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서
※ 1957년에 호주에서 네빌 슈트(Nevil Shute, 1899~1960)에 의해 출판된 장편소설인 해변에서(On the Beach)를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이 마지막 만남의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듬어 찾고
그러면서도 애써 말을 피한다.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가 아닌 훌쩍임과 함께.
- 텅 빈 사람들, T. S. 엘리엇 -
핵전쟁이 발발한 그날 이후, 세상은 멸망했다.
처음에는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참사가 난 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다. 동아시아, 중동, 유럽까지⋯결국 세계는 파괴되었다.
그러나 일부 지역은 무사했다. 군사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졌거나, 아주 운 좋게 핵미사일을 막아냈거나.
그 지역 중 한 곳은 바로 강릉이었다. 물론 강릉에도 핵미사일이 떨어질 뻔했으나, 그곳의 군대에 의해 저지되었다.
그러나 강릉 시민들은, 결국 찾아올 그날을 대비해야만 했다. 다만, 그때를 대비할 여유가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신문을 읽고 있는 조성연이다.
“야, 너 그거 아직도 읽고 있어?”
친구다.
“아, 그냥. 읽을 것도 요즘 없잖아.”
“빨리 수업 들으러 가자!”
“그래.”
성연과 친구는 강릉의 가톨릭관동대학교에 있다. 그들은 수업실로 가다가, 전광판을 쳐다본다. 전광판에는 ‘오늘의 방사능 수치’라는 문구와 그 밑에 45mSv라는 수치가 보인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소식이 있다.”
강릉의 해군기지이다. 그곳에 승조원들이 모여서 함장의 보고를 듣는다. 함장의 뒤에 ‘구조요청 신호 발견’이라는 문구와 어느 인천 해수욕장의 사진이 보인다.
“핵 공격을 당한 인천 쪽 해수욕장에서, 신호가 왔다. 그 내용은 핵미사일이 날아오니까 구조해달라는 내용이다. 물론 인천지역도 방사능 낙진에 심하게 오염된 상태이지만,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실행한다.”
함장은 화면을 넘긴다. 넘긴 화면에서는 작전에 대해 설명한다. 작전명은 ‘달을 향한 외침(Crying for the Moon)’이다.
“다행히 바닷가에서 신호가 잡혔기 때문에, 1명의 방호복을 입은 승조원만을 보낼 예정이다. 지원자 있나?”
승조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치를 본다. 그러다가 팔 하나가 올라간다.
“소위 박우진! 제가 하겠습니다!”
함장이 웃는다. “박우진 소위. 지난번 활약에 이어서 또다시 공훈을 남기고 싶나?”
“아닙니다. 그냥 군인으로서 의무를 다하고자 합니다.”
“알겠다.”함장은 주위를 둘러본다. “다른 지원자는 없나?”
잠시 침묵.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좋다. 그러면 우진 소위를 보내서 생존자를 수색하겠다. 이상!”
“자, 그럼 둘이 잘해 봐. 잘 됐으면 좋겠다. 알았지?”
관동대 내 카페이다. 성연과 우진은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있고, 정미래는 그들 옆에 서 있다.
“네, 선배님.”
성연이다.
“네, 중위님!”
우진이다.
미래는 인사하고 떠난다.
“그래서, 우진님이 핵미사일을 막으셨다고요?”
“아, 네. 어쩌다가 그렇게 됐네요.” 그는 웃는다.
“와, 대단하세요! 저였으면 그렇게 위급한 상황에서 건의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좋아하시는 건 뭔가요?”
“아, 저요? 일단 보시다시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요.”
그는 컵은 살짝 친다.
“그다음에는 고기도 좋아해요.”
“무슨 고기 좋아하시나요? 같이 말해볼까요?”
잠시 침묵. 잠시 후 그들이 서로를 가리키며, “소고기!”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제 제가 물어볼게요.”
우진이다.
“네네,”
“취미가 뭐예요?”
“아, 저는 자전거 타기요! 그리고 여행하기!”
