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청난 굉음과 함께 누리호가 힘차게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아마 발사 성공인 듯 보이는데요, 앞으로 2분 정도만 더 나아간다면 궤도에 무사히 안착할 듯 보입니다. 김은식 박사님, 이 누리호가 지닌 의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 네. 천마호는 유엔 산하 인류 보존 위원회에서 추진하는 범 국제적 계획의 일부로써, 2* 세기 노아의 방주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엄격한 검사를 통과한 사람들을 우주선에 태워 다른 행성으로 쏘아 올리는 거죠. 지구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으니까 말이죠. 그리고..."


라디오가 끊겼다. 전력난으로 인한 주기적 단전이 그 원인이었다. 소파에 앉아있던 남자는 가만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 그의 귓가에는 이명이 일렁였다. 라디오는 차갑게 식어가고, 해는 천천히 저물지만 이명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다 라디오의 뒷 내용마저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귀보다는 머리에 문제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 특히 붉어지며 천천히 떨어지는 하늘의 광경을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노을녘은 아름답지만, 잔혹했다. 으깨져 선혈을 사방으로 흩뿌리는 태양. 그러다 쓰러지듯 지평선 너머로 천천히 사라진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다. 그건 기껏해야 하루도 못 간다는 것을. 그때, 누군가가 찾아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 반갑습니다. 참으로 오랫만이네요." 단발의 여성은 신발을 벗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그러게 말이야. 오랫만에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네."


"제가 여태껏 뭘 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딱히."


"뭐, 달라지셨네요. 이렇게 단답식으로 답하는 걸 보니까. 하지만 궁금한 게 없다고 하시는 걸 보니까 많이 달라지지는 않은 듯 하네요. 저는 할 말이 참 많은데 말이죠."


남자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노을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말할게 많아 보였다.


"선생님이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 혼자 말하죠 뭐. 캐스트 어웨이에서도 주인공이 혼자 말하잖아요. 아무튼, 저는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리고 살고 싶었죠. 그러니까, 저는 그 긴 시간 동안 위원회의 검사를 받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태껏 볼 수 없던 거죠. 어찌 되었든 저는 여기 있고, 결국 죽을 겁니다. 어쩌면 이게 제 운명일지 모르죠. 슬픕니다. 그러나 제 가슴을 파고드는 건 따로 있습니다. 제가 제 운명을 너무나 늦게 알아차렸다는 거죠. 오늘이 되어서야 알아차렸으니까요. 저는 멍청하거나 약해서 떨어진 게 아닙니다. 어쩌면 제가 그들 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제가 여기 있다는 건, 결국 여기 앉아 선생님과 대화하도록 만들어졌기에 그렇겠죠. 물론 선생님께서는 제 말을 듣도록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고요.... 선생님, 천마호가 사실 두 대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저는 천마-2 호의 승무원으로 뽑혔습니다. 천마-1호는 발사에 실패했고요. 하지만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특히 인명 피해는 더더욱 없었어요. 엔진에 미미한 고장이 있었을 뿐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로켓은 없지만, 사람은 너무나 많았고, 결국 제비를 뽑아서 결정해야 했고, 저는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고, 그래서 저는, 저는..."


그녀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눈물이 섞여 점점 묽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말했다.


"울어도 돼.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는 마. 어쩔 수 없었으니까."


"가족들은 다 죽어있었어요... 저 혼자 남아서, 땅을 파서, 묻었어요..."


"나도 그랬어. 다들 다 그랬을 거야." 그들은 서로를 안았다. 그러다 그녀가 말했다.


"... 이건 불공평해요. 사람들은 어쩜 저렇게 무책임 할 수 있는 거죠? 자신들이 망친 후 도망치다니..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적어도 지구와 함께해서 조금 이라도 책임을 져야죠. 이러면 안돼요."


"충분하다고 생각해. 어쩌면 그게 운명일 수 있어."


"어째서죠? 왜? 지난 100년간 지구의 온도는 20도가 넘어갔고, 전체 생명 종의 59%가 사라졌어요. 하지만 저들은 살아남잖아요. 우리만 여기 남아, 그 죗값을 받잖아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우리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지구는 영원히 그대로 일까? 태양이 변하더라도? 불청객의 침입을 받는다 하더라도? 인류는 지구의 희망이야.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게 어이가 없다 하더라도, 난 그렇게 생각해. 결국 지구는 언젠가 죽을 운명이고,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태어난 운명이야. 설령 자기 손으로 죽이더라 하더라도."


"이해가 가지 않아요. 전처럼 말하던 다른 말들처럼."


"우리는 지구를 기억 할 수 있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 지구를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곳에서 죽어가는 행성이 아니게 만들 수 있어. 첫 어머니로써 영원히 기억할 수 있어. 설령 지구라는 행성이 증발한다 하더라도. 나는, 우리가 씨앗라고 생각해. 식물의 마지막 열정. 그 후 결국에는 천천히 죽어버리지."


"그게 저들의 운명이라면, 우리의 운명은 장송곡을 부르는 게 되겠군요." 점점 어두워진 하늘 아래, 그녀는 작은 알약을 꺼내 들었다.


"자살은 죄야. 종교적으로 본다면."


"저는 죄를 짓고 태어날 운명인가 보죠. 선생님도 원하신가요?"


하늘 아래 가장 큰 별이 사라져도, 별들은 여전히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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