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역과 명동성당 그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으로, 대전쟁 당시 명동역으로 피신한 천주교 사제들과 신도들이 구성한 세력.

지도자는 서울대교구장이란 직함을 사용하지만, 현재는 공석으로 실질적인 지도자는 대전쟁당시 살아남은 7명의 신부들로 이루어진 사제단이며,

공식적으로 알려진 교인의 수는 대략 4000~5000명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대전쟁 직후에는 다른 세력들에 비해 비교적 인원이 적었으나,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천주교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 세력을 점차 키워나갈수 있었습니다.

또한 암울한 메트로 내에서 의지할곳이 없던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과 체계적인 교리가 구비된 종교는 매력적이기에, 세례를 받는 사람들 또한 늘게되었습니다.


이들은 특이하게도 명동역에서부터 명동성당 지하부분까지 땅굴을 파냈습니다. 그들은 방사능이 어느정도 걷히고 난뒤 탐굴자들에게 의뢰하여 

명동성당의 근황을 조사하였고, 겉보기에는 멀쩡하다는 사실을 전해듣고나서 그들은 성전을 되찾는다는 명목하에 자발적으로 지원한 교인들을 통해 

명동성당 지하와 명동역 사이의 지하연결 통로를 만들었습니다. 지하연결 통로를 만든 그들은 뒤이어 명동 일대에 널려진 폐기물들과 고철들을 이용해 

명동성당 주변에 벽을 쌓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명동성당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시설들에도 벽을 확장하는등 지속해서 "성지"를 확보하려 노력하고있습니다.


현재까지는 메트로내에서 자선활동이나 구호활동들을 벌이고 있으며, 성지를 확보하는것 이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을 대외적으로 보이고있지 않지만, 

이들 내부의 상황은 그리 밝지 못합니다. 일례로 이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공식적으로 서울대교구장이라고 지칭하고 있지만,

대전쟁 직후 몇년 지나지 않아 대교주장이 사망함에 따라 공석인 상태입니다. 그러나 대교구장은 교황이 최종적으로 인가해야 하는 만큼, 

교회법에 따라 공석으로 두고 차후 교황청과의 연락이 성사된후 대교구장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과, 

교황이 있는지, 죽었는지, 혹은 교황청이란 집단 자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임시로라도 선출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으며, 

천주교 본래의 취지에 맞게 나눔과 배려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과 메트로 내에서 같은 교우들과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제는 무력을 내세워야 할 시기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있는등 세력내에서는 현실주의적 세력과 전통주의적 세력이 대립하고 있어 향후의 행보가 가늠이 되지 않는 세력입니다.






이정도면 캐넌에 반영될수 있으려나? 일단은 선역이지만 흑화할 여지가 있는 세력으로 써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