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로 존재하는 사람

PDA 한 대를 손에 쥐고 선반 앞에 서면,
나는 사람이 아니라   위치른 정하는  장치가 된다.

이름은 필요 없다.
오늘의 나는 선반사이를 오가는 몸이다.
삑, 소리가 나면 생각은 끊기고
다음 물건 진열하러 이동한다.

박스는 쉼 없이 들어온다.
이 물건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어디에 놓일 것인가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냥 찍고 갖다 놓는 거잖아.
겉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번 판단이 들어간다.

이 박스는 길다.
이 칸에 넣으면 위에 뭔가 올라올 때 걸린다.
이건 가볍다. 위로.
이건 무겁다. 아래로.
이건 자주 빠진다. 손이 바로 닿는 높이로.


정답은 주지 않는다.

나는 매번
“이게 최선인가?”라는 질문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채 처리한다.

경계선 지능.
예전에 받은 이름이다.

그 말은 늘 애매했다.
못한다고 말하기엔 애매하고,
괜찮다고 말하기엔 불안한 상태.

시험지 앞에서는
나는 늘 반 박자 늦었다.
문장을 이해하는 동안
다음 문장이 와 있었다.

머릿속에서 말이 엉키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때의 나는
관측당하는 입자였다.
점수로, 평균으로, 분포도로.

여기서는 다르다.

여기서는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손이 먼저 움직이고
몸이 다음 위치를 안다.

나는 설명은 못 하지만
쌓을 수는 있다.

이 박스를 여기에 두면
나중에 흐름이 막힌다는 걸
말로는 못 해도
몸은 안다.

이건 지능이 아니다, 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선반 앞에서는
작동한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측정되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다.

시험에서는 잡히지 않았던 능력이
여기서는 실제로 결과를 만든다.

선반이 무너지지 않는 것,
동선이 막히지 않는 것,
다음 사람이 욕하지 않는 것.

이건 전부
지금 여기에서만 확인되는 값이다.

가끔 생각한다.
내 인생도 이런 식이었으면 어땠을까.

일찍 측정되지 않고,
성급히 붕괴되지 않고,
조금 더 오래
중첩 상태로 남아 있었다면.

하지만 이미 상자는 열렸고
라벨은 붙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경계에 있다.

통계와 현실의 경계,
머리와 몸의 경계,
못함과 버팀의 경계.

그 경계에서
오늘도 박스를 하나 집어 든다.

삑.
좌표가 뜨고
한 칸이 채워진다.

누군가에게 나는
여전히 “그런 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선반 앞에서만큼은
나는
공간을 결정하는 쪽에 서 있다.


- dc official App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