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의 진실. 이승만은 일부러 군대 휴가를 줬다
이승만은 국군에 북침공격명령을 하달하고서도 6월 25일은 일요일이어서 태평하게 낚시질을 하였다고 선전하여 세상 사람들을 속이려고 하였다. 워싱턴의 휴가와 괴뢰군의 계속되었던 비상상태의 해제 그리고 이승만의 부슬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낚시질 떠난 일 이런 것은
각각 따로따로 생각해봐도 보통 때도 여간해서 일어나기 힘든 상식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것들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은 의도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이런 비상식적인 3가지 일이 모두 6.25에 꼭 맞춰서 하나같이 일어났다는 것은 우연히 취한 행동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밖에 갑작스런 대규모 인사이동도 우연으로 생겼을까요.
후퇴 명령에 거역하고 맞섬으로써 유엔군을 끌어오는데 차질이 생기는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저히 예방하는 조치였습니다.
국군을 초기에 확실하게 후퇴시키기 위하여 국군 지휘관들의 갑작스런 대규모 인사이동을 전쟁발발 직전에 단행하였습니다. 새로 부임해서 군 지휘관의 조직 장악력이 떨어진 상태여서 인민군에 대해 자체 방어도 담당하기 곤란한 상태가 되어 미 고문단의 지시대로 무질서하게 후퇴만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두고 보자는 식으로 그렇게 공산군이라면 지옥까지 쫓아갈 듯이 덤비던 국군이 총 한발 쏘지 않고 물러나기만 했던 것은 후일을 도모 하는 뭐가 있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때 유엔군이 합류하는 것은 문학작품에서 수없이 보아온 바로 그거였다.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악당을 물리칠 뛰어난 능력의 초인을 필요하게 만들어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1950년 6월 11일 발령됐던 군부대 비상경계령이 6.25 하루 전인 24일 0시 갑자기 해제됐다. 더구나 병사들에게 외출과 휴가를 허용하였다 이에 따라 전 장병의 절반이 휴가와 외박을 갔고 육군본부 장교들은 전쟁 당일 새벽까지 댄스파티를 즐겼다.
이런 해이된 사건들이 워싱턴과 이승만과 한국군이 완벽히 삼위일체를 이루어 일어났다.
이와 같이 한국전쟁은 사전 시나리오에 의해 철저히 준비된 전쟁이었다.
지금까지 인내하던 북한의 반격이 있자 미국은 기다리던 것이 왔다.
드디어 미국이 간절히 바라던 대대적인 전쟁이 주어져 미국의 능력을 또 한 번 펼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http://blog.daum.net/jongwon555/117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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