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 단결. 수호."


"우리는 대한의 마지막 지성. "


연합대학은 서울 동북부에 위치한 주요 대학들중 지하철 역이 가까운 학교의 대학생,대학원생,교수들이 주축으로 이루어진 대학 연합체입니다.

현재 우이신설선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그 세력을 넓히고 있진 않으며, 공식적으로 대학연합에 소속된 대학들은 서울에 소재한 모든 대학교들입니다.


연합대학의 주요 기치는 "진리. 연합. 수호." 로써,

진리는 대전쟁이후 등한시된 학문의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으로, 대학연합에 소속된 "대학원생" 들의 주된 업무인 연구를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연합은 대전쟁 초기 흩어져있던 대학들이 한데 모여 이루어진 연합대학을 의미함과 동시에, 단합된 연합대학생들을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수호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지성인 연합대학이 사라져가는 지식들을 보호한다는것을 의미하며,

언젠가 지상의 방사능이 걷히고 문명이 다시 세워질때까지 지성의 등불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연합대학의 정치체제는 각 대학에서 투표로 선출된 총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들이 연합대학의 연합 총학생회를 구성하고,

총학생회에서 논의를 통해 연합대학의 큰 일들을 처리합니다. 그러나 각 대학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학생총회를 열어 주민과 학생들의 의견을 들으며,

또한 3개월마다 한번씩 정기적으로 연합 총학생회를 개최하여 전반적인 연합운영에 개개인들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합니다.


연합대학의 대학원생으로써 소속되기 위해서는 연합대학에서 주최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통과하여야 하며,

이 시험은 메트로 내에서 가장 공신력있는 시험으로 알려져있는 동시에, 가장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하는 시험이기도 합니다.

드물게도, 자신이 공식적으로 연합대학에 소속된 대학의 학생임을 증빙할수 있는 자료 (학생증, 증빙서류등이 대표적)들을

연합대학 사무부에 제출하여 "편입"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곤 합니다.


이렇게 대학생으로써 소속된후에는 자신이 원하는 학교, 학과를 선택하여 그 학교와 학과에 소속되었다는 신분증을 받게되며,

그 이후에는 본인이 하고싶은 연구를 진행하며 살아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은 입학을 한 후에는 4년안에 자신이 무엇을 연구하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논문"을 학교 학생 총회에서 발표해야 하며,

논문을 발표해야 비로소 연합대학의 "대학원생" 으로 인정받을수 있습니다. 만일 4년안에 논문을 발표하지 못할시에는 1년의 유예기간을 주며,

그 기간이 지난후에도 발표하지 못한다면 그 대학생은 "제적"을 당하게 되며 다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봐 재입학하여야 합니다.


연합대학은 공식적으로 학문을 가리지 않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일 지원이 많이 들어가는 학과는 공학계열이지만,

공학계열 학과생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40퍼센트가 조금 넘는 수준으로,

대전쟁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순수철학을 공부하거나

연합대학의 경제적 사정을 향상시키기 위해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도 있고,

연합대학을 지키겠다는 일념하에 군사학을 공부하는 생도도 있으며, 이외에도 문학,음악,체육등 다양한 학문들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쉽게 찾아볼수 있습니다.






"대전쟁" 당시 공습 사이렌을 듣고 지하철역으로 대피한 사람들은 꽤 많았지만, 몇몇역들은 생존자들중 상당수가

당시 역 근처 대학에서 재학중이던 학생들 혹은 교수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대전쟁이 끝난 초기에는 총학생회를 구성하여

학우들간의 협력을 통한 생존을 도모하였지만, 머지않아 사태가 단기에 끝날 상황이 아니란 사실이

메트로 사람들 사이에서 인식되기 시작하며 이들은 서서히 이익집단에서 역을 운영하는 주체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각 대학의 총학생회들은 서로의 존재들은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지만, 연합체를 결성해야 할 이유는 찾지 못하였기에,

이렇다할 통합을 위한 행동은 보이지 않았고, 서로간의 우호를 다지는데 그쳤습니다.


이들이 연합체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인것은 대전쟁이 일어난지 3~4년후, 삼성동맹의 불안정한 권력승계가 끝난후,

100인 평의회가 자리를 잡고 그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때입니다. 당시 삼성동맹은 2호선 전 지하노선을 손에 넣기 위해 부단히 움직였고,

왕십리역과 한양대역을 점거하고 있던 한양대생들, 건대입구 7호선역을 점거하던 건대생들은 이러한 삼성동맹의 행보에 대해 강한 우려를 가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삼성동맹측의 무자비한 자본주의적 태도들은 메트로의 입과 입을 거치면서 한껏 부풀려졌고, 학생들이 자신들을 연구노예로써 써먹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빠지게 하는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자신을 삼성동맹에서 탈출한 서울대 대학원생이라고 소개한 남루한 차림의 남성이

한양대역 경계초소에서 포박되었고, 뒤이어 자신이 삼성동맹에서 연구노예로 살면서 겪은 일들을

한양대,건대 학생총회에서 폭로하면서 이들은 그 공포심이 현실로 될 것이라 깨닫고 생존을 도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양대생과 건대생들은 건대입구 역 바로 옆인 어린이 대공원역을 점거한 세종대학교 총학생회와 연합하여 7호선 역들로 이주하는것을 검토하였으나,

극도의 공포심에 빠져있던 학생들 사이에선 삼성동맹측에서 우리들을 쫓아올지도 모르는데 그정도로는 어림없다는 의견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대세가 되었을뿐만 아니라, 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돌연변이 호랑이가 군자역에서 잡히는등 7호선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퍼져나감에 따라

한동안 총학생회와 학생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얼마지나지 않아 "대학 연합 학생회"에서 온 전령이 상황을 뒤엎었습니다.


