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품검수 라인에 서서 끝없이 밀려오는 박스들을 마주할 때면,
손에 든 커터칼이 물건의 운명을 가르는 무거운 잣대처럼 느껴진다.
예전의 나는 통계표 아래쪽 어딘가에 찍힌 점이었다.
"경계선 지능."
누군가의 판정을 조용히 기다려야만 했던 입자였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창고 한쪽에서
정상품, B급, 폐기, 고객 귀책, 회사 귀책이라는
다섯 갈래의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
평생을 관측당하고 규정당하던 사람이
이제는 사물의 상태를 관측하고 판정하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이따금 서늘하게 다가온다.
컨베이어 위를 흐르는 것은 단순한 재고가 아니다.
변심, 후회, 실수, 혹은 누군가의 궁핍한 사정.
재포장 테이프가 덧붙은 박스 안에는 사람의 흔적들이 엉켜 있다.
내 일은 단순하다.
박스를 받고, 바코드를 찍고, 개봉해서 상태를 확인한 뒤
규정에 맞는 코드를 누르는 것.
겉보기엔 그저 지루한 반복 작업이다.
하지만 상자를 열기 직전,
칼날이 테이프를 가르는 찰나의 정지 구간 속에서
나는 늘 양자역학의 중첩을 떠올린다.
슈뢰딩거의 상자 속 고양이가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듯,
내 앞의 박스들 역시 닫혀 있는 동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의 상태로 존재한다.
고객은 그저 개봉만 했다고 주장하고,
시스템은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이 안의 신발은 새것이면서 헌것이고,
전자기기는 온전하게 작동하면서 동시에 파손되어 있다.
모든 가능성이 확률의 파동으로 겹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칼을 밀어 넣어 내부를 확인하는 순간,
그 겹쳐있던 가능성들은
단 하나의 현실로 날카롭게 붕괴한다.
검사실에서 내 지능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날이 생각난다.
그때의 나 역시 평균일 수도,
혹은 다른 무엇일 수도 있는 중첩된 상태였다.
하지만 '경계선 지능'이라는 숫자가 결과지에 찍히는 순간,
내 안의 다른 모든 가능성은 붕괴해 버렸다.
그 숫자는 내 과거의 실패를 '역시 그럴 줄 알았던' 필연으로 재해석했고,
미래의 한계를 촘촘하게 그어버렸다.
관측은 단지 묻혀있던 사실을 밝혀내는 중립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대상의 경로를 영구적으로 고정해 버리는 폭력이다.
반품된 물건을 검수하는 일은
세상의 연속성을 불연속적인 기호로 토막 내는 작업이다.
끈을 한 번 묶었다 푼 흔적이 있고
밑창에 옅은 먼지가 묻은 신발.
현실의 언어로는 분명 '거의 새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의 알고리즘에는 '거의'라는 항목이 없다.
관측자인 나는 0 아니면 1, 허용 아니면 제외라는 이분법의 코드로
연속된 현실을 난도질해야 한다.
여기서 정보의 비대칭과 상대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고객의 시간대에서 이 물건은 '집에서 잠깐 신어본' 찰나의 과거에 머물러 있지만,
회사의 시간대에서 이것은 '상품 가치를 상실한' 미래의 손실로 흐른다.
관찰자인 나의 위치에 따라 이 사물의 진실은 완전히 달라진다.
스크래치의 길이나 포장의 훼손 정도는 볼 수 있어도,
그것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은 관측되지 않는다.
가끔 박스 안에서 "사정이 생겨 어쩔 수 없이 반품합니다"라는
구겨진 편지를 발견할 때면 멈칫하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나는 물건의 현재 상태만을 볼 뿐,
그 이면의 굴곡진 사정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누르는 차가운 코드 하나는
누군가의 환불 금액을 깎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절대적인 결과로 굳어진다.
나는 빠른 다중 판단에 약하고,
여러 변수를 동시에 계산하는 일에 서툴다.
검사지의 숫자는 내게 그런 한계가 있다고 선고했다.
하지만 "한 번에 한 박스",
이 좁고 깊은 단위 앞에서 나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라벨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름 하나가 한 존재의 궤도를 어떻게 뒤틀어버리는지
나는 뼈저리게 살아내며 배웠다.
그래서 나는 성급하게 박스의 세계를 붕괴시키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경계 위에서 상자를 연다.
완전한 정상도 아니고 완전한 불량도 아닌,
경계에 선 사물들을 들여다본다.
기계적으로 코드를 누르기 전 잠시 숨을 고르고,
이 상자 안에 한때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묵묵히 응시한다.
시스템은 내가 누른 단 하나의 결과만을 기록하겠지만,
관측되기 이전의 그 중첩된 시간들까지
지워버릴 수는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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