 생겼구만."

아나톨리의 감상이었다. 그런데 아나톨리의 말을 듣고 보니 꼭 묘지같이 보이긴 했다.


개미 군락이 맨눈으로 어느 정도 보이는 지점까지 산자락을 타고 내려와서 바위산 중턱에 자리잡은 용병들이 아나톨리의 명령을 기다렸다.

아나톨리가 회중시계를 꺼내 보고 용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H zero !!, 칵키드 피스톨(Cocked Pistol)!"

"우와앙"


작전이 시작되었다.



아나톨리와 용병들은 둥지들 근처에 콩알탄을 점점이 터뜨려서 개미들의 어그로를 끌었다.

곰돌이 친구들도 얼른 달음박질을 해서 제일 큰 개미 둥지 위로 후다닥 달렸다.


개미 둥지 위로 기어올라간 후에 휜개미집 같이 생긴 한 5미터 쯤 되어보이는 환기탑 위로 호미로 흙벽을 찍어가면서 환기탑 꼭대기로 성큼성큼 기어올라갔다.

환기탑 벽에 구리 지주핀을 박고 로프를 묶은 후에 줄을 밑으로 내려뜨렸다.

사실 사람 같으면 사람 몸무게 때문에 흙벽이 못 버티고 지주가 뽑혀나갈 테지만 우리 같은 봉제인형 골렘은 연날리기하면 바람에 날려가는 솜뭉치들이라 가능한 허무맹랑한 작전이었다. 뭐 뱃속에 무게추로 모래주머니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곰돌이와 친구들, 8마리의 골렘은 줄타고 환기탑 꼭대기에서 내려가기 전에 쇠구슬 하나 꺼내서 밑에 던져 보았다 깊이가 얼마나 되나 재어보려고. 근데 한참 후에 퍽 소리가 난다? 생각보다 개미굴이 좀 깊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줄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한 10미터 쯤 내려가니 발바닥이 땋에 닿았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카마쉬가 말했던 중간 방이 아니네??

아직도 환기탑 내부였다.



"요한나는 역시 세상일이 쉬운 일은 없다고 생각해."

"픽시는 환기탑 바닥에 환기구멍이 또 따로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네소베리의 말을 듣고 헤드렌턴을 켜고 손전등을 켜고 바닥을 좀 돌아다니며 살펴보니 환기구멍 몇 개가 뚫려 있었다.


환기구 구멍들 크기도 강아지보다 약간 작았다. 적의 침입을 막으려고 이런 모양의 탑인가


"우리 골렘 덩치가 일개미랑 비슷하지 않다냥?"

"둘 다 강아지만 한 덩치니까."

"시간이 없으니 얼른 구멍이나 파야 되는기 아잉교?"


일단 모종삽으로 구멍하나 골라잡고 8마리가 후다닥 팠다.


"곰돌이 질문, 얘들아, 로프 더 있나?"

"탱구는 각자 가지고 있는 로프를 연결하면 학교 운동장도 한 바퀴 돌 수 있다고 생각해 너굴"


곰돌이 친구들은 삽으로 파낸 구멍에 로프를 내리고 또 줄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몇 미터를 내려가니 발이 바닥에 닿았다.


이번엔 중앙 방이 분명한 거 같았다. 중앙 방의 크기는 우리 방공호 내부랑 엇비슷한 크기였다.


손전등을 켰다. 미세한 손전등의 꼬마전구에서 나온 빛이 어둠을 살짝 가르고 있었다.

둥근 보름달 같은 광원으로 개미굴을 살펴보니 방 주위에 몇 개의 구멍이 있었다.

또 여기서 난관애 부딫혔다. 어디로 들어가나?


"포치가 찍어봄세.."

"요하나는 포치이 찍기가 맞는 걸 못 봤어, 믿어도 되는 거야?"

"일단 믿어 보슈. 가나다라마바 가나다라마바, 다!!"


"""세번째다"""

"세번째 동굴이네"


결과적으로 포치의 첫번째 찍기는 꽝이었다.


"리리카는 포치의 찍기에 실망한 거예요.

"아니 포치 평소엔 잘 맞힌다 아잉교!!"