“저도 여행가는 거 좋아해요! 어디가 좋으세요?”
“음 일단 전 크게 가리지는 않아요. 사람 북적이는 안목해변도 좋고, 사람 적고 조용한 허난설헌? 아무튼 그런 기념관 같이 조용한 분위기도 좋아하고요.”
“저도 아무 데나 가요. 아니면 요 앞에 대도호부관아인가? 그런 곳에서 노시는 건 어때요?”
“좋죠! 특히 친구나 썸 타는 분과 함께 걸으면 더 좋아요.”
서로 웃는다.
“저희는 공통점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우진이 말한다.
“그러게요.”
“아 근데 저, 3일 뒤에 임무가 있거든요.”
“무슨 임무요?”
“아, 잠수함 타고 생존자 수색하러 가는 건데⋯”
잠시 침묵. 둘 다 눈길을 피한다.
“어디로 가시는데요?”
성연이 말하며 그를 쳐다본다. “인천 쪽 해수욕장으로 가요. 거기서 구조요청이 와서요.”
“아, 그러셨구나. 정확히 어디 지점에서요?”
“다행히 바닷가 바로 앞에서 왔대요. 얼마 안 멀어요.”
“알겠어요. 그러면 임무 끝나고 또 봬요.”
“네, 감사합니다.”
강릉항에서 저 멀리 잠수함이 세워져 있다. 잠수함 바로 앞에는 ‘달을 향한 외침’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그 밑에 시민들과 군인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성연과 우진은 그 앞에서 서로 바라본다.
“이제 가볼게요. 나중에 봬요!”
우진이 말한다.
“네, 잘 다녀오세요!”
우진이 등을 돌리고 잠수함으로 간다. 잠시 후, 잠수함이 출항하며 서서히 물에 잠긴다.
방독면과 우비를 걸친 강내빈은 목발 하나에 의지하며 길을 걷는다. 그는 부들거리며 신음한다.
“허억, 허억⋯여긴가⋯?”
성연은 그의 앞을 지나가다가 서로 마주본다.
“어? 누구세요?”
성연이다. 내빈은 말없이 앞으로 손을 뻗으며 쓰러진다.
성연은 주위를 돌아보며 말한다. “어? 어? 저기요? 아무도 없어요”
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119를 부른다.
“여보세요? 병원이죠? 여기 피폭환자 한 분 계시는데요!”
강릉의 종합병원에 있는 피폭환자 격리실이다. 내빈은 방독면을 벗었고, 투명한 칸막이를 두른 침상에 누운 채 신음한다. 칸막이 밖에서는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과 봉사자 성연이 있다.
“환자의 상태는?”
의사가 말한다.
“아주 나빠요. 며칠 내로 사망하실 수 있습니다.”
간호사다. 그녀는 내빈에게 얼굴을 돌린다. “환자분, 환자분? 죄송한데 성함과 출신 지역 좀 알려주시겠어요?”
“으으으⋯네, 저는⋯으, 강내빈이고요⋯”
의사가 종이에 글씨로 쓴 다음에 환자에게 보인다. “‘강내빈,’ 맞습니까?”
“으으⋯네.”
“그러면 어디서 오셨어요?”
의사다.
“수도권⋯그냥 수도권⋯”
“아, 그러셨군요. 알겠습니다. 간호사님!”
의사와 간호사가 말한다. 성연은 내빈에게 다가간다.
“저기 실례합니다⋯”
성연이다.
“네⋯?”
“혹시 서울에서 오셨나요? 저희 부모님도 거기 계셨다가 연락이 끊겼는데⋯”
“⋯아, 네. 서울 분들과 같은 곳에 대피했어요⋯으으으⋯”
“아, 그러면 혹시 저희 부모님 보셨나요?”
“부모님⋯으으⋯성함이⋯?”
“아 저희 부모님은⋯”
“으으으⋯또⋯또야! 내 머리⋯!”
내빈은 머리를 감싼다.
