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장이 대체 왜 내 얼굴을 본다는 것일까..?


한별은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일단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뒤 승강장이 아닌 역장실로 걸음을 바꿨다.


도곡역의 역장실은 본래는 2층에 있었지만, 핵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2층이 아닌 1층으로 역장실을 옮겼다.


다른 역과 이동할 수 있는 승강장과 가장 거리가 먼 곳. 그곳에 역장실이 있었다.


그녀는 전원이 꺼져있는 에스컬레이터의 계단을 오르던 중 한가지 생각이 났다.


옛날에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사람들은 높은 곳에 살수록 집의 가치가 높았다는 사실이 생각이 난 한별.

잠시 그 생각이 떠오르자 그녀는 살짝 뒤틀린 미소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인간은 변하지 않았다. 핵폭탄이 지상을 한번 휩쓸고 생활의 터전을 한번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인간은 변하지 않았다.

높은 곳을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었다.


아마 우리는 하느님처럼 높은 곳에서 저 아래의 인간들을 지켜보면서 그 분과 똑같이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려하다가 벌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카루스가 신을 모방한 대가로 양 팔에 단 날개를 잃어버리고 바다에 빠진 것처럼, 우리 역시 지하에 처박힌건 아닐까? 


"뭘 그렇게 실실 웃고 난리야? 음침하게 웃지 좀 마, 기분 나쁘니까"


"어, 음 아무것도..미안하다"


계단을 올라가다 말고 건식은 한별을 보며 눈을 살짝 찌푸렸다.


한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소를 지은것을 깨닫자마자 바로 표정을 차갑게 굳혔다.

그런 한별의 표정을 보자마자 건식은 앞머리를 손으로 한번 쓸어올리고는 방금전에 한별이 짓던 웃음과 비슷한 웃음을 흉내내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뭐 내가 좀 잘생기긴 했지?"


"뭐라는거야 븅신이"


쯧-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한별의 반응에 건식은 살짝 무안한지 푸하하 소리를 내며 계단을 한번에 두개씩 성큼성큼 올라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도곡역의 1층에 도착한 두 사람. 굵은 대리석 기둥 사이에 푸른색의 방수천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천막이 보였다.


그리고 천막의 입구에는 녹색과 회색 그리고 백색과 갈색의 얼룩무늬가 있는 전투복을 입은 사병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잔뜩 군기가 든 표정으로 입구를 지키고 있던 두 군인은 푸른색의 공익제복을 입은 건식과 한별을 보자마자 바로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내려놓았다.


"충성"


"어- 그래 충성, 역장님 보러왔어"


각이 잡힌 사병과는 다르게 경례를 하는등 마는등 손바닥으로 대충 눈썹을 가리는 시늉을 하며 사병 사이를 지나가는 건식과 한별.


천막 안에는 갈색 윷칠을 한 책상에 턱을 괸체 둘을 기다리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 있었다.

노란색의 줄이 세개있는 어깨의 견장이 그의 신분이 역장이라는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어, 아빠 무슨 일인데?"


자연스럽게 역장의 앞에 놓여져있는 손님용 의자에 엉덩이를 털썩 주저앉은체 역장에게 말을 하는 건식과 한별.


마치 오늘 점심은 버섯 볶음을 먹을까? 아니면 닭볶음을 먹을까 하는 식의 가벼운 어조로 말을 거는 둘의 태도에 역장은 잠시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작게 한숨을 내쉰후에 한별과 건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얘들아 요즘 매봉역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흐음....


역장의 말이 맞다는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한별.


매봉역이라... 최근에 한별이 업무를 볼때마다 매봉역에서 몰려드는 난민때문에 그녀는 그렇잖아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거기 사람들이 이곳으로 넘어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역을 관리하는 공익요원의 임무를 맡은 한별은 매봉역에서 넘어오는 난민들을 막아설 의무가 있었다.


잔뜩 굶주린 모습이 불쌍하다고 난민 한 사람을 받아줬다가는 다음에는 열사람, 그리고 백사람이 몰려올게 분명했다.


푸른제국, aka 삼성 라인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은 한별에게 있어서 난민을 막는 것 그것 말고 중요한 업무는 없으니까.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국경을 막으면 되겠네, 그럼 다 끝난거 아닌가?"


"아니 건식아, 대체 무슨일이 생긴 줄 알고 국경을 막니, 안막니 그런 소리를 하는거냐. 건식아 그런 결정은 쉽게 내리면 안되요...


나는 너의 그 짧은 식견이 장차 이 도곡역의 밝은 미래를 위협할까봐 매우 걱정이 된단다, 한별이 좀 봐라.

너처럼 쉽사리 말을 거내지 않고 혼자서 어떤 방법이 좋을까, 원인이 뭘까 고민하고 있잖니"


아무 생각 없었는데


"어흠..."


괜히 건식의 이목이 집중이 되자 얼굴이 붉어진 한별, 그녀는 괜스레 뒷통수를 긁적거리며 뭔가 말을 하려던 순간에 천막의 입구를 뚫고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어르신.. 어르신!!"