"두 번째 돌리자"

"가나다라마바 가나다라마바, 마!!


이번엔 성공인 거 같았다.

5번 입구로 기어들어가니 통로가 어느 쯤에 대각선으로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미끄러지듯 기어가다가 통로를 나오니 천장에 환기 구멍이 뚫려있고 사람 목구멍처럼 두 개의 문이 딱 붙어있는 형태의 출입구가 몇 개 정도 뚫려 있었다.

안은 물자 창고 크기 쯤 되는 너른 공간이었다. 방이 생긴 모양은 꼭 사람 콩팥처럼 생겼다.


"미티는 여기가 그 팜 체임버인가 머기시기가 맞는 거 같다냥."

"애벌레의 시체나 다른 곤충들의 시체도 있고 반대쪽에 곰파이랑 버섯이 자라고 있어요."

"이것들 잡식이었나"


두 번째 난관을 뚫었다.

하지만 여기도 문제다 카마시가 말한대로라면 먹이 창고 즉, 개미농장은 돼지감자처럼 여러 개가 서로 붙어있다고 했다.


가끔식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나고 진동이 굴 안으로 전해졌다.



펑 펑!



"리리카 알아요!! 흑색화약 콩알탄 터지는 소리란 것이예요."

"포치 궁금하다. 일어다 굴 무너지는 거 아잉교?"

"미티는 걱정없다냥, 그냥 멀리서 개미들 어그로 용도로 사용하는 거라 상관없을 거라냥."



"곰돌이는 이제 육아방이랑 여왕개미 방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리리카는 일개미들이 움직임을 살펴보면 된다고 생각해. 개미가 줄서서 먹이를 물고 가는 입구를 찾으면 된다고 생각해."

"초롱이도 리리카의 말에 찬성."


곰돌이 친구들은 리리카이 말에 따라 무궁화 꽃이 피엇습니다 놀이처럼 일개미들이 골렘 주위로 접근하면 얼음처럼 움직임을 멈추었다가

지나가면 까치발을 바짝 들고 조심스레 살곰살곰 기어가면서 손전등과 헤드렌턴으로 일개미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콩팥처럼 생긴 농장 중 버섯을 키우는 방에 있던 목구멍 같이 생긴 출입구로 개미들이 옅은 초록색의 곰팡이 덩어리를 물고 일렬로 이동하고 있었다.

아마 저기가 에벌레 키우는 육아방이 맞는 덧.

일개미들을 따라 굴로 들어가니 이번엔 사람 심장같이 생긴 육아방이 있었다. 육아방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그 가운데 벽을 두고 왼쪽은 알집이 오른쪽은 연꽃 알밥(연밥)같이 생긴 구멍 빵빵뚫린 수십 개의 흙그릇 담겨 있었다.

이 개미들은 육아도 성장단계애 따라 키우나? 뭔가 지능적이네?


"요한나 알집들 엄청 징그럽다고 생각해"

"픽시는 저 연밥들도 만만치 않게 징그럽다고 생각해요."

"포치는 지금 기름뿌려서 바로 애벌레 구이를 만들어야 하는교?"

"곰돌이는 애벌레 구이만들기 전에 우선 여왕개미방으로 가는 입구부터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아직도 산 너머 산이네."

"리리카는 아까 처럼 일개미들이 먹이를 물고 자주 들어가는 입구를 찾으면 된다고 생각해."

"곰돌이가 보기에는 근데 여기는 구멍마다 일개미들이 먹이 물고 왔다리 갔다리해서 어느 건지 잘 모르겠어."

"요한나랑 포치가 살펴볼께."

"초롱이는 요한나랑 탱구를 믿어볼꺼야 둘이 관찰력은 좋으니까"

"어 저기 알집을 물고 나오는 일개미가 몇 마리 있어!!"

"어디 어디?!"

"네 번째 입구! 애벌레 태우면 저기로 들어가자"


드디어 모든 난관이 다 끝난 모양이다.


"포치가 지포라이터 기름통 꺼내겠슴다."

"각자 가지고 있는 지포라이터 기름통 꺼내서 뿌리자."


곰돌이와 친구들은 지포라이터 기름통을 꺼내서 알집에 뿌리고 옆방의 에벌레들에게 뿌렸다.