햔양대와 건대,그리고 세종대생들이 공포에 빠져있는 동안, 그보다 더 북부에 위치한 1,4,6호선에 있던 대학교들의 총학생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나 2호선에 직접적으로 노출이 된것은 아니지만, 삼성동맹의 행보는 그당시로서는 메트로 내에서 위협적인 행보였을뿐만 아니라, 삼성동맹 말고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일대를 장악한 러시아 마피아들, 그리고 소규모지만 여러 위협적인 세력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남쪽과 다르게 이쪽은 비교적 일반인 생존자들이 좀 더 많았고, 그렇기 때문에 역을 운영하는 주체이면서 이익집단으로서의 성격이 좀더 강했습니다.

자연스레 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학우들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은 서서히 역의 구성원 보다는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써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류들은 어느 한 역에 국한된것이 아니라 여러 메트로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던 현상이었기에, 당연히 이들또한 역 내의 기류를 느낄수 있었고,

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던 역을 떠나 새로운 터전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은 주변 역에 위치한 대학 총학생회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터전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만, 많은 시간이 지남에도 이렇다할 방안이 나오지 않자 새로운 터전을 일구겠다는 계획은 점점 사그러들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우이신설선에 자리잡은 서경대와 국민대생들이 자신들이 우이선을 탐사한 결과를 각 총학생회에 제공하며 상황을 급격하게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우이신설선은 기존 노선에 비해 매우 최근에 건설된 노선이다. 따라서 노선 자체에 대한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으며, 이 점은 정보의 흐름이 원할하지 않은 메트로 내에서 굉장한 장점이라고 평가되며, 정보의 통제만 잘 이루어 진다면 방어에 큰 이익을 가져올것이라 생각된다.............북한산 아래쪽을 지나는 노선인 동시에 평균적으로 역의 깊이가 지하 3~4층인점, 그리고 최근에 시공되었단 점을 미루어 보았을때 붕괴의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고 평가된다.........역 마다 편차가 심하기는 하지만 상주하고 있는 인원이 20명도 안되는 역이 있을정도로 인구밀도가 상당히 낮으며 이는 새로운 터전을 일구는데에 있어서 매우 큰 어드밴티지가 있다고 생각된다...............따라서 본 탐사대는 우이신설선으로의 이주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총 A4 용지 3장으로 구성된 탐사대의 보고서는 전령들을 통해 각 대학의 총학생회에 전달되었고, 보고서를 받아든 총학생회는

이 사실을 긴급 학생총회에서 알리며 다시금 새로운 터전에 대한 열망을 불타오르게 만들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터전에 대한 열망뿐만 아니라 이러한 "고무적인 성과"가 각 대학간의 연합의 결과라고 생각이 퍼져나갔고,

이는 점차 대학연합이라는 구상으로 발전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

그리고 그 구상은 학생총회에서 학생들이 대학연합을 주창하는 모습을 어느 역에서도 찾아볼수 있을 정도로 무르익어나갔습니다.





대학 연합 학생회에서 온 보고서는 남쪽에서 그간 있었던 내분을 잠재우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터전은 너무 멀었고, 과연 저 "대학 연합 학생회"가 실존하는 단체인지에 대한 의견이 제시되면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다시금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었고, 종국에는 한양대 긴급 학생총회에서 싸움이 일어날정도로 의견대립은 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양대 총학생회 회장이 직접 고려대역을 방문하여 그 실체를 확인하며 연합 학생회에 대한 진위를 확인하였고,

어린이 대공원역에서 돌연변이 맹수들의 등장빈도수가 높아감에 따라 세종대와 건국대 총학생회측에서 이주를 강력히 주장함에 따라

3개 대학이 우이신설선으로의 이주를 결정하며 사태는 일단락 되었습니다.


"남쪽에서의 결정"이 북쪽에 알려짐에 따라, 북쪽에 위치한 대학들도 이주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남쪽에 위치한 대학들이 동대문쪽을 점거한 러시아 마피아들을 피해 7호선 태릉입구역을 거쳐 6호선 고려대역을 지나겠다는 결정을 전해지자,

우이신설선과 가까운 북쪽 대학들은 우이선을 신속히 점거한후, 역들을 조사하고, 공대생들을 동원해 거주공간을 확보하고 보강공사를 진행하며

"후발대"를 맞이할 준비를 다했습니다.


이윽고 약간의 시간이 지난후, 남쪽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이 보문역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들은 여정도중 몇몇을 잃었지만,

태릉입구역 근처에서 상당수의 서울여대생,그리고 육군사관학교 생도들과 교수들, 그리고 태릉선수촌의 선수들이 여정에 동참하며

오히려 그 대열은 더 늘어났었고. 예상보다 많아진 숫자에 학생들은 당황하였지만, 메트로 내에선 숫자 또한 힘이었기에

그들을 받아들이며 대장정을 끝마쳤다고 선언하며 우이신설선의 이름을 연합대학으로 선포하며,

최초의 연합 대학 총회를 개최하여 향후 대학의 행로등을 결정하고 각 대학에 역을 분배하며 연합대학의 역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이거 어떰 정사에 편입되려면 어디를 바꾸는게 좋을까 그냥 폐기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