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적인 설정은 이럼

한반도는 핵전쟁으로 망했고 유지설비의 파괴로 동해안의 원전이 누출되면서 경상도 지방의 대부분은 방사능에 오염되고 그 인근의 공단들은 무인지대가 됨

여자들이 남자들의 폭력에 다시 지배당하는 야만의 시대가 돌아왔지만 구시대를 기억하던 여성들은 마초화된 한남들의 폭력을 피해 버려진 방사능 지대로 도망쳤고, 그렇게 하나 둘씩 마을이 만들어지다가 나중엔 포항같은 공업도시에서 나온 구시대의 물자와 생산 설비로 무장하면서 개조한 오토바이와 대형 트럭을 끌고 고속도로를 통해 전국을 약탈하고 한남들에게 피의 복수를 하는 여자의 가면을 쓴 무시무시한 유목민(Womad), 공포의 대상이 됨

그러나 대구와 부산 이남으로는 내려가질 못하는데, 문명이 붕괴되고 죽은지 백년이 넘어 이제 조롱이 아니라 진짜 숭배를 하게 된 노사모들이 부산과 김해를 중심으로 광신적인 십자군 국가를 조직한 바람에 서로 피터지는 국경분쟁을 벌이고 있음

이 때문에 여성들은 대외정책과 여성해방운동의 세부 방향을 두고 여러 파벌로 갈라져 대립하는데, 부족간 원탁회의에도 불구하고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대제국에 균열이 가고 곧 내전이 임박함

그리고 봉하마을은 노사모가 위탁한 한 재단이 성지로 관리하고 있지만 재단이 봉하마을에서 무슨 사업을 벌이는지는 철저히 숨겨져 있고, 이걸 파헤치려던 자들이 일제히 실종되면서 심상치 않은 대재앙의 전조가 예고됨

과거 남도 지방은 낙후된 농촌이었지만 그 덕에 핵의 불길을 상당히 피해가면서 문명이 번성하는 지역이 되었고, 북한은 베일에 싸인 무인지대가 됨

서울은 일부 구만 핵의 불길에서 살아남은 이후 지금까지 'C-8'이라고 불리는 정체불명의 시장의 통치를 한 세기가 지나도록 받고 있고 내곡동의 지하 어딘가에선 봉하마을과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는 소문이 들림

우연히 사건에 휘말린 주인공은 한반도가 다시 파멸하는걸 막기 위해 이 모든 지역을 오가게 되는데...






오전 6시. 산 너머에서 해가 떴다. 밝은 해가 하늘을 비추고, 쌀쌀한 공기를 데워준다.

강원도의 공기는 맑다. 청정한 자연도 잘 보존된 곳이다. 달리 말하면 개발할 가치가 없어 방치된 시골이란 뜻이고, 그 때문에 군사적 목표로서의 가치도 낮다는 뜻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거대한 마천루가 불타고 도로에 일렬로 늘어선 자동차의 유리가 녹아내리는 동안 운이 좋은, 또 영리한 사람들은 알아서 적절한 곳으로 도망쳤고 그 후손들이 뿌리를 박은 곳 중 하나가 이곳이다.

하지만 과거에도 문명과 거리가 먼 오지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이란건 다 그렇듯 늘 힘든 일이다.

"여기 있는게 다 오늘 나갈 물건들인가요?"

나는 성문 앞에서 물었다. 도성의 내부로 들어가는 대로에선 수레 끄는 소리가 요란했고, 거래 대금으로 지불할 상품을 싣는 짐꾼들의 동작이 분주해졌다.

"뭐 그렇죠. 저번에 받은 식량 대신 그쪽 마을에 보내야 하니까요. 근데 아직 못 갚은 대금이 많아요."

"아직도요?"

"요즘 털어갈거 다 털어가서 폐품업자들 보내도 수확이 시원찮잖아요. 그렇다고 더 북쪽으로 갔다간 다 죽을텐데 등 떠민다고 누가 가겠어요?"

이곳은 농사에 부적합한 지역이지만 주변의 버려진 군부대나 탄광, 채석장 따위에서 고철이나 중장비, 운이 좋으면 총이나 폭발물같은 무기를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노다지였지만 수십년도 넘게 흘렀는데 상식적으로 그게 여전히 남아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로서는 방법이 없다. 더 많은 수집가들을 보내고, 인근 부족의 영역을 침범하고, 더 위의 중무장한 고립된 사냥꾼들의 영역에 들어가기까지... 언제 일이 터질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채소 팝니다. 방사능에 오염 안 된 무공해 채소 팝니다."

"휴전선 너머로 가면 다 죽고 아무것도 없다던데요?"

"남쪽으로 가면 옛날처럼 전기도 잘 들어오고 멀쩡한 도시가 있다던데, 근데 이상한 광신도들끼리 맨날 전쟁만 한다던데. 동해로 나가서 살아돌아온 사람은..."

"현재 이상 없음. 오버."

그러나 내 일생일대의 위기는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새벽 안개가 고원에 펼쳐진 평야 위에 드리웠고, 낡아서 금이 간 아스팔트 도로는 저 너머의 파괴된 고속도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쿵......