“아, 죄송합니다⋯”
성연은 뒷걸음질한다.
“성연님, 아마 트라우마가 심하신가 봅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의사다.
“아, 네⋯”
성연은 내빈을 바라본다. 그는 몸부림치고, 그녀는 바라보다가 눈을 질끈 감는다.
“어쩌면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우진이다. 그는 방호복을 입고 있다.
“글쎄⋯난 없을 것 같은데.”
미래다. 그는 우진을 보고 있다.
“근데 신호가 왔다면, 일단 가능성은 있지 않겠습니까?”
“언제 왔느냐에 따라서 다르지.”
잠시 침묵. 우진은 방호복을 입었다. 미래는 우진에게 무전으로 말한다.
“내 말 들려?”
“네, 잘 들립니다!”
“이미 알겠지만, 무전이 잘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서 잠수함으로 소리를 일정 주기로 낼 거야.”
“네.”
“물론 바다 앞에 있는 편이라서 금방 오겠지만, 거기서 생존자나 생존자의 짐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가져오면 안 돼.”
“네.” 미래는 우진의 등을 두드려준다.
“잘해봐라. 이번에도 믿는다!”
“네!”
인천 해안가로 우진이 보트를 타서 다가간다. 잠시 후 우진은 방호복을 입고 보트에서 내린다. 내린 직후 ‘뿌뿌, 뿌뿌’소리가 난다. 잠수함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는 GPS를 보며 해안가를 두리번거린다. 확실히 남은 것은 없다. 다만 조금씩 있는 시신이 보인다. 썩지도 않는구나. 벌레도, 균도 다 죽었겠지.
‘이쯤인데⋯’
그는 건물 사이에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GPS 신호음이 나는 간격이 점점 더 짧아진다.
‘그래, 거의 다 왔다!’
소리가 계속 나며, 그는 뛰어간다. 8미터, 6미터, 4미터, 드디어 찾았다!
“어?”
아무도 없었다. 그 대신 태양전지 배터리와 연결된 핸드폰 하나만 있었다.
그는 가까이 걸어간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그는 핸드폰을 본다. 일단 켤 수 있다. 킨 다음에 설정으로 가서, 배터리 사용 시간⋯아, 이렇게 됐구나. 핵전쟁 직후 잠시 꺼졌다가, 그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켰어. 그동안 충전이 되었네. 주기를 보면 아침에 잠시 켜졌다가, 그 다음에 꺼졌고⋯.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고작 이거였어? 고작?”
주변을 잠시 돌아보다가, 콜라 캔 하나를 바라보고 발로 차버린다.
“씨발!”
발을 동동 구른다.
“개좆같네, 씨발! 애미 씨발 진짜⋯”
핸드폰에 삿대질한다.
“왜 니만 있는 거냐? 주인은? 주인은 어디다 쳐두고 니가 씨발 왜 여기 혼자 있는 건데!”
그래도 씨발⋯보고는 해야지.
“아아, 중위님. 여기는 우진. 들리십니까?”
“그래, 들린다. 말해라.”
“진원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핸드폰이 보조배터리로 충전된 겁니다.”
“자세히 얘기해봐.”
“배터리 사용 시간 보니까, 핵 공격 직전에 꺼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배터리가 태양열을 쓰다 보니, 저절로 충전되어서 켜진 다음에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알았다. 귀환하라. 이상.”
‘뿌뿌, 뿌뿌’ 소리가 다시 들린다. 빨리 가야지.
바다로 몸을 돌린다.
아 잠깐. 저것도 가져가야지.
그는 핸드폰과 배터리를 챙기고 간다.
내빈은 여전히 격리실에서 신음한다. 의료진과 성연은 그를 바라본다.
“이거 하나만⋯으으⋯기억해줘요.”
내빈이다.
“뭐죠?”
의사다.
“제 여친이⋯죽었어요⋯”
“아⋯안타까워요.”
성연이다.
