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그 한마디를 들으면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는가.

살아 움직이는 시체가 도시를 가득 매운 이야기? 아님, 모종의 분쟁으로 핵이 하늘을 가득 매울 정도로 쏘아져 지하에 박혀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이다. 가장 조용하고 쓸쓸하게 망해간 세계의 이야기...

이야기가 시작 되기 전의 세계는 유래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으며 문명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세상 어느 곳에선 늘 그렇듯 분쟁이 나고 있었지만, 결국 그것은 평화를 살고 있는 이들에겐 아주 먼 세상의 이야기 였으니, 가진 자들의 유래없는 호황이라 해도 좋을 것이였다.

다음 해로 넘어가는 해가 뜨던 연말에 전파를 타고 울려퍼진 한자락의 뉴스가 자라나는 문명의 성장판을 닫고 면역체계와 세포 하나하나를 말려죽이리라 누가 알았을까.

반쯤 부서져가는 라디오에선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과거의 방송을 녹음한 듯 지지직 거리는 잡음이 가득한 뉴스가 흘러 나왔다.

—속보입니다, 모스크바 빈민가에서 신종 바이러스, Past - 27 에 의해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소식은 금방 인터넷과 전파로 퍼져나가며 사람들에게 불안을 심었고, 때론 왜곡되고, 변질되며 잘못된 정보를 흩뿌렸었다..

이번엔 TV, 화질이 나쁜 박스 TV에서는 불타는 크렘린 궁과 BMP 장갑에 앉아 AK74를 들고 거수자를 살피는 러시아군이 클로징 되다 곧 뉴스 진행자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속보입니다, 현재 러시아가 모스크바에 대대적인 대봉쇄를 실시했...

서울 성모 병원 응급실 앞 주차장에 구급차가 멈춰서고 감염자를 비닐 원통 같은 것 안에 넣고 이송하는 장면이 보인다, 환자는 흑사병에 걸린 사람처럼 꺼먼 반점이 잔뜩 나있다. 그 모습에서 기자의 얼굴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서울에서도 첫번째 감염자가...

붐비는 병원 대기실과 마스크가 매진됬다는 안내문에 발을 돌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TV에 나온다.

—병원에는 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약국에는 마스크를 사재기 하는 사람들이...

이젠 기자조차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마스크를 쓰고 서울 성모병원 앞에서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의 감염자가 천명을 돌파했..

눈이 소복하게 쌓인 센트럴 파크 한 가운데에 바디백이 커다란 회색빛 사각형을 이룬 모습이 공중 촬영으로 잡힌다. BBC에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 대규모 매장지가..

간호사가 한숨과 함께 링거를 조절하는 모습이 TV에 나온다.

—현재 대부분의 병원들이 보유한 약품의 수량들이 떨어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고리 1호기의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멈춘다. 서울 시내의 일부 구와 동들이 저녁에도 빛나지 않는 모습이 방송으로 송출된다.

— 대부분의 발전소가 가동을 중지했고 그로 인해 순차적인 정전이 발생할 예정입니다. 전기 배급 우선 순위는 병원, 군부대 등 공공 시설이 1순위 이며..

눈물이 눈가에 잔뜩 매달려 있고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청년이 쌍욕과 함께 카메라에 인터뷰를 한다.

—"씨발! 어머니가 패스트 27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근데 이 빌어먹을 나라는 어머니가 병원 한번 가는 것도 못하게 했어요! 대체 나라는 뭘 하고 있는 겁니까?"

광화문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대의 모습이 보인다.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

광화문 대로 한 가운데에서 불타는 적십자 트럭과 널브러진 마스크, 의약품 등의 박스가 불타고 있다. 내용물은 비어있다.

—의약품을 이송 중이던 차량 일부가 시위대의 화염병에 약탈 되는 사건이...

—당신의 건강을 책임집니다. 뉴 프리미엄!

변조된 시민의 겁에 질린 통화기록 하나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시위대의 약탈 신고가 20건이 넘어가는 가운데..

화질이 480P 정도쯔음 되는 듯한 CCTV로 찍힌 영상이 틀어져 나온다. 하늘색 완장을 찬 이가 엽총으로 순찰을 돌고 있는 경찰차에 기습적으로 총격을 가한 것이다.

—(총성!) "김순경! 시발, 저런 새끼들이 대체 어떻게 엽총을.."

뻘건 피가 차창에 튀어있고, 곧 한명분의 피가 묻어있던 것은 두명 분의 피로 늘어난다.

—(총성!) "끄아아악!!!" (영상 끊김)

분노에 겨운 한 50대 중년 남성이 울분을 토한다.

—"우리 가족이 죽고, 가게는 털리고 있습니다. 대체 정부는 뭘 하고 있는 겁니까?"

경찰총장은 당황한 듯 땀을 뻘뻘 흘리며 기자 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저희 경찰 당국은 이런 상황에 대한 그 어떤 메뉴얼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건..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란 말입니다!"

—일선의 경찰 사망자가 20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입니다, 이에 경찰 당국은 약탈 범죄를 상대로 화기의 사용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사실을 이번 기자 회견을 통해 알렸습니다. 앞으로 한국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방독면을 뒤집어쓴 한국군의 모습이 보인다.

—계엄령이 선포됬습니다. 통금 이후 이동하는 이는 거동 수상자로 분류되어 체포 당할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아직 건재합니다. 지시를 따라주십시오.

북한의 위성사진, 탱크 여러대가 평양으로 진격하는 모습이다.

—북한의 수령 김정은이 패스트 27에 사망, 쿠데타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시위대의 모습이다.

—"우리에게 자유를! 약을 달라!!"

계엄군 총 사령관이 확성기로

—"발포 개시!"

명령을 내리자, 총격이 시작된다.

—계엄군이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현재, 서울 각지에서 연합된 조직 세력인 '푸른 하늘' 이 경찰 병력과 계엄군 등을 급습해 무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은 집안에서 가구 등으로 입구를 봉쇄 하고 정부의 승리를 기다려...

삐—

—"서울 시민 여러분, 정부는 서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폭도들의 불법적 점거로 인해 서울은 봉쇄 되었습니다. 서울 시민은 서울 밖으로 이동이 불가하며, 해당 지시를 따르지 않을 시 계엄군의 진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집 안에서 계엄군의 승리를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본 방송은 반복되는 방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