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 애니메이션의 극장판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은 건 6년
전 겨울의 일이었다.
거대한 복합 쇼핑몰의 지하에 위치한 국내 최대급 영화관은 평생을 아싸찐따로 살아온 나에게는 다소 난이도가 높은 곳 이였다.
하지만 10년간 이어진 대장정의 종지부를 찍는 작품을 대형 스크린이 아니면 어디서 보겠는가.
내가 그날 커다란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고 집을 나선 것은 딱히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거의 3년 만에 영화관에 온 내가 영화를 즐기고 있는 도중에 누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들어오는 일은 꽤 짜증 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 수십 명에 달했고,
순식간에 영화관이 아수라장이 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 자빠질 만한 일이다.
그 혼돈의 영화관에서 나는 딱히 주체적인 행동을 하지 못한 채 군중이 만들어낸 무질서한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질주하는 군중의 무리 속에 끼어서 함께 달리면서도,
나는 한동안 그들이 무엇을 피해 도망가고 있는 건지 알지 못했다.
내가 그 공포에 근원을 보게 된 것은,
도중에 바보처럼 넘어져 수많은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치이다 ‘결국 이렇게 밟혀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될 때 쯤이었으니,
어떤 무서운 것을 만난다고 해도 딱히 제대로 반항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눈앞에서 어떤 시체가 온몸에 피를 흘리며 서서 기괴한 모습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삶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엉금엉금 기어서 옆에 있던 철제 문 속으로 들어간 것은 칭찬 받을 만한 일이다.
우연히 들어간 그 문이 백화점 푸드코트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거대한 식품보관소라는 것을 몰랐어도 말이다.
그 곳에는 나 말고도 40대의 여자 한 명과 20대 남자 한명이 더 있었다.
남자는 피가 묻은 채로 부서진 나무 의자를 손에 꽉 쥐고 벌벌 떨면서 문을 응시하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로 쭈그려 앉아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또한 거칠게 뜯긴 팔목 하나가 그녀의 발목을 꽉 잡고 있었다.
10대의 여고생이었던 나는 수십명에게 밟히고 차이다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었으니,
누가 봐도 딱히 생존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팀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40대의 아주머니는 4일만에 자살했다.
갇힌 이래로 환기구 틈으로 보이는 희미한 빛의 변화를 하루하루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확실했다.
우리 둘은 아주머니의 시신을 거대한 냉동고에 넣어 놓기로 했다.
그 후 일주일동안 백화점 안에서는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그 기간동안 비명을 지르며 식품저장고 문을 두드린 사람만 해도 6명이나 되었다.
물론, 우리 둘 다 겁쟁이였기 때문에 한 번도 열어준 적은 없었다.
남자와 나는 서로 잘 지내지 못했다.
나는 사람이랑 대화해본 적 자체가 별로 없는 사회 부적응자 였고,
그는 이번 일로 무언가 나사가 하 빠진 것처럼 보였다.
식품 저장고는 굉장히 넓었기 때문에 우리 둘은 만날 일 조차 별로 없이 떨어져 지냈다.
2주차때부터는 총성과 폭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즈음 해서 우리가 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군대가 동원되었다는 것은, 이 빌어먹을 좀비 때도 곧 쓸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총소리는 3주차가 채 되기도 전에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밖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없었다.
32일째에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밖의 복도를 달려가는 소리가 들린 적이 있긴 하다.
그 용감한 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지금까지 아는 바가 없다.
54일째에는 잠을 자고 있는데 같이 있던 남자가 거칠게 내 입을 막고 옷을 잡아 뜯기 시작했다.
그가 진심으로 나를 범하고자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나도 그와 단 둘이 있으면서 우리가 인류 최후의 아담과 이브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어차피 죽을 거, 살면서 연애 한번은 하고 죽고 싶다는 마음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막상 그런 일이 닥치니 순간 겁이 났다.
나는 그를 밀쳐내고 급하게 냉동고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가 몇 번 냉동고의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나는 냉동고 구석에 쭈그려 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노력했다.
냉동고 안에서 그렇게 오래 버티진 못했다.
옷이 다 찢어져서 상반신이 다 들어 난 나의 차림으로는 냉동고의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냉동고는 아주머니의 시체와 우리가 모아 놓은 오물이 있었다.
물론 작은 냉장고에 넣어서 테이프로 마감을 해 놓긴 했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많이 대화를 해보진 않았지만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솔직히 나도 세계가 멸망하고 마지막 남은 둘이서 자손을 이어가는 상상을 한 적이 많았다.
나가서 사과를 받자.
그리고 침착하게, 내가 성인이 될 때 까지만 기다리자고 하자.