“같이 오다가⋯죽어서 묻어줬는데⋯그 위치는⋯으으윽⋯!”
성연은 생각한다. 나도, 곧 저렇게 되는 걸까⋯
“⋯이니까, 차라리⋯여친⋯에게 갈게요⋯으으윽!”
“네, 알겠습니다. 간호사님, 그 약 가져와요!”
“설마⋯아직 시험용인데요?”
“상관없으니까 빨리요!”
간호사는 약들이 들어있는 서랍을 열어본다. 의사는 성연을 바라보며 “성연님!”이라고 말한다. 성연은 놀라며 “네네!”라고 말한다.
“제가 환자분을 고정할 테니, 물 한 컵만 떠와요!”
“네! 그렇게 할게요!”성연은 격리실을 나간다. 잠시 후 돌아온 성연이 간호사의 알약을 보고, 의사를 바라본다.
“이거⋯설마⋯”
성연이다.
“네, 맞아요. 환자분을 고통 없이, 보내드리게 하는 약이에요. 아직 시험용이지만, 지금 아니면 쓸 곳이 없을 것 같네요.”
의사는 누워있는 내빈을 일으켜 세운다.
“자, 환자분!”
“⋯네⋯.”
“이 약 잡수시면, 고통은 없으실 거에요. 괜찮으시겠어요?”
“⋯네! 차라리 여친에게 보내주세요!”
“간호사님, 물과 함께 그 약 먹여드리세요. 빨리요! 성연님도 이분 잡아드려요!”
의사와 성연은 내빈을 붙들고, 간호사가 그에게 약과 물을 먹인다. 성연은 내빈을 내려다보며 울상을 짓는다.
“하⋯씨발⋯좆같네, 진짜.”
우진은 잠수함 내 침상에 앉은 채, 머리를 숙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대체 왜⋯없었을까?
이윽고 노크 후, 미래가 들어온다.
“왜 그래?”
미래다. 우진은 몸을 일으켜 얼굴을 들고 경례하며 “소위, 박우진!”이라고 말한다.
“됐어.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데?”
“생존자를 발견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뭐랄까,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없어진 것 같습니다⋯”
우진의 목소리가 흐려진다.
“우진아, 일단 앉아보고 두 손 다 줘볼래?”
우진은 앉아서 두 손을 내밀며 “네!”라고 말한다. 미래는 몸을 숙이고 두 손을 꼭 잡으며 우진을 쳐다본다.
“있지, 앞으로는 현재 남아있는 것에 신경 쓰자. 알았지?”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날이 얼마 안 남았잖아. 그동안에 절망하거나 난동 부리기보다는, 남 피해 주지 말고 보람 있게 보내자는 거야. 알았지?”
잠시 침묵. 우진은 생각한다. 남은 것이라면⋯강릉 시민들, 함장님, 정 중위님, 그리고 성연님⋯.
“네, 알겠습니다.”
미래는 일어난다. “그래. 그럼 잘 지내고, 앞으로 뭐할지 고민도 해보면서 지내. 난 간다.”
우진도 일어난다. “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미래가 나가며 문이 닫힌다. 우진은 아래를 보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뜬다.
오늘의 방사능 수치는 49mSv이다.
“우리 해군 장병들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며, 건배!”
함장이다. 술집에는 함장과 성연, 승조원들, 강릉 시민들이 있다. 다들 웃으며 술을 마신다. 성연은 안쪽으로 들어가서 신해진을 본다.
“어? 교수님 여기서 뭐 하세요?”
“어, 그냥 한잔하는 중이야.”
“그렇군요.”그녀는 해진을 훑어본다. “어디 불편하신 건 아니시죠?”
“실은 불편한 곳이 있기는 해.”
“어디가요?”
“너희들한테 많이 미안해서. 못 막았잖아.”
“어떤⋯거요?”
“핵전쟁.”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짓다가 다시 웃는다.
“아하⋯근데 교수님 잘못은 아니신 것 같아요. 일부 극소수 정치인들 잘못이죠.”