그리고 미니 화염병에 불붙여서 4개씩 알집 방과 애벌레 방에 던져 넣었다.

불이 활활 타오른다. 시장에서 번데기 장수 아저씨가 튀기는 애벌레 튀김 같다.


"예들아 호흡구멍 막고 산소통 벨브 열자."

"요하나 산소통 얼마나 가는 지 궁금해"

"규격은 앞에 작은 거, 10분, 뒤에 큰 거 30분이라고 그랬어."

"40분 안에 여왕개미 죽이고 굴 밖으로 나와야 한다 이 말이네."


애벌레들이 불 속에서 타죽으면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자 굴 속에 남아있던 일개미들이 발광을 하면서

더듬이를 미친 듯이 흔들면서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땅 속에서도 땅이 삶은 계란 껍데가 터지듯이 땅이 갈라지고 솟아오르면서 병정개미 몇 마리가 나타났다.

하지만 몸에 계피와 치약과 타르를 섞은 퇴치액을 바른 방호복의 독한 냄새 때문에 달려들기를 주저하고 제자리에서 다리만 땅을 박박 긁으면서 안절부절못했다.

그나마 한 마리가 냄새를 참고 달려들어 깨물었지만 합성수지 왁스를 바른 질긴 방호복 때문에 턱주가리가 미끄러져 나갈 뿐이었다.


"이제 전투시간이다."

곰돌이의 포효와 함께 각자 낫이랑 송곳, 과도를 꺼내들어 달려드는 개미들을 푹푹 찍고 식도로 반을 갈랐다.

일개미들의 방어력은 그닥이라 한 번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한 방에 한 놈씩 금방 죽었다.

일개미들이 꽁무뉘에서 개미산을 뿜기도 했지만 방호복 때문에 딱히 따갑지도 않았다.

요한나와 리리카, 픽시, 초롱이 등 네소베리들은 살충제 스프레이를 들고 접근하는 일개미들에게 뿌렸다.

살충제를 얼굴에 맞고 고통스러워서 끼엑 끼엑 소리를 내며 개미들이 뒷걸음질 쳤다.


"여기서 발목잡히지 말고 빨리 여왕개미방으로 들어아야 아잉교?!"

"그래야지."


곰돌이 친구들은 일개미들의 포위망 중에 약한 곳을 향해 라이터를 켜서 화염방사 공격을 하고 포위망을 뚫고 발발발 빠른 아장아장 걸음으로 여왕개미방으로 가능 입구에 들어갔다. 일개미들이 곰돌이와 친구들을 쫒아왔다.

솔직히 입구는 좁아서 쪼그려 앉아서 칼을 휘둘러야 할 판이었다.

우리 중에서 덩치가 제일 크고 힘이 센 포치와 탱구는 굴 속에서 찌르기 자세가 힘드니 고무망치와 몽키 피스트 까지 꺼내서 분투하고 있었다.

포치가 몽키 피스트를 횡으로 한 번 휘두르면 일개미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중간쯤에 우리는 살충제 스프레이를 다 여기서 다 쓰자는 생각으로 굴로 비집고 들어오는 일개미들에게 화려한 불쇼를 보여주었다.

"곰돌!!스프레이 다들 얼마나 남았어 얘들아?!"

"픽시!! 아마 절반쯤 남았을 거예요"

"다 뿜어!"

""네""


좁은 굴에서 스프레이로 화염방사 공격을 하니 효과가 직빵이었다.

가뜩이나 굴이 좁아 몸집이 작은 개미라도 한 번에 수십 마리가 몰려들 수는 없었고 거기다가 곰돌이 친구들이 불공격을 하니

달려들던 일개미들이 구워져서 입구를 막아 버렸다.

시체가 된 일개미들과 뒤이어 밀고 들어오던 개미들이 뒤얽혀서 굴이 완전히 막혔다.


"요한나는 동맥경화가 이런 거라고 생각해."

"리리카도 동맥경화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예요."

"포치 황당아오. 지금 농담이 나오는교?

"픽시는 궁금해요. 개미들이 알아서 굴은 막았주었는데 나중에 돌아갈 때 어떻게 뚫고 나가죠?"

