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하면서 하루에 한시간씩 쓰다 보니 생각보다 많이 느리네요... 느려도 꾸준히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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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세상 함께 만들어요 해피 메트로
희망의 길 힘차게 달려요 해피 메트로
땅땅 울리는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종착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열차 안에 울려 퍼진다. 3일 내내 야근이라도 했는지 의자에 파묻혀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자던 샐러리맨이 깜짝 놀라 깨어나며 짐을 주섬주섬 챙긴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영어 단어장만 바라보던 고등학생도 고개를 들어 차창 밖을 내다본다. 한 살배기 아이를 등에 업은 애 엄마는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강철 차륜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레일과 마찰한다. 열차가 서서히 감속하며 수백 톤의 육중한 몸을 이끌고 플랫폼에 들어온다. 열차가 완전히 멈춰 서고 자동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요란한 트로트가 흘러나오는 라디오 가방을 허리에 두른 등산복 차림의 중년 남성을 필두로, 샐러리맨, 고등학생, 애 엄마가 차례로 승강장에 발을 딛는다.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 대합실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분주히 몸을 싣는다. 샐러리맨은 역 명판을 보더니 엉뚱한 역에 내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얼굴을 찌푸린다.
갑자기 고막을 찢는 듯한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역 안을 가득 메운다.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열차 운행이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라는 문구가 나오던 스크린에서는 “우리나라 전역에 공습경보 발령”이라는 헤드라인의 뉴스 속보가 나오기 시작한다. 메트로의 로고송, 사이렌 소리, 그리고 중년 남성의 트로트 선율이 모두 섞여 기분 나쁜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엄마 등에 업혀 곤히 자던 아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일순간 역 안의 모든 전등이 꺼졌다 켜지더니, 종전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두꺼운 얼룩무늬 군복 위에 어깨와 가슴까지 덮는 방독면을 뒤집어 쓴 군인들이 대합실을 분주히 뛰어다닌다. 메트로의 직원 재킷을 입은 사람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하사 계급장을 달고 있는 군인에게 무언가 항의한다. 그 젊은 부사관은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꾹 닫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옆에서는 병사 한 명이 무전기에 대고 열심히 입을 달싹인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어떤 목소리라도 수신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무전기에서는 악마의 낄낄대는 비웃음처럼 소름 끼치는 노이즈만 흘러나온다.
군인들의 뒤로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차가운 대합실 바닥에 빽빽하게 앉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췌한 표정으로 무력하게 허공을 응시하고 있지만, 몇몇은 눈물을 흘리거나 실성한 듯이 웃는다. 애 엄마는 대합실이 떠나갈세라 큰 소리로 울어대는 아이를 달랜다. 샐러리맨은 식은땀을 흘리며 휴대전화의 버튼을 버튼을 꾹꾹 눌러보지만 휴대전화에서 불꽃이 튀자 화들짝 놀라며 나자빠진다.
바닥에는 “미 7함대 한반도 전개에 러 ‘맞불작전’, 극동함대 전진배치”, “북 조선중앙 TV, 한미 군사행동 좌시하지 않을 것…”, “청와대 국가총동원령 승인… 예비군, 민방위 소집”, “백악관 대변인 최후통첩, 공산 진영은 후회할 것”, “모스크바에 최대규모 공습… 사상자 집계 불가”, “서울 불바다” 등의 흉측한 문구로 점철된 신문지 조각들이 굴러다닌다.
대합실 아래의 승강장에는 얼굴빛이 노란 사람들이 무력하게 누워있다. 젊은 남자가 벽에 기대 앉아 비닐 봉지를 입에 대고 토사물을 쏟아낸다. 토사물에 살점과 핏기가 섞여 나온 것을 본 그는 비명을 지른다. 적십자가 그려진 흰색 완장을 찬 군인이 황급히 달려와 그의 팔에 주사를 놓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로브를 차려입은 여자가 그의 옆에서 무릎을 꿇은 채 양손을 모으고 무언가를 열심히 외고 있지만, 남자의 동공에서는 희망이 빛이 서서히 꺼져 간다.
