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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독면 필터가 무슨 600탄이나 하냐 이 사기꾼 새끼들아. 너네 씨발 그거 다 부대에서 훔쳐온거 아냐? "



서울 어딘가의 축축한 지하실들이 이어져있는,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 에스컬레이터와 얼기설기 이어붙인 판자집이 널려있는 지저분한 지하철 플랫폼 사이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 손님. 맞을래요? "



" 아, 됐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5미리 600탄 아니면 안 팔거니까, 곱게 가슈. "



상인과 어느 사내가 언성을 높여가며 언쟁을 하고 있는 가운데, '공짜폰 특가 할인', 전국 최저가'라고 써져있는 오래된 팻말 위에 검은색 마커로 대충 '방독면 판매'라고 휘갈겨놓은 글씨가 을씨년스럽게 한 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니미 씨발. 무슨 람보도 아니고 탄창 20개를 맨손으로 들고 다니는 새끼가 어딨어. "



‘방독면 필터 전문’이라는 낡고 조잡한 간판이 박혀있는 지하 상가의 판자촌에 가까운 ‘재래시장’에서, 욕설을 내뱉으며 투덜거리면서 개찰구 사이를 걸어나오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인다.


구형 K-1 방독면과 이제는 없는 국군 예비군의 휘장이 검게 그슬린채 박혀있는 얼룩무늬 전투모를 깊게 눌러쓴 그의 모습은 얼핏 보면 마치 옛 세계의 군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기 2044년. 전쟁 이후 정확히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에서도 여전히 삶은 지속되고 있다.


세계대전이라는 명사가 2024년 핵 미사일이 지구를 뒤덮은 그 날을 통칭하는 단어로 바뀌면서 점차 옛 세계가 이제 오래 된 먼 동화 속의 이야기로 여겨지고, 지하철의 원래 용도를 알지 못하는 새 세대들이 태어나면서 지상이라는 곳은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서울 시민들의 삶의 터전이 지하로 바뀐 것은 그저 단순히 생존자들의 악착같은 생존기가 아니였다. 서울 시민들이 메트로로 피난함으로써 독특한 문화와 문명이 보존되었으며, 서울의 지하철은 이미 하나의 세계가 되었다.


메트로 초기에, 사람들은 그저 그때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거대한 중앙집권 정부가 모든 것을 해줄 줄 알았다. 전쟁 이전과 같은 복잡한 체제와 외교, 군사, 사법 체계, 지겹도록 보아 온 정치 싸움이 지하에서 부활하리라는 것을 핵전쟁에서 살아남은 서울 시민들의 대부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정지! 정지! 움직이면 쏜다! "



지상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설치된 견고해보이는 토치카와 두꺼운 콘크리트 방벽 사이로 누군가가 걸어나오자, 구석에 숨어있던 낡은 M16A1 소총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 기세로 겨누어진다.



" 선물세트 가져왔다 새끼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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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브유에 고추참치... 스팸까지? 너 이거 어디서 구한거냐? "



방금 전까지 M16A1 소총을 들이밀던 단발머리의 경비병이 방금 시작한 스토커의 자랑거리들을 구경하고 있다.



" 당연히 홈플러스지. 다 털어간줄 알았는데, 지하 푸드코트에 몇개 있더라고. 요즘 스토커들은 시식코너*만 돌 줄 알지 눈썰미가 없는 놈들이 태반이니.. 그리고 그건 스팸이 아니고 런천미트야, 병신아. "


[ * 스토커들 사이에서 소규모의 체크포인트를 뜻하는 은어 ]



" 하긴, 스팸이였으면 니가 혼자 쳐먹고 왔겠지. 그것보다도, 제발 들어오기 전에 언질이라도 좀 달라고. 또 그 소름돋는 광화문 개독새끼들이 튀어나온줄 알고 자동놓고 갈길뻔했잖아. 와, 이건 또 뭐야? 이건 어디서 났어? "



" 자동차 헤드라이트는 또 어디서 뜯어온거야? 이거 켜지긴 해? "



M16A1 소총을 일제히 겨누던 살벌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경비병들이 옹기종기 모여 조잡하게 만들어진 초소에서 ‘명절 선물세트’를 들고온 스토커의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 조금만 있으면 추석인데 선물세트는 하나씩 가져야되지 않겠나? 그거는 가져오는데 까마귀 새끼들때문에 뒤질뻔했다고. "



방금 전까지 지상에 있었던 스토커가 특유의 은테 안경을 고쳐 쓰면서 말한다.



" 어차피 그거 팔아먹을 생각 아니였어? "



" 이런, 들켰구만. 하하. "



지상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조용히 살펴보던 꾀죄죄한 다른 경비병이 일침을 가하자, 그는 멋쩍게 웃는다.




" 그나저나, 내가 말한 그 방독면 쓴 친구는 왔나? 안 그래도 멀리서 왔다고 그러던데. "



" 왜? 아까 그 방독면 쓴 미친놈 말하는거야? 안 그래도 아까 시장에서 잡상인이랑 싸우고 있던데. ”



단발머리의 경비병이 못미덥다는듯이 방독면을 쓴 남자의 얘기를 하자, 스토커의 표정이 밝아진다.



" 그 친구가 나한테 부탁 하나를 했었거든. 그래서 그런데… 너네 걔 알지. 인민전선에서 도망쳐 온 그 여자애 있잖아. ”



" 아, 그 여자애? 갑자기 걔는 왜? 너 설마... ”



스토커가 단발머리 경비병에게 인민전선에서 왔다는 소녀의 행방을 물어보자, 그녀는 뭔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묻는다.



" 아니, 시발 내가 노예로 누구 팔아먹을 놈으로 보이냐? 별건 아니야. 요즘 사람을 구할 일이 있거든. "



" 좀 의심스러운데. "



" 너네가 생각하는 그런거 아니야. 아무튼, 일단 먼저 간다. 고추참치는 너네 근무서면서 먹어라. "



스토커가 어수선한 초소를 빠져나오면서 천천히 멈춰선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내려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