"곰돌이도 돌아가는 문제는 생각하지 못했어 미안."

"탱구는 여왕개미가 죽으면 개미들이 알아서 흩어질거라고 생각해. 너굴."


곰돌이 친구들은 시커멓게 구워진 일개미들의 사체들로 막힌 통로를 뒤로 하고 얼른 기어가서 여왕개미방에 다다랐다.

여왕개미 방에 대빵 중의 대빵 여왕개미 한 마리와 날개 달린 수개미 몇 마리가 있었다.

수개미 몇 마리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깡충깡충 뛰거나 공중에서 몇 초를 머무르면서 갑자기 찌르는 공격을 해 왔지만

맷집은 병정개미보다는 약햇다 송곳으로 세 번 찌르니 끝났다.

여왕개미 방은 평범한 일개미 방의 열 배는 되는 거 같았다.

우리 방공호 보다 넓었다.


대빵 중의 대빵 여왕개미 덩치는 알을 낳는 배를 빼고 몸체만 병정개미만 한 크기였다. 그리고 머리가 유난히 컸다.

그래봤자 대형견 수준.

알을 낳는 배는 드럼통 십여 개를 연결한 듯한 거대한 아나콘다 같이 생긴 배였다.

워낙 배가 커서 움직이지는 못하고 곰돌이 친구들이 접근하는 걸 보고서도 그저 버둥거리기만 했다.

여왕개미는 딱히 자기 방어수단이 없는 것 같았다. 몸 곳곳에 꽃봉오리같이 생겼다고 해야할지 버섯포자 주머니같다고 해야할지 모를 묘하게 생긴

혹이 많이 있었는데 개미산 같은 걸 뿜었기는 했지만 우리는 방호복을 입고 있어서 소용이 없었다.

대빵 중의 대빵 여왕개미는 강해서 대빵이 아니라 페로몬으로 다른 여왕개미들을 홀리는 능력이 강해 여왕이 되는 듯했다.

학습만화에서는 번식기 때 여왕개미 한 마리한테 온 동네 수개미들이 다 몰려와서 짝짓기하려고 달려든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럼 대빵 중의 대빵 여왕개미는 한반도 전체의 화산개미 남자들을 다 홀리려나?


여왕개미는 자기 새끼들을 불살라 죽였다는 증오심 반, 자기를 살려달라고 비는 애원 반이 섞인 미묘한 눈빛으로 곰돌이 친구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정석이가 말하던

'큭 죽여라!'라는 여기사 플래그인가. 하지만 어림도 없지

곰돌이 친구들은 그저 임무를 완수할 뿐.


"포치 빨리 집에 가고 싶소. 마무리 하자 아잉교."

"그렇지."


곰돌이 친구들은 접이식 낫을 펴고 손바닥 실밥이 터져 충전재가 삐져 나올 정도로 꽉 낫을 잡고 여왕개미 얼굴에 달려들어 난도질을 하였다.


쉬익 쉬익 푹 푹 푹찍


여왕개미 얼굴이 형체도 없이 박살이 나자. 알집을 낳으려고 꾸물구물대던 배는 시커멓게 변해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더불어 그때까지 통로에서 기어들어오려고 발악하던 일개미들의 발구르기 소리가 멈추었는지 사방이 고요해졌다.



"탱구 말대로 여왕이 죽으니까 개미들이 따로 놀고 있나봐?"

"다 끝났다."


"스프레이나 기름 남은 거 있는 골렘?"

"탱구 작은 지포라이터 기름통 하나 더 있어"

"역시 수송담당 탱구"

"리리카는 그거 탱구가 아끼던 물건이라고 생각하는데?"

"곰돌이는 왠지 탱구 물건을 함무로 쓰고 싶지는 않아."

"탱구 괜찮아 나중에 꽉찬 새 기름통 사면 되는 거지. 너굴."


그렇게 마지막으로 여왕개미도 태우고 귀환하려고 하였다.



굴을 되돌아 가면서 곰돌이 친구들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일개미 시체들을 걷어내면서 간신히 여왕개미방을 빠져 나왔다.