반대편 승강장에는 사람 크기의 검은색 포대기 수십 개가 줄지어 놓여 있다. 이마에 주름살이 많은 백발의 노파가 포대기 하나를 끌어안고 울부짖는다. 군인들이 노파를 떼어놓으려 하지만 그녀의 거센 저항에 모두 나가떨어진다. 앳된 얼굴의 이등병은 노파의 절규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방독면마저 벗어 던진 채 양손으로 귀를 막고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든다.
아까부터 들려오던 메트로의 로고송이 드디어 절정에 이른다.
다정한 이웃처럼 변함없는 친구처럼
우리 곁에 웃음 가득한 대구도시철도!
로고송의 마지막 음절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성준은 눈을 번뜩 떴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마 터널이 무너지면서 잔해에 머리를 맞아 기절한 것 같았다. 땅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숨을 깊게 들이쉬자 곰팡이 냄새 나는 퀴퀴한 공기가 비어있던 폐 구석구석을 채워 나갔다. 어쩐지 입 주변이 허전했다. 방독 마스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손을 대자 자신의 코와 입술이 만져졌다. 넘어질 때 마스크의 끈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분명히 눈을 뜨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마를 더듬자 망가진 헤드 랜턴의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장갑 끝에 스쳤다.
얼마나 오래 기절해있던 걸까? 다른 대원들은 모두 무사할까? 몇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당장 일어나야 했지만 몸이 너무 무거웠다. 모든 것이 귀찮게 느껴졌다. 이대로 한 숨 늘어지게 자고 싶어졌다.
다시 눈을 감자 의식 너머로 사라져 가던 영상이 다시 선명하게 재생되었다. 기절해있는 동안 어떤 꿈을 꾸었다. 분명히 대재앙이 닥치던 그 날의 모습이었다. 깔끔한 옷차림에 귀티가 흐르는 사람들, 잘 관리되어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승강장, 괴물 같이 포효하며 달리는 열차. 모든 것을 끝내버린 마지막 전쟁, 지하철역으로 대피한 생존자들, 비참한 죽음을 기다리는 피폭자들. 이것은 모두 자신의 상상일 뿐일까? 아니면 잠재 의식 깊은 곳에 숨어있던 어떤 기억의 편린일까?
아니 기억일 리는 없어, 라고 성준은 생각했다. 모든 것이 끝나던 그 날, 성준은 고작 한 살 짜리 아기였다. 기억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사람도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이가 들수록 오래된 기억은 퇴색되어 가고 결국 새 기억에게 그 자리를 내어 준다. 머무를 곳을 잃은 오래된 기억은 잘게 조각나 결국에는 광활한 무의식의 우주에 흩뿌려진다. 그러한 불연속성과 비영속성이 기억의 본질이었다.
성준은 유년기를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슬프고 무서운 것이었다.
그 기억 속에서 어린 성준은 사물함 안에 숨어 있었다. 작은 손으로 엄마가 준 팔찌를 꽉 움켜쥔 채 눈물을 흘리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밖에서는 사람들의 고함 소리와 비명 소리, 기관총이 발사되는 소리와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밖을 내다보고 싶었지만 무서운 표정으로 절대 사물함 문을 열지 말라며 재차 강조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발 우리 말고 다른 생존자들을 찾아서 나와 가족들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안전한 땅을 찾아주세요. 이곳은 이미 너무 늦었으니...’
성준은 엄마의 마지막 말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그 사무칠 정도로 그리운 목소리는 굳게 닫힌 사물함 문 너머로 들려온 것이었다. 엄마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흐느끼며 애원하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 날 엄마는 도대체 누구에게 그토록 처절하게 호소하고 있었던 걸까? 그 날 그곳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연이어 들려온 폭발음과 단말마의 비명 소리를 끝으로 기억은 완전히 끊어졌다. 그 날의 모습을 더 들여다 보려고 애써도, 기억의 화상은 물에 젖어 번져버린 사진처럼 일그러지고 조각나 있었다.
“성준아! 괜찮냐?”
옆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억의 늪에서 빠져 나와 다시 눈을 뜨자 갑작스러운 빛이 눈 앞에 한가득 들어왔다. 성준은 눈을 찌푸리며 왼손을 들어 빛을 가렸다.
