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이 빛을 토해냈다. 빛이 떨어지며 터널을 비추었지만 그 안은 여전히 어둡고 이해할 수 없었다. 효진은 경사를 내려가
발자국 소리를 내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귓가에는 자신의 발소리만이 맴돌았기에 가끔씩 변화하는 소리에 따라 자신이 무엇을 밟는지 알 수 있었다. 견고한 바닥을 타고 올라와 단순하지만 규칙적인 소리를 내는 것은 콘크리트였고 밑창을 뚫고 올라오는 자극과 함께 바닥에 비벼지는 건 유리 조각이나
플라스틱 조각이었다. 그리고 철퍽. 이건 물이었다.
때마침 그녀의 눈에도 아치형의 터널을 가득채운 수많은 물방울이 보였다. 작지만 균형 있게 배열된 방울들은 빛을 받아 빛나며 반짝이고 있었다. 어찌 보면 별 같고, 또 어찌 보면
알 같기도 했던 것들을 보면서 그녀는 자신이 원하던 역으로 온 것을 직감했다.





#
"정지!"

그녀의 것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밝은 빛이 터널을 비췄다.
갑작스러운 빛에 효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어느 정도는 예상해도 워낙 밝았기에. 익숙한 듯이 그녀는 손으로 얼굴에 그늘을 만들며 수첩 같은 얇은 종이 모음을 흔들어댔다.

"여기 여권 보이죠? 빨리 문이나 열어주세요."

초소의 문은 열렸지만 그건 그녀를 위해 열린것은 아니었다.
열린 문에서 한 남자가 다가오는 게 보였는데 규정대로
둘 중 한 명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초소 위에
서 있으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녹색 구식 방탄모를 쓴 남자가 효진의 손에서 여권을 잡아채며
겉표지에 붙어있던 한자를 보고 물었다.

"진짜 규장각 관원이요?"

"네, 맞습니다."

"혹시 이거 다른 사람한테서 훔치거나 뺏거나 아님.."

남자는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킥'하는 상투적인 표현을 입에서 뱉어냈다.

"그럴 리가! 당신은 제가 그렇게 보이나요? 트집 잡지 말고
여권을 보여줬으니 빨리 지나가게나 해주세요."

"요즘 역이 어수선해서 말이죠. 뭐라 말은 못 하겠는데
느낌이 낯설어요. 뭔가 낯선 기분이.."

"검문 끝났으면 들이든지 쫓아내든지 아무거나 빨리빨리 해라!
월급에서 발전기 기름값은 빼서 줄까?"

초소 위에 서있던 남성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효진의 앞에 서있던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문제없습니다! 빨리 들어가십쇼."

하고 그녀의 등을 떠밀며 초소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자
밝던 불빛은 꺼지고 드럼통 안의 모닥불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초소 위의 남성은 서랍에서 도장을 꺼내더니

"이거 어두워서 도장은 찍어지려나. 습해서 불도 잘 안 붙고.
암튼 여기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효진의 여권에 도장을 찍어냈다.

잉크가 서서히 종이에 스며들며 선명해지자 생선 몇 마리가 파란 잉크 속에 있는 문양이 또렷해졌다. 그는 여권을 반으로 접어서 그녀에게 주고는

"수서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고 말했다.





#
비릿한 냄새가 맨 처음 그녀를 반겼다. 메트로 내에서 유일하게 수산물을 다룬다는 특성상 이 냄새와 역은 결코 때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냄새를 뺀다면 이만한 역도 없었다. 적당히 밝은 수은등이 역을 비추고 있었고
가난해 천장을 고칠 여력조차 없어 가끔씩 돌조각들이
누군가의 머리를 치기도 하는 역들과는 달라 어설프지만
이 역의 천장은 페인트로 도색까지 되어 관리를 잘 받았다는
티가 확실하게 드러났다. 물론 삼성 동맹의 역은 더 밝고 더 관리가 잘 되어있었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기에 다른 의미로
사람이 살지 않는 곳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 역으로 가는 것에 대해 그녀는 그녀 스스로 지원한 것이었다.
생명이 넘쳐 흐르는 유일한 역.
적어도 효진은 그렇게 느꼈다. 골똘히 생각하며 과연 자신의 수첩에다가 이 역은 어떻게 적을지 생각하던 그녀는 그저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것을 담기로 결정했다. 인파 속으로 나아가며 희미해 하나의 소리로 알았던 것들이 점차 구별되며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비타민이 가득한 참치! 몸에 좋은 귀한 생선
잡수시고 건강 챙깁시다!"

"고등어 3마리가 단돈 총알 2발!
아마 여기보다 더 싼 곳 찾기도 힘들 겁니다! 돌아다니면
시간 낭비! 돈 낭비! 지금 여기서 사는게 최선입니다!"

"태평양 바다에서 온 소중한 선물 꽁치!
가장 신선하고 정성것 잡은 생선을 고객님들에게 드립니다!"

상인들이 외치며 말하는 소리에 이끌려 효진은 그들이 파는 상품들을 보기 위해 다가갔다. 익숙한 생선들의 이름을 들었기에 어쩌면 익숙한 얼굴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빨간 고무 통에 담아져 가지런히 누워있는 생선들에서 자신이 알았던 익숙한 생선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낯선 모습을 한 처음 보는 생선들이 희여 물건 눈을 시퍼렇게 뜬 체 친근한 이름으로 불리며
그녀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기분은 효진만의 전유물인 듯 보였다.
한 사내가 총알 3발을 상인에게 건네더니
꽁치 2마리만 줍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상인 또한 머뭇거리지 않고 고무 통에 있던 생선 중 몇 마리를 골라 그의 비닐봉지로 집어넣었다. 그래도 비늘과 지느러미, 아가미가 보이는걸 보니 생선인 건 확실해 보였다.





#
인파로 가득 찬 시장을 조금씩 벗어나 물가로 다가갔다.
물가 또한 요란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목을 물 안으로 처박고 있는 도관과 연결되어 있는 펌프가 가장 시끄러웠다.
효진은 이에 신기하면서 펌프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자
남색 우의를 입고는 접이식 의자에 앉아있던 사내가 입을 열며
말했다.

"아가씨, 거기 가까이 가지 마십쇼. 가다가 옷 배립니다.
지금 갑자기 지하에 물이 차서 빼고는 있는데 펌프가 이상한지
자주 말썽입니다. 그니까 접근하지 마십쇼."

온몸을 떨어대면서 누런 물을 다시 물가로 돌려보내는 펌프의 모습은 언뜻 보기에도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효진은 충고를 따라 더 이상의 관찰은 그만두었고
대신 주거 구역으로 가서 이 역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 부족하거나 이상하거나 설정 충돌되는 건 댓글로ㄱㄱ
쓰면서 느끼는 건데 일단 많이 써봐야 필력이 늘 것 같다.
내가 많이 안 써서 필력이 ㅎㅌㅊ인거처럼.
포붕이들은 나처럼 되지 말고 아무거라도 일단 써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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