쿵쿵......

쿵...... 쿵......

"이게 무슨 소리죠?"

"몰라요. 어디 지진이라도 났나?"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쾅쾅쾅쾅 쾅쾅쾅...

재... 기...

재...... 기......

"지금 무슨 소리 들리는거 맞죠?"

"뭔 소리가 들리는다는거에요?"

"지금 저기서 울리는 소리가..."

그리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 지평선을 가린 안개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정체는 실루엣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이제 그것은 더 맹렬한 소리로 자신들의 정체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소문은 들었지만, 한번도 본 적 없던 것.

찢어지는 듯한 거대한 합성음이 천지를 울린다.

"깊은 저 바닷속 한남소추!"

"보! 글! 보! 글! 고재기밥!"

"한남콘 얼굴에 좆같은 눈!"

"재기재기 고재기밥!"

생전 처음 들어보는 거대한 스피커음에 성문의 인근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연실색했다.

"저게 대체 뭔 소리야? 고재기밥?"

"쟤네들은 대체 뭔데 이쪽으로 지나려는거야?"

그리고 그 실루엣이 마을쪽으로 향한다는걸 사람들이 깨닫던 순간, 거대한 소음의 정체는 모습을 드러냈다.

"한남들을 모두 죽여라 이기야!"

방금 전 들리던 괴상한 노래는 전투 구호와 함께 시작된 맹렬한 북소리, 정확히는 북소리처럼 들리는 더 거대한 스피커의 폭발음에 묻혔고, 한 육중한 인간 비슷한 무언가가 선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메갈의 군단이었다.

개조된 수십톤짜리 메르세데스 벤츠 트럭의 앞에서 지휘관으로 보이는 그는 맹렬히 수신호를 보냈고, 그 뒤를 따라 수십대의 차량의 엔진이 강렬한 배기가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곳은 메갈리안의 땅이다! 한남들을 모두 재기시키자!"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

"비상사태다, 비상사태다! 모두 전투 준비!"

"지휘부 나와라, 지휘부 나와라, 긴급 상황이다!"

괴성을 지르는 한 무리의 여성들이 엔진의 박동에 맞춰 불을 내뿜으며 총을 들고 환호했고, 전열의 철판을 덧댄 장갑차량들이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멧돼지들이다! 저건 멧돼지들이다!"

온다.

쾅.

"저거 지뢰 밟고 터진거 맞죠?"

"빨리 대피해야 할거 같은데..."

다시 한번 불꽃이 솟았다. 이쪽으로 돌진하던 장갑차량들이 불길에 휩싸이며 바퀴가 멈췄고, 성문으로 긴급히 소집된 병력들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기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사정거리 내로 오지 않았다. 그들의 트럭에서 급조된 로켓으로 보이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일제히 점화되면서 지뢰밭으로 날아왔다.

오토바이를 탄 메갈 전사들이 지뢰밭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다시 로켓이 어딘가를 조준한다. 로켓이 점화된다. 궤적이 그리는 방향은... 우리의 성벽이다.

메갈 전사들이 난사하는 기관총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아수라장이 된다. 이래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성문이 뚫렸을 때쯤 내가 일하는 곳의 방공호로 도망가던 도중, 순식간에 폐허로 변한 상가 주변에 날아든 대전차로켓의 폭발에 휘말려 기절했다.

다시 깨어난 곳은... 차 안이다. 눈이 가려져 있다.

"끌끌끌... 오늘 자댕이들 수확이 짭짤하노. 머모님이 보시면 좋아할게 분명하노."

"요즘 한남들 물이 앵나 안 좋지 않았노? 이런 한남뽀이들 보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노."

"그러니 이런 촌구석까지 기어들어간게 아니겠노. 자댕이들은 근성이 부족해서 숨쉴한하면 금방 씨가 마른다 이기야. 오늘 열릴 회의가 기대되노."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근데... 회의?

"근데 저 자댕이 지금 깨있는거 아니노? 엿듣고 있는거 아니노? 확인 좀 해보는게 좋을거 같노."

차가 잠시 덜컹거렸다. 주변의 소음으로 봤을 때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고, 어딘가 굉장히 먼 곳으로 가고 있다.

"자르릉~ 자르릉~ 비켜나세요~ 한남충이 나갑니다 자르르르릉~"

저게 대체 뭔 말일까?

"자댕이들이 이렇게 비리비리해서 어디다 써먹겠노? 흔적기관 그거 달고 있어봤자 어디에 써먹노 그냥 떼버려라 이기야 깔깔깔깔깔."

뒤에 탑승해서 나같은 납치된 인질들을 감시하고 있는 한 여전사가 말했다. 원래 그런건지 전투 탓인지, 오랫동안 씻지 않았는지 강한 체취가 느껴졌다.

눈가리개 밑으로 얼핏 보인 여전사들의 모습은 전부 체격이 비대했으며, 검은 복면을 뒤집어쓰고 검은 쫄쫄이옷을 입고 있었다.

메갈리안이 저 먼 풍요로운 남쪽에서까지 공포스러운 위세를 떨치는 야만적인 부족이란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영양상태를 보았을 때 이런 약탈 사업이 순조롭다는 것 또한 매우 잘 알 수 있었다.

