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인치 박격포가 계속해서 강 건너편을 강타했다. 그러나 소리만 요란했고, 허허벌판인 모래벌판과 철조망, 저 멀리 펼쳐진 나무숲 위로는 새하얀 날빛만이 보일 뿐이다. 포성이 멎자, 정글은 고요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따금 새가 우짖는 소리만 들릴 뿐.
다만 특이한 것이 있었다. 이곳의 태양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아마도 예리한 관찰자라면 그 밖에도 특이한 점들을 몇 가지 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수목 한계선 바깥으로 드러난 나무들의 모습,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바람을 타고 느껴져오는 향기...... 지구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정글 가운데 자리한 원형 모양의 방어진지는 약 이백 미터가 약간 못 되는 공간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바깥쪽으로도 상당한 면적에 걸쳐 윤형 철조망이 3중으로 배치되어 있었으며, 하얀색 표지판이 빨간색 페인트로 <지뢰 매설지역>이라는 섬뜩한 문구를 메고 있었다. 철조망 안쪽으로는 모래주머니로 보강된 참호선이 이리저리 내달리고 있었으며, 군데군데 관측대가 자리했다. 먼지투성이의 비포장 도로 하나가 기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전초기지 '좌별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에메랄드 빛 하늘에서 갑자기 새 한 마리가 아래로 내리꽂혔다. 그런데 그 '새'는 일반적인 새와는 무언가 달랐다. 깃털 대신 비늘로 뒤덮인 몸, 비막...... 기지 가까이 접근한 새 주위로 짧게 경고 사격이 이어졌다. 명중당하지 않았지만 새는 깜짝 놀란 듯 허공에서 비틀거리더니 이내 하늘 위로 사라져갔다.
철모를 쓴 군인 하나가 방금 전까지 '새'가 있던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래침을 뱉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세 개의 깃대가 있었고, 각각 깃발 하나씩이 바람에 조용히 나부끼고 있었다. 중앙의 깃대에는 지구의 대륙 모습이 담긴 원형 지도와 그 양쪽으로 올리브 가지가 감싸고 있는 모습의 하늘색과 하얀색 깃발이 걸려져 있었다. UN기, 삼라만상 중 인류의 고향이자 유일'했던' 거점, 지구의 인류를 대표하는 깃발. 그 오른쪽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가장 왼편에는, 다리 셋의 까마귀를 형상한 깃발이 걸려 있었다. 삼족오.
이곳이 행성 '제카미시'에 인류가 세운 전초기지 '좌별초'였다. 20세기 중반, 기술의 발전으로 이계 행성으로 통할 수 있는 문이 열리자, 초기의 충격에서 벗어난 각국의 정부는 이내 초창기의 과학자와 특수부대로 이루어진 선발 원정대를 재빨리 군대로 바꾸었다. 군대가 조심스럽게 교두보를 형성하자 정부 차원의 정복은 이번에는 거대 자본들의 정복으로 바뀌었다. 대항해시대의 재림이었다. 자본은 새로운 세계에서 이익을 창출해낼 욕구로 탐욕스럽게 몸을 떨었다. 그 때 지구는 이미 구석구석 개간되고 개발되어 있었고, 새로운 이윤을 낼 만한 터전은 제한되어 있었다. 우주 개발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었다. '양자 포말 게이트' 기술은 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마치 16세기의 동인도 회사를 보는 것처럼, 기존 대기업들은 재빨리 카르텔을 형성했다. 기업 독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신세계 개척의 욕구에 눈먼 사람들 앞에서 허공으로 흩날렸다. 곧 '제카미시'의 상황을 파악한 카르텔들은 재빨리 자체적인 무장을 갖출 필요성을 느꼈다. 그 수요에 부응하는 집단이 곧 생겨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기업이 후원하는 사설 군사집단이 생겨났다. 새로운 터전을 개척한다는 열망과 신념은 종교적 열의와도 같았다. 외국에서는 '템플 기사단', '몰타 기사단' 등 '전통적인' 기사단들이 잇따라 부활했고, 새로운 단체들이 잇따라 생겨났다.