“그래도, 이렇게 된 게 내 책임인 것 같고, 슬프고, 그래. 늘 미안하다.”
“괜찮아요, 교수님.”
잠시 침묵. 우진이 해진과 성연의 사이로 서서히 걸어온다.
“무슨 일이에요?”
우진이다.
“아 그냥⋯그런 일이에요.”
성연이다.
“제가 여러분들께 많이 죄송해서 그래요. 기성세대로서⋯”
해진이다.
한편 술집 구석에서 깡패가 성연을 노려본다. 그의 주머니 속에 권총 손잡이가 있다.
술집 바깥에서 사람들이 헤어진다. 사람들 가장자리에 성연, 우진이 서 있다.
“사실 전 무서워요.”
성연이다.
“뭐가요?”
우진이다.
“저희가 곧 있으면 죽는다는 거요. 죽기 싫어요.”
“저도 그래요. 하지만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그냥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전 모르겠어요.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그녀는 우진에게 등을 돌린다. “전 이만 가볼게요.”
그녀가 길을 가는데, 깡패가 성연에게 다가온다. 성연은 그를 쳐다보며 멈춘다.
“누구세요?”
성연이다.
“저기 죄송하지만, 저 좀 따라와 주시겠어요?”
깡패다.
“누구신데요?” 그녀는 뒷걸음친다. 깡패는 그녀의 팔을 확 잡는다. “아, 거 말 존나 안 듣네.” 그는 권총을 꺼내, 하늘로 쏜다. “야이 새끼들아, 잘 봐라!”
다들 깡패를 쳐다본다. 깡패는 성연에게 총을 겨누며 주위를 둘러보고, 미래와 우진도 권총을 꺼내 깡패에게 겨눈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성연이다.
“순순히 따라오라고. 거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고 지랄이야.”
우진이 인상을 쓴다. “그 손 놔!”
“시발 좆같은 군바리 새끼. 어차피 뒤질 건데, 화끈하게 놀아야지, 안 그래?”
“당신만 그래? 우리 다 힘들어!”
“그러니까 시발 여자랑도 화끈하게 해야 할 거 아냐!”
미래는 우진 옆에 와서 조용히 말한다. “내가 해볼게.” 미래가 깡패에게 조금 다가간다.
“니는 억울하지도 않냐?”
미래다.
“그래, 이렇게 아무 것도 못하고 뒤지는 게 억울하지, 안 그러냐?”
“그래,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봐봐. 어차피 우리 다 뒤질 건데, 이렇게 남 피해 주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
잠시 침묵.
“뭔 개소리야?”
깡패다.
“여기서 남 피해 주는 행동하고 뒤지면, 나 같으면 억울해 뒤질 것 같은데? 우리가 일으킨 전쟁도 아닌데, 꼭 이렇게까지 서로에게 피해 주면서 죽어야겠냐?”
우진은 잠시 미래를 쳐다본다.
“있지, 솔직히 말해서 여기서도 1명 이상은 너처럼 행동하고 싶을 거야. 하지만 그것은, 딴 사람들을 피해 주는 걸 떠나서, 자신을 망치고 더럽게 만드는 거거든. 그렇게 죽고 싶어?”
깡패는 고개를 치켜든다. “그럼 난 어쩌란 거야?”
“그냥 남 피해 주지 말고, 조용히 사라져서 원하는 거 해. 성연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아, 네네. 남 피해 안 주고 총만 압수하면 문제없어요. 어차피 감옥 갈 수도 없으니까⋯.”
잠시 침묵한 후, 깡패는 그녀의 팔을 놓아준다.
“중위님, 제가 총 받겠습니다.”
우진이다.
“그래. 조심해서 해.”
깡패는 총구를 아래로 돌리고, 손잡이는 우진 쪽으로 맞춘다.
“그래그래. 좋아. 이리 줘.”
