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곰돌이 바람개비 마을의 곰돌이 - 동남쪽 폐허 중





회중전등을 켜고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펴보다가 요하나가 구석에 약약약약 이라고 적힌 간판을 발견했다. 

"곰돌아 저기 약국 간판이 있어"

"어 정말이네.. 잘했어 요하나"


약국 부스 앞에 타일, 강철 프레임, 공기 순환을 위한 환기 통로가 쌓여 있었고, 에어컨, 전선 묶음, 배전반 같이 생긴 전자기기 등의 천장에 붙어있는 붙박이 설비 들도 땅에 떨어져서 약국을 가로막고 있었다.

잔해 사이에 듬성듬성 공간이 있었다. 

곰돌이와 친구들은 설비들이 쌓인 잔해를 올라간 후 잔해 사이에 듬성듬성 난 공간들 중 하나를 골라 물건들을 조심조심 드러내서 딱 봉제인형 골렘들이 지나갈 만큼의 틈만 내고 약국 부스에 들어갔다.

약국 부스에 들어간 후. 혹시나 카피바라나, 두더지 괴짐승이 나타날까봐 약국 안에 떨어져 있는 타일이랑 가판대로 구멍을 대충 막았다.


약국 부스 안에서는 몇몇 사람의 뼈다구들이 흩어져 있었고 무너진 가판대 들과 진열장을 비롯하여 곳곳에 약병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땅바닥에도 영양제나 약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통들이 대굴대굴 굴러 다니고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선반에도 영양제와 이름 모를 약품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핵전쟁 때 건물이 무너지는 순간을 간직한 채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우와 초롱이는 말이아, 이걸 다 주워서 더플백에 담아 가지고 가면 우리 곰돌이 친구들은 부자가 되어서 식량 걱정이 없어질 것 같지 않니?"

"곰돌이는 적당히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 너무 욕심을 부리면 화를 입는다고 정석이가 그랬어."

"그래 그래."

"요한나는 이동에 방해를 받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담고 조금 쉬었다가 집에 갔으면 좋겠어."

"탱구도 찬성."


"포치는 무슨 약 담으면 되는교? 거 뭐더라 아목살?"

"픽시! 아목시실린, 포치 목살 먹고 싶으세요?"

"아 포치 농담도 못하는교."

"리리카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 헷갈린 거라고 생각해. 아니면 고기가 먹고 싶다거나."

"아 제발 좀."


곰돌이와 친구들은 더플백을 꺼내서 용병 형들이 적어준 약품 항목이 적힌 종이 쪽지를 보고 최진우 관리자 형이 말한 대로 끝에 biotic이라고 끝나는 약품이나, 한글로 무슨무슨 '라민', 무슨무슨 '실린'으로 끝나는 항생제들, 약간의 아동용 영양제, 감기약 치료제, 진통제 등을 담았다.

약품통을 가득 담으니 더플백이 좀 빵빵해졌다.


"우와 이게 다 얼마야인거냥, 다 가져가면 우린 가지산 시티에서 제일 유명한 용병 클랜이 되는 거 아니냥?"

미티가 장식단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요한나는 그냥 짐꾼으로 남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 요한나가 뿌리는 타천사의 매력에 빠지는 것도 좋지만 위험한 건 실어.인생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구.

"픽시는 특급용병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위험한 임무를 맡아야 한다고 들었어요"

"리리카는 유명해지고 싶은 것이에요. 아이돌이 될 거예요.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리리카가 부르는 노래를 듣게 하는 것이에요"

"곰돌이는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 동화책이나 읽고 바람개비나 돌리면서 말이야"


더플백에 도시에서 필요한 갖가지 약품들을 넣은 후 곰돌이 친구들은 약국 부스 안에서 잠깐 쉬기로 했다.

때를 보아 주변에 괴짐승이 없으면 밖으로 나가기로 하고 앞서 입구를 막기는 했지만 혹시 몰라 불안해서 긴 약국 계산대 옆에 트인 공간에 의자를 끌어당겨 놓아 방어진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러면 괴짐승이 쳐들어와도 시간을 벌어 주겠지.


파밍도 끝나고 방어진지 만들기도 끝난 후에 곰돌이와 친구들은 바닥에 어질러진 쓰레기들을 치우고 판초우의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 바닥에 고형연료 서너개를 담고 불을 피워 온기를 쐬었다.



곰돌이 친구들은 약품 파밍이 끝난 후 약국 부스 내의 구조를 살펴보았다.


손님을 받는 긴 약국 책상, 넘어진 진열장과 가판대들, 약국 내부에는 긴 녹색 책상이 하나 더 있었다. 책상 위에는 컴퓨터 본체와 ldc 모니터, 복사기 한 대, 커피포트 한 대가 있었다. 책상 옆에는 작은 약 분배기 기계가 놓여 있었다.   


