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서울은 핵을 얻어맞았습니다. 국방부도 예외는 아니였습니다.


사실 국방부의 높으신 분들은 이미 전쟁이 일어난 뒤 세종시의 벙커로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용산의 한미연합사까지 이미 한강 이남으로 철수한 상황에서 끝까지 국방부의 기능 대신 최전방 부대의 사령부 역할을 하던 국방부 청사와 전쟁기념관에 남아있던 일부 고위직들과 영관급 군인들은 대부분 세상이 핵의 화염에 휩싸이면서 지하철로 들어가기 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신용산역은 그들 중 운이 좋은 자들만이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국방부 청사가 여전히 사령부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많은 전직 군인들과 군무원들은 신용산역으로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현 시점에서, 신용산역은 단순히 전직 군인이 다른 역들보다 많은 자치역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곳이 왜 특별한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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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에서 가장 큰 추모 공간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발발하고 군은 전쟁기념관에 있었던 비석들을 가까운 신용산역 지하로 옮겼는데, 서울이 핵폭격을 맞으면서 신용산역이 자연스럽게 전쟁기념관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추모 공간의 존재로 신용산역은 '메트로의 현충원'으로 불리며 성역화된 공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앞 역이 삼각지인 것도 그렇고, 남부에서부터 올라와 신용산역을 통과하는 상인들이 많아 메트로의 거대 세력들이 섣불리 건드리기 힘든 지리적인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매년 신용산역에선 상당히 진귀한 장면을 볼 수 있는데, 6월 6일이 되면 구정부는 물론이고 삼성동맹, 연합대학, 범람원 연맹, 심지어는 고려제국의 외교관과 멀리있는 순환연맹과 동부방위전선에 이르기까지 메트로 각지의 수 많은 세력들의 대표들이 일제히 신용산역으로 조문을 하러 옵니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것과 다르게 신용산역 내부에서 아직까지 적대세력간의 폭력사태는 일어나지 않았고, 각지의 대표들이나 상인들 역시 신용산역에서 만큼은 적대행위를 자제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과거의 전쟁을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신용산역의 현충원에 방문해 과거의 옛 영광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순국선열에 대한 조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