그는 총을 받는다. 깡패는 고개를 숙인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들 시끄러웠죠? 죄송합니다.” 그는 뒷걸음질하다가 도망친다.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서 있다. 잠시 후 성연은 우진과 미래를 바라본다.
“저기, 저를 구해줘서 감사해요.”
“아, 뭐 이런 걸 가지고⋯군인의 의무니까요.”
우진이다.
“너무 걱정 마. 총은 압수했으니까.”
미래다.
오늘의 방사능 수치는 55mSv이다.
성연과 우진은 대도호부관아에서 뽑기 행사에 참여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행사 현수막 아래에는 상품들이 보인다.
“자, 과연? 당첨되실 수 있으실지? 두구, 두구, 두구, 두구⋯.”
해설자다. 성연이 종이를 뽑았는데 1등 당첨이다.
“자, 조성연님 1등 당첨입니다!”
해설자다. 그는 금팔찌 한 쌍을 성연에게 준다. 다들 박수를 치고, 우진이 그녀에게 간다.
“다들 즐거운 듯하네요.”
우진이다.
“그러게요.”
성연이다.
우진은 웃는다. “늘 오늘만 같아라!”라고 말한 뒤 기지개를 편다. 성연은 그의 시선을 피한다.
“아⋯예. 그래야죠.”
오늘의 방사능 수치는 78mSv까지 도달해 있다.
금팔찌를 서로 낀 우진과 성연은 허난설헌 기념관에 앉아서 안내 책자를 본다.
“허난설헌은, 정말 아까운 인물이야.”
성연이다.
“그러게. 시대를 잘못 태어났어.”
“우리도 평화로울 때 태어났다면 좋았을 텐데⋯.”
그녀는 기침하고, 휴지를 바라보며 울상을 짓는다.
“왜 그래?”
휴지에 피가 묻어 있다. 우진은 놀라고, 그녀는 운다.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나 너무 무서워.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죽어야 해?”
“죽는 거? 나도 억울하지⋯하지만 현재에 충실하며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왜냐하면⋯”
“솔직히 지겨워. 피곤하고⋯다 귀찮아.”
“하지만 성연아, 아직은 시간이⋯”
“언제까지 그런 말만 할 거야? 맨날 그래!”
“나도 알아, 그렇지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면⋯”
“나도 지겹게 들었어! 하지만 억울하잖아! 너는 안 억울해?”
그는 바닥을 보며 침묵한다.
“됐어. 나 이제 그냥 갈 거야. 안녕.”
그녀다. 그녀는 금팔찌를 우진의 손에 쥐게 하고 간다.
성연은 떠나고, 우진은 그녀를 보며 서 있다. 그가 선 하늘 위에서 헬기가 날고 있다.
헬기 안에는 미래와 함장이 앉아 있다. 미래는 조종하고 있다.
“히~하! 베트남에 온 기분입니다!”
“그래, 멋있네.”
함장이 웃는다.
“전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함장님께서는 어떻습니까?”
“글쎄. 난 아직 죽을 준비가 안 됐어.”
“그럼 언제 가실 겁니까?”
함장은 눈을 굴리다가 감는다. 잠시 침묵 후, 눈을 뜬다.
“며칠 뒤에!”
함장은 저 멀리 바다를 가리킨다.
“승조원들과 함께 바닷속으로 돌아간다!”
“역시 이래야 제 함장님답습니다!”
미래와 함장은 웃는다. 헬기는 저 멀리 사라진다.
며칠 뒤, 안락사용 알약이 배포된다. 사람들은 알약을 먹으며, 조용히 잠든다. 반려동물이나 너무 어린 아기들에게는 주사기로 맞히며 눈을 감게 한다.
그래서 강릉 거리는 조용하다. 사람들은 소중한 이들과 최후를 맞이하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이미 보낸 뒤였다.
한편 깡패는 자동차 안에서 알약통의 설명서를 바라보다가, 그것을 바깥으로 내던진다.
“인생, 그래도 화끈하게 살아야지!”
