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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죽음이 드리우고 운 좋게 메트로에 있던 이들과 지상의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목숨을 건진 이후, 모든 것이 부족했다.

사람도 모자랐지만 그 사람들이 소비할 물자는 더더욱 모자랐고, 의약품 또한 그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식품은 그나마 메트로 안에서 자체적으로 생산이 가능했지만, 약은 그렇게 할 수 없었고, 더 오래 삶으로 인해 메트로에 기여할 수 있는 순으로 약품이 돌아갔다. 목숨을 붙들어봤자 밥이나 축낼 것 같은 사람들에게는, 혹시나 이 약이 필요한 유능한 인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그 어떤 약물도 투여되지 않았다. 설령 이 약이 투여되지 않고 그대로 창고에서 썩더라도 그 편이 더 나았다.

이것이 메트로 시대 의료의 철칙이었지만, 어디에나 가슴 뜨거운 사람은 있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가슴이 뜨겁더라도 머리는 차가워야 했다. 머리마저 뜨거운 상황이 오래 지속된다면 그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 비록 그 과정은 다르지만, 생물학적으로도, 비유적으로도 결과는 같았다.

지금 눈 앞에 있는 환자는 한 달 전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였다. 일주일 전 심한 복통과 구토를 호소하며 내원했고, 복부 초음파 검사 결과 위에서 종양 같은 것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방금 나온 조직 검사 결과는 위암이었다. 진행이 꽤 되기는 했지만 위암은 3기라 해도 생존률이 절반 가까이 되는 암이었고, 따라서 충분히 치료를 한다면 생존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환자는 치매 환자였고, 진행 억제제도 제대로 복용할 수 없는 환경이니 암이 낫는다 해도 그 즈음이면 치매 증상은 지금보다 더 심해져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하며 한참동안 검사결과지를 노려봤다.

"선생님, 저희 어머니가 도대체 왜 이렇게 아프신 겁니까?"
보호자가 물어왔다. 이제는 대답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약간의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위염입니다. 처음에는 암을 의심했는데 다행히 조직검사 결과는 정상이예요. 특별히 자극적인 음식은 안 드셨다니 아무래도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보입니다. 치매 진단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신 것 같은데 아드님께서 잘 위로를 해 드리세요. 치매 약은 드리기 힘들지만 약 말고도 진행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까 그것만 잘 행해주시면 여기서 크게 진행은 안 될 겁니다. 그러니 어머님도 걱정 놓으세요. 걱정만 하시기보다는 염려 놓으시고 잘 드시고 잘 주무시는 게 건강에 이롭습니다. 일단 위염 약 한 달 치 처방해드리겠습니다."

아들은 다행이라며 연신 감사하다고 허리를 숙여댔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일으켜 세우고 부축하며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소리라도 한바탕 지르고 싶었지만, 진료실 밖에 있을 사람들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전쟁 전에는 동료 의사, 간호사들과 의료보험 재정을 이유로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죽이라고 으르렁대는 심평원*을 씹어대는 것이 일상이었다.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새끼들. 지금쯤 그 새끼들은 부족하다고 생난리를 피우며 전국의 의료진에게 안 지급하고 뻐튕긴 의료보험 재정으로 지은 화려한 신청사와 함께 지옥으로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떻지? 지금 우리도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죽게 내버리고 있지 않나? 우리가 그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들에게는 의료보험의 커버리지에 비해 심각하게 낮은 보험료를 인상한다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껴야 한다며 쌓아뒀던 재정으로 신청사를 짓지 않는다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그들은 쓰레기같은 선택을 택했고, 우리는 쓰레기같은 환경에 내몰렸을 뿐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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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평원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한민국 의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없는 적폐 중의 적폐.

중간의 욕은 작품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포함된 것이니 양해 부탁드림.

P.s. 직접 서술된 내용은 아니지만 유추 가능한 숨겨진 내용이 하나 있는데 뭔지 맞춰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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