"곰돌이 배고프다. 얘들아 우리 잠시 간식을 먹자"

"그래 그래."

   

곰돌이 친구들은 edc 파우치에서 부들과 강아지풀로 만든 크래커, 곰팡이유과, 건버섯 조각 하나를 꺼내 약품 통의 두껑에다 놓고 약국에 있던 약방망이로 개어서 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주운 식염수를 미리 담은 깡통에 가루를 풀고 계량스푼으로 휘저어서 버섯스프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깡통을 고형연료로 피운 횃불에 놓고 스프를 데워 먹었다.

식염수 그냥 먹어도 되나? 굴러다니는 생수통 그냥 먹어도 되나 하겠지만 어차피 봉제인형 골렘들은 겉보기에 깨끗한 물이면 그냥 마실 수 있다.

뭐 방사능은 모르겠다만 굴러다니는 생수통이나 식염수통에 들어있는 물을 끓여먹는다고 골렘이 탈 나지는 않겠지 뭐.


밖에서 파밍할 때 edc 팩을 챙기고 비상식량을 챙기고, 라이터, 성냥 등 점화도구만 단단히 챙기면 문제 없다. 이 놈들만 있으면 곰돌이 친구들이 머무르는 곳이 곧 여관이다.

고형연료로 만든 모닥불을 쬐면서 곰돌이 친구들은 피곤했는지 눈꺼풀에 무거운 이불이 덮히고 있었다.

잠시 잠이 들었다.


한창 쌔근쌔근 자고 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그르릉 그르릉 바닥을 긁는 소리와 정석이의 시골 친척집에서 잘 때 천장을 헤집고 다니던 시궁쥐들이 내는 타타닥 타다닥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마트 지하층에 잇달아 울려 퍼졌다.

뭐지? 괴짐승인가? 곰돌이 친구들은 귀를 쫑긋하였다.


곰돌이와 친구들은 핵 전쟁이 일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이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남은 짬으로 익힌 생존본능과 예민한 감각으로 벌떡 일어나서 각자 손에 무기륄 재빨리 거머쥐었다. 탱구랑 포치도 더플백를 비롯해서 짐을 번개같이 꾸리고 서로 서로 각자 무장을 확인하였다.

휘두르는 무기를 빼고는 8마리 골렘의 무장은 비슷비슷했다. 

보조무기는 후추가루 폭탄과 기름을 바른 탁구공 연막탄 각각 4개 (매캐한 연기를 뿜는 연막탄으로 사용한다), 

바늘과, 못 등 투척용 날붙이 약간, 근처에 깨진 유리조각이 많으니 투척무기 걱정은 없어 보였다.

원거리 무기로는 미니석궁과 새총은 이상 없고, 공기 압축종은 공기가 절반 정도 남아 있었다. 쇠구슬도 충분했다. 화햑총은 m60 경찰권총과 357 매그넘 권총을 가지고 있었다. 총알은 38 구경 총알 5발과 357 구경 총알 3발을 가지고 있었다. 총알이 좀 부족하네.


우당탕탕 하며 입구를 막은 타일이 부서지고 가판대가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뭔가 시커먼 그림자가 약국 입구를 막은 잔해의 좁은 틈에서 불쑥 나타났다.

봉제인형이 간신히 왔다갔다할 틈에서 시커먼 밀가루 반죽 같이 생긴 그림자 형상이 붉은 안광을 뿜으면서 기어들어오려고 했다.



"저게 뭔교? 뉴트리아 괴짐승 새끼들 아잉교?"

"요한나  싫어!!"


그림자 형상들의 정체는 뉴트리아 괴짐승이었다. 골렘들과 같은 숫자의 카피마라 괴짐승 무리였다. 



뉴트리아 괴짐승은 핵 전쟁 전의 원래 뉴트리아보다 덩치가 훨씬 크다. 그런데 고양이도 아닌 것이 자기 몸보다 작은 틈에 머리를 쑤셔놓고 들어오려고 했다.

그놈들은 지 덩치가 도저히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좁은 틈에 머리를 비집고 낑낑거리더니 기어코 앞발을 내밀고 나서는 앞발로 잔해를 밀면서 약국 부스 안으로 들어오는데 성공하였다. 아무래도 뉴트리아 괴짐승은 고양이처럼 좁은 곳이라면 머리만 들어가서 나올 공간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동물인가보다.

한 마리 한 마리씩 약국 부스로 꾸물꾸물 기어서 들어오더니 잠시 모여있다가 뉴트리아 무리는 두 패로 갈라져서 쳐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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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편에서 이어지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