"저거 뭐하는 새끼야? 야! 지금 회의하고 있는거 안보여?"


필사적으로 몸을 버둥거리며 천막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려는 사람을 어떻게든 붙잡으려 하는 사병들.

한별은 거의 바닥에 기다시피 필사적으로 어르신이라고 말을 하며 천막 안에 들어오려는 사람을 보았다.


제대로 감지 않은 더벅머리에 얼굴에는 기름때가 잔뜩 묻어 더러웠고, 옷은 언제 빨았는지 모를 정도로 때가 꼬질꼬질 덮여있었고 심지어 고약한 냄새도 났다.

난민, 분명 매봉역쪽에서 온 난민이 분명했다.


"아니 씨발! 승강장에 있는 새끼들은 뭐하는거야? 아부지! 이거 근무태만 아닙니까?"


냄새나는데... 좀 씻지...


한별은 천막을 비집고 들어온 난민과 헹여 몸이 닿을까 본능적으로 한걸음 물러섰다.

난민과 쥐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전염병을 덕지덕지 달고 온다는 것이 공통점일 것이다.


한별은 평소에 난민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난민을 막는것, 그게 그녀의 주된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무 외에도 그녀의 소중한 이 도곡역에 난민을 들이고 싶지 않기 위해서 난민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는 아주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한별은 천천히 바닥에 자빠져있는 난민을 보았다. 어떻게 기관총이 가득한 초소를 뚫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아니 팔과 다리에 총알이 스치고 지나간 붉은빛의 핏줄이 보였지만 그래도 쏟아지는 납탄을 뚫고 온 사람 치고는 굉장히 멀쩡했다.


... 아마 평생 쓸 운을 다 쏟아부은게 분명해. 하지만, 그 운도 이제는 끝이야


전염병을 몰고오는 난민을 막는건 한별의 임무였다.

그녀는 자신의 역 도곡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그리고 도곡에 역겨운 전염병을 몰고 올 것 같은 난민들을 그녀는 너무나 싫어했다.

공익 제복의 어깨에 달린 가죽 케이스를 열어 검은빛 손잡이 인상깊은 m60리볼버를 손에 쥐었다.


공이를 한번 튕겨 탄환을 장전 시킨 후 한쪽 눈을 감고 천천히 가늠쇠를 바닥에 자빠져있던 난민의 머리통에 겨눈뒤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였다.


분명 내가 이 총을 쏘면 저 새끼의 더러운 피와 장기가 도곡역의 새하얀 대리석 바닥을 물들게 분명하겠지?

...그건 싫어. 


한별은 m60의 탄창에 있는 탄환을 뺀 후에 어깨에 달린 가죽 케이스에 총을 집어넣었다.


아무리 그래도 더러운 난민의 흔적이 이 신성한 도곡역에 남는건 한별에게 있어서 커다란 수치나 다름없었다.

한별은 도곡을 너무나도 사랑했고, 그런 도곡역에 더러운 무언가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뭐하냐, 빨리 두들겨 패버-"


살짝 나른한 목소리로 사병에게 지시를 내리던 중, 지상으로 올라가는 철제 셔터에 둔탁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자 황급히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한별.


쿵, 쿵, 쿵


일정한 간격으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바닥을 기어다니던 난민도 그런 그를 붙잡던 사병도, 한별과 역장, 건식은 입을 벌린체 아무 말 없이 셔터를 두드리는 소리에 입을 벌렸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어떤 무언가가 철문을 두드린다는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한별이었다.근 10여년만에 누군가가 도곡역의 셔터를 두드리는 소리에 한별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듯 강철 셔터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여전히 강철 셔터는 쿵, 쿵, 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울리고 있었다.


이제 한별은 한 뼘 정도의 간격을 두고 강철 셔터의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쿵,쿵,쿵 거리는 소리는 마치 강철 셔터를 찌그러트릴 것처럼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문 열어라"


그때 강철셔터의 너머로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  그건 분명 인간의 목소리였다.

한별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눈을 깜빡 거렸다. 그리고 그때 다시 들리는 목소리


"문 열라고, 했을텐데-아니면 다 박살낼거야 여기-"


"뭐해! 일단 열어 문!"


도곡역을 박살낸다는 위협이 한별에게 먹혔기 때문일까? 다급해진 한별의 목소리에 덩달아서 다급해진 사병들

그들은 방금전까지 깔아뭉게던 난민을 뒤로하고 강철셔터를 올리는 레버를 잡고 한바퀴 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아주 오랫동안 돌리지 않아서 뻑뻑한 레버를 돌리던 사병들의 얼굴이 붉은색에서 보랏빛으로 변해갈때쯤에 조금씩 셔터는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끼긱끼긱- 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올라가는 셔터, 한별의 손가락 3마디는 되보일법한 강철문이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강철문의 건너편에는...


"말도 안 돼"


한 인간이 당당하게 서 있는걸 한별은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