나 자신이 그가 살아갈 의미가 되자. 그렇게 마음먹기까지 2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리고 2시간 뒤에 내가 냉동고 밖으로 나갔을 때, 그는 자신의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
그 후로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전기는 9개월이 되가는 시점에서 끊겼고 (뭔가 조치가 있었는지 굉장히 오래갔다. 덕분에 그때까진 아직 인류가 남아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수도는 그 보다도 못 가 4개월차에 이미 녹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밖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비명소리는 놀랍게도 2년 6개월이 될 때까지 들려오기도 했다.
정체 모를 폭발음은 4년째 되던 해에 일시적으로 증가한 적이 있지만 대체로 비슷한 빈도로 일어났다.
좀비가 걸어가면서 내는 삐걱거리는 소리는 3년10개월이 될 때 까지만 들리고 그 이후론 뚝 끊겨버렸지만
나는 그 시점에서 이미 밖에 나갈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놀라울 정도의 무기력함이 길게 지속되었다.
4년 7개월째 문득 내가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식품저장고에 있는 제품정보를 중얼중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인간으로 남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었다.
5년6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식품저장고에 있는 식품명과 재료와 영양성분을 완벽히 외웠다.
그래봤자 생활에 달라지는 것은 없긴 했다.
어차피 나는 썩지 않는 건조식품밖에 먹지 못했다.
옷은 대체로 벗고 지냈다.
저장고 안에 물 티슈와 걸레, 물이 대량으로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름 깔끔한 상태로 있을 수 가 있었다.
대량의 뜻이라 함은 평범히 살았다면 평생 보지도 못했을 만큼 많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심심하면 물 티슈로 나의 몸을 닦고 닦고 또 닦았다.
물론 저장고 자체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자주 닦았다.
나는 단언컨데 멸망에서 가장 깔끔한 인류일 것이다.
내가 처음에 입고 있었던 청바지와 오버핏 점퍼와 목도리는 언젠가 밖에 나갈 때를 대비해 귀하게 모셔 놓았다.
그렇게 6년째가 되는 날이었다.
그 날은 뭔가 기분이 좋았다.
아니, 대체로 요즘 기분이 좋았다.
요즈음은 아침에 일어나서 몸을 닦고, 수십가지 건조식품 중에서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고르고,
식품 영양함량 맞추기 놀이를 하고, 거대한 저장고를 전부 깔끔하게 닦고,
달리기나 윗몸 일으키기 등을 하면서 건강에도 신경 쓰고, 콘푸라이트 박스로 세계의 랜드마크 만들기 놀이를 하고 있으면 시간은 금방 가고 말았다.
가끔은 종말이 오기 전보다도 더 바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긴 종말 전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나는 집에서 컴퓨터나 하는 히키코모리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오히려 삶이 더 알차 지니 새로운 시도를 하고싶은 열망이 들었다.
예컨데, 밖에 나가보고 싶다, 같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하염없이 떠돌았다.
6년이 지난 지금, 밖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고,
밤에 간간히 야생동물의 울음소리 정도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6개월동안 나는 조금씩 밖에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저장고에 있는 여러 물품들로 무기나 도구들을 만들고,
매일매일 운동을 하며 몸을 단련했다.
좀비와 싸우기 위해서 라기보다는 야생동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에 가까웠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밤에 동물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면 밖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저장고에 한 켠에 있던 포대나 바구니를 이용해서 커다란 가방 또한 만들었다.
가방속에 가득 들어간 내용물은 6개월동안 매일 조금씩 바뀌어 생존에 최적화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식품 저장고에 내가 들어 온지 6년 6개월 되던 때,
드디어 나는 모셔주었던 점퍼와 청바지를 입었다.
목도리 또한 가방 속에 넣어두었다.
나를 지켜주고 있던, 혹은 가두고 있던 철제 문이 괴랄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6년6개월만에 본 햇빛은 두려울 정도로 뜨거웠다.
새소리, 바람소리 모든 게 증폭되어 나의 귀를 쾅쾅 때려 댔다.
그럼에도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가는 길에 몇 구의 시체를 보았다.
모두 삐쩍 말라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무서운 기분이 들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이미 자연의 하나가 되어있었다.
내가 복합 쇼핑몰의 거대한 입구에 도달했을 때,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유리창이 깨진 거대한 빌딩들.
어지럽게 갈라지고 뒤엎혀 있는 아스팔트,
그 사이를 비집고 무성히 자라나 있는 초목.
마치 하나의 거대하고 위대한 폐허이자 유적.
이곳은 종말 이후의 세계, 포스트 아포칼립스였다.
그리고 난 이 세계에 어쩌면 마지막 남은 생존자였다.
오 쥑이노
다음 편 ‘내놔’
http://cm0010658cm.btoys.kr/?/etc/evt_calendar_2024.php
야짤 달력 새로 만들었다 이번에도 공짜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