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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지구상에서 모든 인간이 단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문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도시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간이 사라진 직후, 자연은 도시의 연약한 하복부 부터 차례로 공략해 나갈 것이다.


인간 실종 1일 후.



덩치가 좀 있는 도시들은 밝은 지상뿐만 아니라 지하에도 인프라를 구축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은, 지하를 개척한다는 것은 그냥 땅만 판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왠만큼 고지대가 아니라면, 땅을 파면 지하수가 나온다.


우리나라 서울의 경우 수십 개의 배수관들이 분당 5.5t의 물을 퍼내고,


아예 습지 위에 지어진 도시인 맨해튼의 경우에는 하루에 5000만 리터씩 퍼낸다고 한다.


만약 인간이 사라져 이런 식으로 지하수를 퍼내는 배수관이 관리되지 않는다면, 도시의 지하 인프라는 며칠 내에 물에 잠길 것이다.


이 재앙은 지하에서 끝나지 않는다.


지하에 물이 가득 차면, 이제 물은 땅 위로 올라오게 된다.


포장도로 아래에 갇혀있던 흙이 씻겨나가게 되고, 머지않아 도로가 갈라지고 터져나가게 된다.


지상에 있던 쓰레기들이 하수구로 흘러들어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온갖 비닐봉지들과 떡이 된 신문지가 하수관을 막아버릴테고, 그렇게 되면 물이 넘쳐흘러 지상에 새로운 물길들이 생길 것이다.


건물과 도로를 받치고있던 쇠기둥들도 물에 잠겨 부식되고, 하복부가 부실해진 도시는 이제 자연의 복수에 취약해져가기 시작한다.



인간 실종 1년 후.



인간이 사라지고 첫 3월이 되면, 기온이 0도 안팎으로 요동치게 된다.


물이 얼면 부피가 팽창하기 때문에,


도로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갈라지고 균열이 생긴다.


눈이 녹으면서 이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고, 수축 - 팽창을 반복하며 틈이 더욱 벌어진다.


이 틈을 메워줄 사람이 없으니, 이 틈 사이로 잡초들이 찾아온다.


온갖 종류의 풀과 나무 씨앗들이 따뜻한 봄의 온도 속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고, 이런 뿌리는 안 그래도 개판이 된 도로와 인도를 밀어올릴 것이다.


자연은 이제 땅 뿐만 아니라 건물들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인공 난방이 사라지며 건물 사이사이의 배관들이 터져나가게 되고, 건물 내벽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건물이 신음하기 시작한다.


벽과 지붕선 사이의 연결부가 떨어져나가게 되고, 그런 곳 마다 볼트가 녹슬고, 외장이 일어나며 단열재가 노출된다.


이때, 따뜻했던 집 구석구석에 숨어있던 바퀴벌레들도, 겨울 한두번 거치는 동안 멸종한다.



인간 실종 10년 후.



이제부터 자연은 도시와의 전면전을 개시한다.


도시 환경미화원이 없다보니 땅바닥에는 낙엽들이 쌓여가게 되는데,


이미 피뢰침은 삭아 꺾여버렸기 때문에, 도시는 번개에 취약해진다.


이런 낙엽 뭉치에 벼락이라도 한 번 내리치면, 대재앙이 시작된다.


불길은 길거리를 활보하며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되고, 불길은 건물을 덮치며 창문을 깨트린다.


불길이 사그라들고 나면 비와 눈이 건물 바닥에 쌓이게 되고, 온도 변화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건물 자체가 휘기 시작한다.


공기오염이 줄어들게 되자 건물 외벽에는 이끼가 달라붙게 되고, 이런 벽을 담쟁이덩굴이 타고오르기 시작한다.


무성한 덩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건물의 콘크리트벽은 떨어져나가게 되고, 건물의 무게중심이 불안정해져간다.

그 떨어져 나간 벽 사이로는 송골매들이 들어와 둥지를 틀게 된다.



인간 실종 20년 후.



오랜 세월 자연의 협동공격을 연속으로 맞은 건물들은, 이제 차례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건물 하나가 쓰러지면 옆에 나란히 서있던 건물들도 도미노처럼 함께 쓰러지게 되고, 도시는 말 그대로 폐허가 되어간다.


무너진 콘크리트는 점차 분해되고, 도시의 흔적은 나무와 풀에 덮여 사라질 것이다.


콘크리트 정글은 점차 진짜 정글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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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없는 세상> 이라는 책의 내용을 참고하여 글을 써봤습니다.

얼마전 메트로 2033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하여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예전에 읽었던 이 책이 떠올라서 글을 정리해서 써봤습니다.


이 책은 교양과학서적으로,

"만약 단 한순간에 모든 인간이 사라진다면?" 이라는 질문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각 주제별로 인간 이전의 세계, 인간으로 변화된 세계, 그리고 인간이 사라진 세계를 균형있게 서술해나가는 방식이죠.

책의 챕터1은 도시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맨해튼의 붕괴 과정을 아주 과학적이고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저 또한 이 부분을 참고하여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농촌, 숲, 대규모 산업지대, 원자력 발전소, 바다, 파나마 운하, 세계 불가사의, 지하도시 등등 다양한 지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챕터3에서는 한국 비무장지대도 다룹니다.


다만 이런 포스트 아포칼립스 분위기만을 기대하고 책을 읽게되면 다소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책의 2/3 정도는 인간 등장 이전과 인간으로 변화된 세계를 서술하는데에 할애하고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저자의 필체가 서정적이고 잔잔한 면이 있기 때문에, 읽다가 꽤 졸리실 수 있습니다.

저 또한 많이 졸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교양과학서적으로서의 가치는 정말 높고,

내용의 정교함과 깊이 또한 뛰어나며,

다루는 분야 또한 정말 풍부합니다.

(생태학, 지질학, 대기학, 해양생물학, 동물학, 임학, 식물학, 고고학, 고생물학, 고인류학, 조류학, 천문학, 심지어 세계사 관련 내용까지...)


포스트 아포칼립스 분위기만 즐기고 싶으시다면,
도시 붕괴 과정을 서술하는 챕터 1-1 ~ 1-3과,

실제 키프로스섬의 유령도시 거리 풍경을 묘사하는 챕터 2-1만 읽어도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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