삼족오 역시 그중 하나였다. 대기업 중 하나가 후원해서 설립된 이 단체는 역사서 중에서 그럴싸해 보이는 상징들을 이리저리 섞어서 만들어졌다. 과거의 영광, 정복. 주로 군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을 모은 이 단체는 엄정한 규율과 바로잡힌 기강이 최대의 장점이었고, 이내 자신들의 상업 교두보를 지키려는 기업들 중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하사, 야별초와는 연락이 되나."
키가 크고 건장한 체구에 텁석부리 사내가 통신센터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위장복을 걸쳤는데, 칼라에는 소령 계급장이 붙어 있었다. 권총집을 어깨에 두르고 목에는 야간용 쌍안경을 매달고 있었다. '삼족오'는 어디까지나 사설 군사집단이겠지만 '소령'은 아직도 군대 시절의 권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신의 부하들을 군대 식으로 조직하고 통솔했다. 군인 출신들을 주로 채용한 삼족오 자체가 작은 군대였다.
소령의 질문에 헤드셋을 낀 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소령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전초 기지 '좌별초'는 지난 48시간 동안 다른 지역과의 교신이 끊어져 있었다. 본대인 '야별초'와도, 다른 기지인 '우별초'나 병참 기지 '신의군'과도 연락이 불통이었다. 서로 간 거리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고, 거친 현장 상황 때문에 아직 유선망은 가설되어 있지 못했다.
"태양 펄스파의 영향인가?"
이곳 세계는 지구와는 비할 바 없이 태양풍의 영향이 강했다. 하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가능성은 있었다.
"좋아. 전파로 연락이 되지 않으면 구식 방법에 의존해야지."
통신센터를 나선 소령은 복도를 따라 지휘 통제실로 향했다. 전초 기지의 다른 모든 시설과 마찬가지로, 통제 센터 역시 벙커 안에 있었다. 소령은 보안 카드를 인식기에 가져다 대고, 삼 초쯤 기다렸다 다시 지문 인식 과정을 거쳤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지휘소 안에 있는 모니터 대부분은 감시 카메라 화면을 비추어 보이고 있었다. 그 화면들은 전초 기지 주변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휘소 중앙에는 전초 기지의 전도가 띄워져 있었다. 삼족오의 지휘관들은 전초 기지들을 설계할 때 자신들이 사관학교 시절 배웠던 대게릴라전 전술 중 하나를 차용했다. 그 전술의 창시자는 물론 이계 행성의 평정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겠지만 지휘관들은 곧 그 방법이 쓸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대전술기지. 이곳 행성에서는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불과한 사람들이 지구의 한 나라 정도 되는 면적에 흩뿌려져 있었다. 소규모의 원정대들은 제한된 병력으로 곳곳에 마련한 거점들을 지키면서 주변을 순찰하고 주변 개척자들도 적의 습격에서 보호해야 했다. 중대전술기지는 그 요구에 잘 부응했다.
그 때 모니터를 보고 있던 기술하사가 말했다.
"섹터 6에 진동 감지 센서가 양성입니다."
"그래, 뭐지?"
"동물 떼입니다."
기술 하사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소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흔한 일이었다. 그는 기지의 차석 지휘관을 불렀다.
"대위!"
"네, 소령님."
군대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삼족오에서는 지휘관급 계급은 기본적으로 원래 군대의 그것을 존중해주고 있었다. 방금 소령이 부른 사내는 소령이 아직 군대에 있었을 때부터 그와 함께 한 전우였고, 믿음직한 후배이기도 했다.
"야별초로 직접 가 보아야겠어. 그 동안은 자네가 지휘를 맡게."
"통신장애 때문입니까?"
"바로 그거야."
대위의 질문에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례를 받은 소령이 지휘소 바깥으로 나섰다. 그는 바로 차고로 향했다. HAATV와 장갑차 몇 대가 차고 안에 있었다. 중대 병력들이 주변 순찰을 할 때 쓰던 차량들이었다.
"차 한 대를 내주게! 야별초로 가볼 생각이네."
