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다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고 가깝다고 하기에도 조금 애매한 미래, 인류는 치올콥스키가 말한대로 요람을 벗어나 별빛이 가득한 드넓은 세상으로 나갔다.
2번의 핵전쟁과 이상기후로 황폐화된 지구와 그로 인해 지층을 형성할 정도로 쌓인 수많은 전쟁 기계들의 잔해, 그리고 요람을 채 벗어나지 못한 소수의 동포들을 내버려두고 말이다.
여하튼, 그 뒤로 500년. 한 남자가 과거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지대라 불렸고 반쯤 박살난 이 50m 높이의 장벽을 최초로 세웠다는 옛 미합중제국의 황제 트럼프 1세의 이름을 따 지금은 트럼프 월(Trump Wall)이라 불리우는 곳을 걷고 있었다.
남자는 옛날 옛적 카우보이처럼 솜브레로와 판초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며 특이하게도 요즘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BFR이라는 각인이 새겨진 대구경의 6연발 리볼버를 한 자루 차고 있었다.
걷던 남자는 트럼프 월 인근에 위치한 유일한 촌락에 입성했고 이 곳이 익숙한 듯이 술집이나 총포상과 같은 외지인들이 흔히 들를법한 장소에는 눈길 조차 주지 않은 채 구석지고 낡은 창고를 향해 곧바로 다가갔다.
- 달각달각
"이런 씨이발.."
낡은 창고에 걸맞은 녹슬어 빠진 철제 자물쇠가 문을 굳게 닫아걸고 있었고 남자는 묵색 금속으로 만들어진 열쇠를 꽃아 자물쇠를 열려 했으나 세월이 그것을 막아섰다. 녹이 슬어버린 탓에 열쇠구멍이 고장나버린 것이다.
"별 수 없지."
열쇠를 다시 호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은 남자는 허리춤의 리볼버를 뽑고 빙글빙글 돌리다가 방아쇠를 당겼고, 그 날 자물쇠는 45-70 구경의 납탄 두 발을 맞고 생을 마감했다.
- 끼이익
그렇게 자물쇠가 주조된지 170년만에 다시 흙으로 되돌아갔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지 남자는 부츠발로 잔해를 사뿐히 즈려밞고서는 삐걱대는 창고 문을 열고 본래 자신의 것이었지만 한번 탈취 당했고, 수많은 고생길을 지나 이제야 되찾은 금속제 거인이 누워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다, 이스트우드."
남자가 반갑다는 듯이 인사를 건넸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도 당연할 것이 이 금속제 거인, 이스트우드에는 서부 실리콘 협곡의 전자-부족들이 만든 기계-지성이 탑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사를 건넨 남자는 그대로 누워 있는 이스트우드의 위로 올라탄 뒤 흉부의 해치를 열기 위해 잠금 장치를 360도 돌렸다.
이 쪽은 녹이 슬지 않았는지 경쾌한 철커덕 소리와 함께 해치가 열렸고, 콕피트의 안은 약간 먼지가 내려앉은 것을 뺀다면 오래 방치된 것 치고 생각보다 깨끗했다.
남자는 그대로 좌석에 앉아 조작 레버를 양 손에 쥐었다 편 뒤 각종 스위치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전압 체크 , 유압 체크 , 온도 체크 , 융합로 반응 정상 , 자가 진단 프로그램 작동 , 사출 좌석 정상 , 전투 예측 데이터 링크 활성화 , 시스템 올 그린.."
사실 남자도 이 말의 뜻이 무엇이고, 저 스위치가 무얼 위해 동작하는지는 모른다. 그저 디트로이트에 자리잡은 녹슨 쇠의 사제단으로부터 이걸 인수받았을 때 이스트우드를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성스러운 주문과 의식이라 들은 것을 그대로 따라할 뿐이니까.
"이스트우드 기동."
남자가 주문의 마지막 단어를 외자 감겨져 있던 거인의 눈이 초록색 섬광을 발하며 뜨여졌고, 완전한 구형의 모습을 띈 조종석 벽면에 불이 들어오면서 밖의 풍경이 투영되었다.
그와 동시에 사제단에서 망막 UI라 부르는 것이 내 눈을 향해 쏘아져 이스트우드가 앞으로 얼마나 움직일 수 있고 가지고 있는 탄약은 얼마인지 알려주었다.
"120mm 중돌격소총 1정에 35발인가, 그리 많이 남아 있지는 않군."
그래도 오래 방치된 것 치고는 양호하다고 생각한 남자는 그대로 이스트우드를 일으켜세워 창고를 부숴버린 뒤 천천히 걸어나갔고, 기겁한 트럼프 월 사람들의 소총 -물론 중간중간에 기관총이나 낡아빠진 옛 시대의 대전차 미사일도 있긴 했다- 세례를 가볍게 씹으며 황야를 향해 걸어나갔다.
철기병 이스트우드과 그 주인인 남자, 조니 래드클리프의 신세계 여정은 지금부터일 것이다. 아니면 말던지.
오랜만이다 게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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