“다친 곳은 없니?”
엄지와 검지 너머로 대장의 먼지투성이 얼굴이 보였다. 대장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답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과 목 안에 가득 쌓인 흙먼지 때문에 연신 기침이 나왔다.
대장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수통을 건내자 성준은 그것을 받아 입에 가져다 댔다. 쇠 맛이 나는 미지근한 물 한 모금이 입 안으로 들어와 바싹 마른 혓바닥과 목구멍을 촉촉하게 적셨다. 미지근한 물은 너무나 달콤했다. 성준은 물을 한 모금 더 마신 뒤 수통을 대장에게 돌려주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들은요?”
성준이 대답하자 대장이 안도하는 듯 한숨을 쉬었다.
“대원들은 모두 괜찮아. 너는 움직일 수 있겠니?”
성준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마비되어 있던 신경에 다시 전기가 통하면서 허리와 다리가 욱신거렸다. 경직되어 있던 관절들이 아프다며 아우성이었다. 삐걱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킨 다음, 온 몸을 덮고 있던 먼지를 양손으로 열심히 털어냈다.
그는 망가진 헤드 랜턴을 벗어서 슬링백에 대충 쑤셔 넣고는 손전등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도 손전등은 잘 작동했다. 먼지 때문에 하얗게 변한 대장의 눈썹이 가장 먼저 보였다. 대장의 뒤에서는 박 상병과 민재가 소총을 들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대원들은 모두 흰 먼지를 한껏 뒤집어써 북극곰과 같은 꼴이었다. (물론 성준은 북극곰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몰랐다.) 성준은 웃음을 참으며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주변은 엉망진창이었다. 터널이 무너지면서 흙과 콘크리트 더미가 쏟아져 나와 있었다. 잔해 더미는 진천역으로 들어가는 길을 빈틈 없이 메우고 있었다. 한 발이라도 늦었으면 흙더미에 깔리거나, 저 무인역에 갇힐 뻔 했다고 생각하니 성준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제 저 역에는 아무도 못 들어가겠네요.”
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무너진 터널을 한참 동안 응시하더니 짧게 말했다.
“빨리 이동하자.”
대장이 걷기 시작하자 대원들은 서둘러 대장의 뒤를 따랐다.
약 10분간의 행군 끝에 월배역 승강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월배역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진천역의 불길한 소문 탓도 있었지만, 이 역은 1호선 역들 중 가장 얕은 지하에 있어 오염과 자연 재해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한때 월배역으로 피신했던 생존자들은 머지않아 상인역과 송현역으로 이동했다. 결국 이 역은 주인 없는 역이 되었다. 상인역에서는 이곳에 정기적으로 순찰대를 보냈다. 비록 사람은 살지 않았지만, 혹시 있을지 모르는 잠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월배역 터널 입구에 상인역 순찰대가 세워둔 푯말이 보이자 성준은 벌써 마음이 편안해졌다. 벌써 집에 다 온 것 같았다.
월배역 승강장은 아주 깨끗했다. 오랜 세월의 흐름을 방증하는 먼지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진천역 승강장에 있던 이상한 덩굴 식물이나 전투의 흔적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사는 역이면 반드시 있을 법한 참호나 천막, 쓰레기 더미 따위도 없었다.
이 역은 20년 전, 대구 지하철의 모든 열차가 운행을 멈추던 그 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당장이라도 모든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고 열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승강장에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손전등으로 벽면을 비추자 특유의 노란색 타일이 보였다. 타일은 종전의 지진 때문인지 아니면 노후화 때문인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부분이 있었다. 녹에 뒤덮인 자판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음료수를 뽑으러 오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비상구를 가리키는 야광 타일은 아직도 희미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민재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애련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월배초등학교, 월배중학교 출신이야. 학교를 마치면 분식집에서 500원짜리 떡볶이를 사 먹던 꼬마들, 그 틈에 껴서 한 입만 달라고 하던 녀석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허구한 날 운동장에서 축구나 하던 남자애들, 그러다가 감정 상해서 주먹다짐하는 녀석들, 그런 남자애들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강단에 앉아 있던 여자애들, 그것이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던 그 시절이 그리워...”