"직접 가실 생각이십니까?"
정비사가 놀란 듯이 말했다. 소령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빨간색 빗금이 칠해진 차량을 둘러보았다.
"통신이 불통이기 때문에. 차량 상태는 어떤가?"
"양호합니다. 타이거랩터 녀석들이 떼지어 달려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중사가 씩 웃었다. 순찰 임무 중에는 간혹 토착 생물종들이 습격해올 때가 있었다. 대개는 차량 위에 탑재된 기관포 세례를 받고 달아낼 때가 많지만, 문제는 이곳은 머리 위까지 나무 가지가 드리워지는 정글이었다. 초창기에는 예상치 못한 습격으로 인해 사상자가 날 때도 많았다. 지금은 이렇게 차량 한 대만 가지고 가도 안전한 구역들을 몇 확보해두었지만. 구석에서 태블릿을 들여다보고 있던 병사 둘이 총총걸음으로 HAATV 한 대에 올라탔다. 소령도 차에 올라탔다.
초병들이 바리케이트를 치우자 로버는 덜컹거리며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공병단 병사들이 고생하며 만든 이 도로는 벌써 자연 속으로 반나마 되돌아가고 있었다. 지구의 정글처럼, 이곳 역시 우기 때마다 끊임없는 침식과 풍화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끊임없는 보수 작업을 한다면야 낫겠지만, 초기 개척지에서는 보수 작업에 돌릴 인력도 용이하지 않았다. 게다가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점은 끊임없는 분쟁이었다.
"안전지역이긴 하지만, 조심하게! 전파 교란 장치는 켜 두었겠지?"
소령의 말에 운전병이 외쳤다.
"네, 염려 마십시오!"
소령이 말한 전파교란 장치란 부비트랩을 해제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토착인들과의 싸움도 싸움이었지만 같은 인간 종과의 싸움도 문제였다.
이곳은 말 그대로 서부개척시대의 무법천지를 생각하면 되었다. 법적으론 UN 이계사무국의 주재 아래 국제법이 적용되지만 거의 지구 정도 크기 되는 행성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일일히 파악이 불가능했다. 적대적인 기업이나 조직의 전초기지를 몰래 쓸어버리고 위협적인 토착민들의 습격으로 당했노라고 하는 것도 가능했다. 인간들은 토착민들과 싸우는 동시에 서로와도 싸웠다.
소령은 문득 로버의 창 밖 멀리로 무언가를 본 듯했다. 고개를 돌리자 정글 사이사이에 사람처럼 보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들은 무표정하게 정글 도로를 달리는 로버를 바라보았다. 토착인인 '호랑이' 족이었다. 인류와는 전혀 다른 진화 과정을 거쳤을 그들은 몇 안 되는 우호적인 부족 중 하나였다. 소령은 시선을 돌렸다. 그 이들은 자신들을 빤히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앞으로 두 시간 정도인가......"
야별초까지는 차로 달려도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상당한 거리였다. 삼족오 부대의 약점 중 하나가 바로 서로와의 거리가 상당하다는 점이었다. 원래 삼족오 지휘관들은 각 기지가 서로 엄호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들어서 있기를 원했지만 고용주들은 그 의견을 묵살했다. 그들은 상업적 이익에 따라 기지의 대략적인 위치를 선정했다. 소령을 비롯한 기지 지휘관들의 융통성이란 그 틀 안에서 작용했다. 지휘관들은 불안해했지만, 애초에 기지 부지 선정은 고용주의 의사가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 역시 계약조건에 들어 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탈없이 굴러온 게 다행이었지만.
하지만 이제 48시간 전부터는 본국과 어떠한 연락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뿐더러 기지 간 연락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았다. 이 불통이 일시적인 현상일런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렇게 오래 가는 것은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어서 오게."
야별초의 지휘관인 대령은 소령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 역시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지구와는 수천 광년은 떨어져 있다는 이 행성에서 낯익은 사람은 늘 반가운 느낌이 들게 마련이었다.
