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은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이어진 팔레즈 고립지의 전투로 인해 서부의 제5기갑군이 치명적 타격을 입고, 동시에 이뤄진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인해 중앙집단군이 분쇄되며 양대전선에서 모두 강펀치를 얻어맞고 각각 서부, 동부의 주력이 일제히 상실되는 최악의 결과에 직면한다.
그러나 나치는 양쪽에 모두 적을 두게 되고 주력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철저 항전을 선택한다. 그리고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예비군 병력 및 대폭 삭감시켜 보병으로 전환시킨 비전투 및 지원 병과 병력들, 전투병과이지만 운용할 병기가 줄어들어 인력만 남아있던 포병이나 기갑 부대 등에서 차출된 인원들, 함정, 항공기가 줄어들어 잉여 인력이 된 공군, 해군 장병들, 심지어는 징집 대상도 아니던 중장년 남성들,[1] 십대 후반 소년들이나 상처도 다 낫지 않은 부상병, 전멸한 부대의 잔존병까지 끌어 모으고 원래는 보병 대대 9개(여단 3개)로 편성하던걸 보병 대대 6개(여단 2개)로 감편해서[2] 간신히 육군 보병사단을 편성해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하려고 했고, 이들에게 선동용으로 '국민척탄병'이라는 칭호를 붙이고 전선에 보냈다.
이들은 상술한 대로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오합지졸에 숙련된 부사관들과 장교들을 붙여서 어떻게든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 급조된 사단이었고, 전체적으로 부대마다 구성원이 다른 탓에 잔존병, 패잔병 등 전투를 경험한 숙련병 출신자가 많은 부대는 전투력이 뛰어났지만 갓 징집된 오합지졸로 구성된 부대도 많았다. 때문에 군기도 빠져있고 경험도 부족한 탓에 담당장교나 분대장의 경우 괭장히 애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독일 육군 교리의 변경사항을 반영한 군대이기도 했다. 우선 기존의 독일 육군 교리가 MG42가 분대의 화력을 모두 담당하고 Kar98k등의 라이플은 보조적인 역할만을 담당했다면, 독소전쟁을 거치면서 PPSh41를 들고 우라돌격을 감행하는 소련군에게 뜨거운 맛을 본 독일군 수뇌부가 국민척탄병 사단에게는 "비밀병기(Wunderwaffe)"로 취급되던 StG44, MP40과 같은 돌격소총과 기관단총을 많이 지급해 보다 근거리 교전 지향적, 자동화기 지향적인 군대로 바꾸고자 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그 때문에 극히 일부이지만, 몇몇 국민척탄병 사단들은 육군 메이커 사단들보다 지급받은 장비 수준히 나은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분명히 정규 육군 부대였으므로 국민돌격대와 달리 군복 등 피복류는 제대로 지급됐다.
그러나 대부분이 현실은 시궁창이라서 장비들은 사실 제대로 보급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독일군 척탄병의 상징이었던 슈탈헬름도 모두 다 지급받지 못해서 일부는 그냥 모자만 지급받기도 했다. 장비들이 보급할게 모자라 남아있는 무기를 오합지졸로 지급하다 보니 한분대에 소총, 돌격소총, 기관단총, 판처슈렉이 섞여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인적자원의 고갈로 예비역이라고도 부르기 어려운 범위의 사람들까지 징병한 탓에 숙련도가 들쭉날쭉하고 비숙련병이 수두룩했던 국민척탄병 사단들은 아르덴 대공세를 즈음하여 척탄병들 마냥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서부전선 및 지크프리트선, 동부전선, 이탈리아 전선, 그리고 독일 본토 결전에서 싸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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