여왕개미를 잃은 개미굴은 그 많던 개미들이 정말 살았었나 싶을 정도로 개미들이 서로 우왕좌왕하다가 머리를 부딫히는 경우 빼고는

시간이 얼어붙은 듯이 고요하였다.

입에 먹이를 물고 있던 일개미들도 움직임을 멈추거나 애벌레에게 주려고 입에 물고 있던 곰팡이 덩어리를 자기가 먹고 있었다.


"포치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소, 지금 굴 속이 연기로 빡빡해서 앞이 잘 안 보인다 아잉교."

"곰돌이도 빨리 돌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 산소통을 벌써 반이나 썼어."

"그래 그래 어서 나가자."

"길은 다 기억하고 있지?"

"요한나 기억력을 얕보지마."

"픽시도 초롱이도 다 기억하고 있어요."

"탱구도 너굴"

"그럼 나가자"



곰돌이 친구들은 여왕개미 방에서부터 심장같이 생긴 육아방에서 통로를 기어가서 콩팥같이 생긴 큰 팜 체임버를 지나는 등 왔던 길을 되짚어서 발발발 뛰고 바둥바둥 기어가면서 중앙 방에 거의 다다랐다.

"픽시! 산소가 얼마 안 남았어요!"

"리리카! 산소 수치도 빨간색!"

"빨리 위로 올라가자"

"얘들아 어서 줄을 잡고 올라가"

"곰돌이는?"

"먼저 너희들 줄잡고 올라가면."

"알았어"

"퍼떡 가자 아잉교"


곰돌이와 친구들은 서서히 답답해지는 숨을 참고 로프를 잡고 낑낑 올라갔다.

내려갈 때는 쉬운데 올라갈 때는 미끄러운 방호복 재질 때문에 로프 잡기가 힘들다.

그나마 철사 갈고리가 달린 판다장갑 때문에 일단 올라가고는 있다.

숨이 차 오른다...

곰돌이는 산소통의 압력 수치를 보았다. 서서히 빨간색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러다 눈이 감길라.


삽으로 뚫어 놓은 환기탑 개구멍에 거의 다 와가는 것인데..


눈 앞이 갑자기 하얗게 변하면서 앞서 올라가던 친구들의 모습이 안 보인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곰돌이 눈 앞에 친구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정석이가 손을 아래로 뻗으며 곰돌이에게 다가왔다.

뭐지? 정석이는 핵전쟁이 끝나가던 해에 닿을 수 없는 가장 높은 하늘로.. 아마도 극락이니 도솔천이니 하는 곳으로 갔을 터인데?

왜?


시야가 흐려지기 직전에 뭔가 이마에 퍽 부딫히는 느낌이 들었다.

거의 눈이 감기기 직전에 시야가 흐릿하지만 다시 돌아왔다.

정석이가 아니라 승권이랑 류드밀라였다.


둘 다 뭐라뭐라 말하는 입모양인데 아무 소리가 안 들린다.

잠이 와서 눈이 감겼다.


그 뒤로는 필름이 끊겨서 잘 모르겠다.



아마도 다다음날?



곰돌이 친구들이 눈을 떴을 때 곰돌이 친구들이 있는 장소는 명중사의 깡통 막사 안이었다.

곰돌이 친구들은 입에 체온계가 물린 채, 핫팩을 여러개 마구 터뜨린 화섬솜 침낭에다가 아기 보자기에 쌓여서 도롱이 같은 모습으로 막사 침상에 누워 있었다.


"음.. 음.. 곰...곰.. 곰돌.. 음음.."

곰돌이는 체온계를 입에 문체로 침낭과 보자기로 만들어진 번데기(?)에서 기어나오려고 바둥바둥 거렸다


옆에서 스토브에서 불을 쬐고 있던 까까머리 스님 한 분이 침낭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곰돌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스님은 눈이 커지면서 몸을 확 일으켜 세우더니 버선발로 밖으로 뛰어 나가셨다.


"이보게들!! 꼬마 부처님들 깨어나셨다네!!!"


"오오 부처님의 은혜로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가지산 중봉 골짜기에서 서식하던 화산개미굴 퇴치 작전이 끝났다.

곰돌이와 친구들은 그렇게 오늘도 임무를 완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