대령 역시 한때는 대한민국 군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는 '양자 포말 게이트'가 제카미시 행성으로 이어지는 데 성공했을 때, 게이트 너머로 진입한 초기 멤버 중 하나였다. 거의 3개월 동안 그가 지휘하는 부대는 놀랄 만한 정보들을 수집해왔고, 현지에 위상 표지기를 설치하고 돌아왔다. 지구로 돌아온 그와 그의 부대원들은 영웅이 되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 때 지구는 자원 고갈로 신음하고 있었고, 우주 개척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였다. 사람들은 절망하고 있었고, 국가들은 어떻게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런 때에 새로운 약속이 나타났던 것이다.
한동안은 대령은 초기 원정 프로젝트를 조율하며 잘 나갔다. 그런데 사고가 생겼다. 초창기 원정에서 맞이했던 최악의 참사. 대령은 상세한 것은 말해주지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때 국제 원정대를 덮친 참사는 10분의 1형이라고 불릴 정도로 끔찍했다는 점이다. 고대 로마군의 형벌 이름이기도 한 그것은 10분의 1이 죽어나갔다는 의미였다. 이번에는 약간 달랐다. 생존자가 10분의 1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령은 생존자 속에 들어 있었다. 수많은 비판들이 쏟아져왔다. 결국 대령은 옷을 벗어야 했다.
하지만 원정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되지는 않았다. 양자 포말 너머 세계를 맛본 인류는 그 과실을 그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대령은 그 너머가 어떤 세계인지 알고 있는 '전문가' 중 하나였다. 그 때 막 기업 카르텔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대령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잘 지내고 있겠지."
"다행히...... 영내에 특별한 소요는 지금은 없습니다."
정기적인 화상 통화로 보고를 주고받고 있지만 직접 만나는 것은 또 달랐다. 그와 대령 사이에는 생사를 넘나든 전우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가 대위 계급에서 정체되어 있을 때, 그를설득해 삼족오로 스카웃해 왔던 사람이 바로 대령이었다.
"그나 저나...... 지구로의 통신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아보려 왔습니다."
소령의 말에 대령의 표정이 흐려졌다. 그가 마시고 있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들은 모양이군."
대령의 표정에서 소령은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자네도 알겠지만 이번 델린저 현상은 전례없이 심각했어. 제카미시의 태양 두 개가 동시에 강력한 태양풍을 발산했네. 그 때문에 지구로 향하는 양자 포말 게이트가 교란당했어. 그래, 자네 말대로일세. 현재 지구로 향하는 통로가 끊긴 상태이네."
"맙소사!"
소령은 조그맣게 탄식했다. 제카미시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국적과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몇 만의 사람들은 이제 한 가지 면에서 똑같았다. 미아 상태.
"하지만 걱정말게. 이것 역시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야. 태양풍이 가라앉는 대로 곧 해결될걸세."
대령의 말은 고무적이었지만, 소령은 여전히 불안했다. 대령의 처음 표정에는 무언가 말해주지 않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결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요? 우리가 가진 물자들은......"
그가 지휘하는 전초 기지는 기본 예비 물자는 식량은 한 달 분, 탄약과 유류는 일 주일 분은 비축해두고 있었다.
"우선, 태양풍이 호전될 때까지 '신의군'의 물자를 각 기지에 재배치해 둘 거야."
신의군은 삼족오 현지 부대가 지구로부터 받아오는 물자들을 집적해 두는 기지였다.
"너무 걱정말게. 게이트가 수복될 때까지 UN 제카미시 원정 위원회 사람들과 사태를 협의할 테니까. 모든 게 아직은 통제하에 있네."
UN 제카미시 원정 위원회는 양자 포말 게이트로 넘어온 사람들을 국제법 아래 묶어주는 기관이었다. 그들은 대륙 해안가에 자리한 '제너두'를 본거지로 하고 있으면서, 현지의 각종 위법 행위나 분쟁 행위들을 관할하고 있었다. 소령은 불안감을 감추면서 짧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령님."
제카미시에 있는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굳게 닫힌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을 즈음, 지구에서도 비슷한 회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48시간 전, 행성 제카미시 전 지역에 강력한 태양풍이 몰아쳤고...... 이 때문에 양자 포말 게이트가 정지된 상태입니다."