그는 시동을 켜고, 빈 도로를 빠르게 운전한다. 속도가 높아진다. 40km, 50km, 60km⋯.
“이 맛에 살았다!”
속도는 80km이다. 저 멀리 차 앞에 벽이 보인다.
“간다!”
핸들을 놓았을 때의 속도는 100km이다.
차는 벽과 충돌해 폭발한다.
아무도 없는 관동대 사무실에서 해진은 납으로 만들어진 상자들을 옮긴다. 그것들에는 ‘유언,’ ‘자서전,’ ‘핵전쟁사,’ ‘우리 대학교’ 등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이 상자들에는 신문이나 프린트한 종이들이 가득하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해.”
의자에 앉는다.
“이 정도면, 후대인들도 같은 실수 안 하겠지.”
그는 물과 알약을 삼킨다.
저 멀리 전광판조차도 꺼져 있다.
“오늘은⋯”
함장이다. 잠수함 안에서 승조원들은 거의 다 모였다.
“우리가 바닷속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다들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다.
“해군의 본문에 맞게, 죽는 거다.”
우진은 이곳저곳을 훑어보며, 한 손으로 엄지손톱을 깨문다. 다른 손으로는 금팔찌를 쳐다본다. 성연은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 많이 외로울 텐데⋯.
“빠질 인원은 없나? 있으면 지금 얘기해.”
우진은 고개를 들며 천천히 손을 든다.
성연은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타며, 빠르게 빈 도로를 달린다.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고 있다.
“제발⋯제발⋯!”
잠시 후 안목해변에 도착한다. 자전거에서 내려서, 헬멧을 내던지고 그곳 주위를 둘러본다.
그녀는 손을 입에 모은다.
“누구 없어요? 있으면 제발 나와 주세요!”
하늘 위에서는 헬기가 검은 연기를 내며 추락하고 있다. 그 안에는 미래가 있다.
“히-하!”
헬기가 저 멀리 추락하여 폭발한다. 그것을 본 성연은 쭈그리고 앉아서 운다.
“혼자 죽기 싫어⋯.”바다를 바라보며 말한다. “우진아! 미래 선배! 함장님!”
그녀는 계속 운다.
한참을 울다가, 저 멀리서 누군가 고무보트 앞에서 팔을 흔들며 뛰어온다. 성연은 잠시 바라본다.
“성연아!”
우진이다!
“우진아!”
그녀도 뛰어간다. “우진아!”
두 사람이 만나, 서로 부둥켜안아 운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어!”
성연이다.
“나도, 나도!”
“전에 너한테 안 좋게 굴어서 미안해.”
“괜찮아, 괜찮아!”
“이제, 함께하자.”
그는 금팔찌를 매고, 남는 하나를 준다.
그녀도 팔찌를 맨다.
해변에서 돗자리를 펴고 두 남녀가 앉아 있다. 잔잔한 음악이 나오며, 그들은 술잔을 부딪치고 알약과 함께 삼킨다.
“다음 생애에서도, 다시 만나자.”
우진이다.
“그래. 꼭 만나자.”
바다 깊은 곳에서 잠수함 내부에 물이 샌다. 거기엔 함장과 승조원 하나가 있다.
“발사해.”
“네!”
승조원이 버튼을 누르자, 잠수함에서 흰 물살들이 위로 솟는다.
저 멀리 바다에서 미사일이 올라가, 불꽃놀이처럼 터진다. 두 남녀가 유일한 관객이다.
“멋있다! 오길 잘했네.”
“그러게. 직접 부탁드린 거야?”
“응, 가능하실 때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어.”
“그렇구나. 하긴 이제 쓸 곳도 없으니까⋯.”
두 남녀가 서로 팔찌를 찬 손을 잡는다. 불꽃과 바다가 보이는 해변에서, 두 남녀는 자전거 옆에 누워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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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문학 공모전에 냈음.
원래 단편영화로 만들려고 했던 걸 조금 변형했음.
색다른 감성이네
ㄱㅅㄱㅅ 원작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자 노력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