갑자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몸을 꿈틀거렸다.

"화장실..."

그 말을 들은 메갈 여전사는 총기 손질을 하다가 총을 내려놓고, 총의 개머리판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내 머리에 가격했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다음으로 눈을 뜬 곳은 감옥이었다. 일종의 유치장이었고, 내 주변에는 나와 같은 희생자, 남자들이 잔뜩 갇혀 있었다.

"저기요... 당신은 어디서 왔나요?"

"네? 여긴 어디에요?"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전부 한 지역에서만 납치당한건 아닌 것 같다.

"요즘 시상이 말세가 다 됐당께! 나가 꺼내주시요잉!"

"아무래도 좆된거 같노..."

"지는 아무것도 모르구만유. 밥은 언제 줘유?"

이곳은 어딘가 시설의 내부였다. 창살의 바깥으로 수많은 비대한 여자들이 오고 갔고, 높은 계급으로 보이는 사람, 전사로 보이는 사람, 기계공으로 보이는 사람 등이 지나갔다. 일종의 본부라는걸 눈치챘다.

그리고, 나는 나중에 여기가 세개의 파벌로 나눠져 있다는걸 깨달았는데, 우리가 본부의 한가운데에 공개적으로 가둬진건 과시를 위함이었다.

우리를 잡아온건 '웜'이라고 불리는 가장 거대한 세력이었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또다른 독특한 파벌이 모여 일을 하고 있는 공간을 보게 됐다.

그곳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중력이 궁금해 그래비티~ 오 운지 우흥우흥"

"우흥우흥"

여기는 비만인 사람은 덜해보였다. 그러나 말투는 더욱 이상했다. 이들이 뭔 생각을 하고 사는진 아무도 모른다.

"요즘 웜언냐들이 엠무 노래 듣는거 자꾸 흉자라고 패는데 존나 씹스럽지 않긔? 노무 화나긔."

"조금만 참으시긔... 이제 곧 대회 열리고 우리가 이기면 웜련들은 찍소리도 못하긔. 그때까지만 힘주시긔."

웜련들은 이런 도발적인 음악을 듣는게 불쾌하다.

"저 흉자년들은 또 뒤진 자지놈 부랄 빨고 있노? 내가 마음만 같았으면 흉자들도 한남들이랑 같이 재기시키고 싶어지노 안 그렇노."

"뒷담까는거 다 들리니까 늑앰한테 가서 따지시긔."

"앰? 지금 여혐용어 썼노? 흉자년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아예 명예 한남이 되뿌렀노. 너같은 년들은 인민재판에 회부해서 공짜로 탈조시켜주겠노."

"어디 한번 해보시긔. 굴절혐오 웅앵웅앵 노무 지겹긔 말하는 것도 눈치 보고 살아야 하긔? 한남스럽긔."

"이 흉자련들이 미쳐뿌렀노. 물리치료 좀 해야겠노."

악을 쓰는 소리와 뭔가 부러뜨리는 소란을 뒤로 하고, 과연 이 여자들이 우리에게 밥을 줄지 아니면 굶겨죽일지 다른 무궁무진한 방식 중 하나로 죽일지 추측하던 도중 바깥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왔다.

"이 자댕이는 먹물 좀 먹었다는 자댕이노. 옆에 있는 곳으로 따로 데려가서 가두고 심문해보겠노."

"알겠노."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다른 곳으로 가둬졌다. 밤이 되고, 나를 데려간 자가 내게 다시 접근했다. 새벽의 달빛이 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동안, 그녀는 내게 말했다.

"안심하세요. 저는 당신들을 풀어주기 위해 싸우는 저항세력입니다."

얼떨떨했다. 저항세력?

"그런데... 왜죠? 설명이 필요해요."

"어떤 설명이요?"

"모든 것."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당신은 이곳이 무슨 곳인지,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사는 존재인지도 모를거에요. 하지만 약탈을 업으로 삼고 남자들을 혐오한다는건 알겠죠. 그렇지만 우리 저항세력이 남자들을 숭배한다는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요. 우리는 올바른 세상을 원해요."

"그러면요?"

"당신을 여기서 빼내서, 남쪽으로 보낼거에요. 하지만 반드시 추적이 뒤따를거고, 거대한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거에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거대한 전쟁과 내전이 발생할 겁니다.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남쪽이라면 어디죠?"

"메갈리안 군단의 최대 대적자, 남부의 제국주의자, 그리고 죽은 자를 숭배하는 자칭 대제국의 성지..."

"거기가 어디죠?"

"봉하마을. 김해. 다른 말로는 진영읍."

"왜 가야 하죠?"

"봉하마을에 가면, 노사모들이 숭배하는 바위가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을을 관리하는 재단이 접근을 막고 있어요. 재앙을 막으려면 가까이 가서 진실을 알아내야 하는데 당신만이 그걸 할 수 있죠."

"만약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죠?"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그 대가가 뭔데요?"

"모든 것."




머릿속에 이딴 망상이 돌아다니는데 어딘가에라도 안 쓰면 날아갈거 같아서 여기다 한번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