"사태는 얼마나 심각한가?"
질문을 받은 과학자는 약간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직 평가 중에 있습니다만...... 이 때문에 제카미시의 양자역학적 위상 좌표가 변경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말에 UN 대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좀 쉬운 말로, 간단히 말씀해주시겠소?"
"그러니까....."
흰 가운을 걸친 과학자는 그의 질문에 적당한 표현을 찾아내기 위해 고심했다.
"그 쪽과 이쪽을 연결하는 문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문을 열려면 문이 양 쪽에서 동시에 맞는 열쇠를 끼워넣고 동시에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저 쪽이 열쇠를 잃어버린 상황이 되겠죠. 그렇다면 이 쪽에서 아무리 열쇠를 돌려 보아야 문이 열리지 않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문을 열지 못한다는 겁니까?"
UN 관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처음에 제카미시와의 문을 열었지 않습니까? 똑같이 하면 안 되는 겁니까?"
과학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 원리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양자 포말 게이트는 매 순간이 무작위적입니다. 매 순간 어디로 연결되는지 알 수 없지요. 양자역학적인 좌표가 확정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현실의 특정한 좌표로 게이트를 열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이 그 동안 제카미시로 연결되는 통로를 안정적으로 열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의 양자 좌표 표지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의 자기장 폭풍으로, 그 좌표가 완전히 뒤엉켜 버린 겁니다."
"맙소사!"
UN 관리는 가느다랗게 탄식했다.
"사실...... 제카미시로 향하는 통로를 열어낸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깝습니다. 시안 사건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 이후 양자 포말 게이트 확산 금지 조약이 체결되었지요."
과학자의 말대로 지구에서는 양자 포말 게이트의 기술은 핵확산금지조약에 비견될 정도로 엄중하게 통제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강대국들의 세력 다툼이었지만 실질적인 이유도 있었다. 불안정한 기술로 어설프게 게이트를 열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발생할 수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기술자들이 통제 위원회의 감시를 피해 몰래 게이트를 열려고 시도했다가 시 하나가 소멸되고, 전자기 펄스 폭탄(사실상 핵탄두) 폭격을 받아 가면서 겨우 사태를 수습한 사례는 유명했다. 그 '겨우 수습'될 때까지 거의 도 단위 면적의 모든 것들이 분자 단위에서 소멸했다. 중국 최초로 게이트의 개방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던 중국 지도부들이 몰살당하고 제 2포병 사령관이 영토나 타국의 공격은 적대행위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개입이 지연되었던 것이다. 하긴 그 덕분에 게이트가 폭주할 경우 긴급 정지를 시도할 방법이 무엇인지 실증해내긴 했다.
다만, 심지어 이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들조차 게이트의 작동 원리와 안전성 등을 완벽하게 알아내지 못했으며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엄중하게 보호받고 자폭 시설까지 갖춘 시설에서 조심스레 양자 포말을 가동시킨 후 어디로 연결되었는지 보고 그 너머가 안전할 것 같으면 비로소 고개를 들이미는 수준이다. 때에 따라서는 그렇게 찾아낸 이계가 별다른 가치 없는 황무지일 때도 많았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시안 사태처럼 엉뚱한 곳으로 게이트를 열어버릴 수도 있었다. 국가 예산을 쏟아부어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거나 거꾸로 파멸을 불러올 수 있는 상황이란! 이래서 게이트 기술은 양날의 검이자 투기에 가까운 투자였다. 그 때문에 제카미시로 열어낸 게이트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선물이었다.
그리고 그 게이트가 방금 닫혔다. 어쩌면 영원히. UN 관리는 할 말을 잃었다.
"일단 이 사태는...... 각국 정부 지도자와 토론을 해야 하겠소. 그곳에 넘어간 나라들과 인원 수를 확인해보아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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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게이트' 하나때문에 포아붕이 하나 골로갈뻔
그전에 씹덕도 포스트 아포칼립스 관련 내용이면 부분 허용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