그의 눈은 텅 빈 승강장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시공을 초월한 그 너머의 어딘가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성준은 민재가 말한 것들을 상상해 보려고 애썼다. 학교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었다. 과거에는 붉은 벽돌로 멋드러지게 지어진 건물 안에서 학생들이 지식과 도덕을 배웠다. 학생들은 잘 설계된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으며 공부를 하고, 친구를 사귀고, 체력을 길렀다. 학교 건물 뒤에는 보통 운동장이 있는데, 열차 수십 량을 합쳐 둔 것보다 더 넓은 면적의 공간이 모두 모래로 덮여 있다고 했다. 성준은 도대체 얼마나 넓은 것인지 쉬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런 웅장한 건축물을 오로지 교육을 목적으로 지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물론 메트로에도 “학교”는 있었다. 사람이 사는 역에는 모두 “학교”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메트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인 지식을 가르쳤다. 어린 아이들은 읽고 쓰는 법이나 간단한 산수를 배웠다. 15살 이상의 남자 아이들은 무기를 손질하고 다루는 법을, 여자 아이들은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법을 따로 배웠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교련”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사람들은 “학교”에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 곳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학문을 추구하고 인격을 함양하는 기관으로서의 학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반월당역이나 중앙로역처럼 큰 역에는 살아남은 극소수의 지식인들이 모여 일종의 학회를 운영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하루 하루 생존하기도 힘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학문은 5.56mm 탄환 한 발보다 무가치한 것이었다.
그 증거로 지하 상가의 서점에 쌓여 있던 책들은 모두 불쏘시개가 되었다. “균일가 1,000원”이라는 라벨이 붙은 중고책부터 금박 장식이 입혀진 고급 양장본까지 모두 생존자들의 얼어붙은 손과 발을 녹이는 데 사용되었다. 인문학, 사회학, 철학, 수학, 과학, 공학, 의학의 정수가 모두 공평하게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지식인과 예술가는 대부분의 역에서 배척받았다. 작가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펜 대신 총을 들어야 했고, 연주자는 중세의 음유시인처럼 떠돌이 악사가 되어 객인 생활로 연명했다. 철학자나 프로그래머는 잉여 인간 취급을 받으며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일부 기술자들은 대접을 받았지만, 엔지니어들에게도 새 시대에 걸맞는 계급이 주어졌다. 사람들은 토목공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보다 전직 철도 기술자의 몸값을 몇 배 더 비싸게 책정했다.
핵전쟁은 인류에게서 지상에서 살아갈 권리만 빼앗아 간 게 아니었다. 인류가 지난 1만여 년 동안 쌓아 올린 모든 지식과, 그 근간이 되는 인간의 정신을 빼앗았다. 매슬로의 욕구계층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낮은 단계의 욕구가 충족된 다음에야 높은 단계의 욕구를 가지게 된다. 가장 낮은 단계인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메트로의 사람들은 터널에 사는 여타 생물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싸울 뿐이었다.
“그래도 너는 고향이 머리 위에 있잖아? 나는 고향이 멀쩡한지 잿더미가 됐는지, 우리 가족들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몰라...”
박 상병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왜 모르는데요?”
성준은 박 상병에게 명랑하게 물었다가, 그의 무서운 눈빛을 보고 질문한 걸 후회했다. 그러나 박 상병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원래 대구 사람이 아니야. 우리 집은 아주 멀리 있어. 나는 운이 나빠서 50사단에 배치됐지. 마지막 휴가가 끝나고 부대로 복귀하던 그 날,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라도 사 먹으라며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지폐를 손에 쥐어주던 어머니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시간 없다면서 그 손을 뿌리치고 나왔지.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될 줄 알았더라면 어머니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드렸을텐데...”
성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잠깐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박 상병은 괜한 소리를 했다는 듯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대원들은 다시 터널로 발을 옮겼다. 그들의 등 뒤로 월배역 승강장이 멀어져 갔다.
내 글에 대사를 이렇게 연결시키네
서울 2034 언제 써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