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과 월맹도 1950년대에는 UN이 감시하든 뭐든 좋으니 자유총선거에 의한 남쪽 지역과의 평화적 통일정부 수립이 기본정책이었음.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즉 베트콩을 지원해 무력통일을 하자는 노선은 1960년 베트남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결정되었음.
1954년 북위 17도선으로 경계가 나뉠때 북에서 남으로 이동한 사람보다 그 반대가 많을 정도로 이미 북베트남은 인기가 좋았음.
그때까지는 월남 지배층을 포용해 평화통일을 하자는 것이 호치민의 기본노선
기갑이야기: 북베트남군은 무슨 탱크를 썼음요?
마찬가지였단다. 북은 항상 남북 동시 총선을 통한 통일정부 수립을 주창.., 문제는 당시 남한은 이 방식으로는 생존할 수가 없었다는거. 결국 이; 방식을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상아 온 결과 오늘날의 떼에한믹눈이 만들어 졌다는 전설.., 결정적 성공 사유가 주한미군이 버티고 잇었기 때문. 물론 우리으 노력도 잇엇지만은 그 전제가 없이는 우리으 노력도 간단하게 무산시킬 능력을 가진 적이 존재.
당시 전통적인 농업국.., 농사 짓는 사람은 고향을 등지지 않는단다. 게릴라전에서도 이거이 큰 문제.., 정착촌을 만들어 분리시킬려고 하는데 분리가 안된다는거. 고향 땅을 등지지 않을려는 노력 탓.., 결국 올라 간 애들은 결국 사회주의자들.., 마찬가지로 한반도에서 월남한 사람들 전부가 재산을 빼앗 긴 자본가들..,
한반도는 북부가 공업 체제..남부는 농업체제.., 간단하게 말하면 돈은 북한에 다 있었고.., 부자도 북한에 다 있었고.., 명문학교도 북한에 많았다는거.., 그러니 유동인구가 북한에 많고 그들 전부가 고향으로 .., 또 재산 뺏긴 사람들도 악에 받쳐 남하.., 판타지하고 사실은 다르단다.
떼 53.55에 중국제 59에.., pt76에.., 각종 btr, bmp등등..,
이글은 좆망한글 왜? 신보군이 점령해서
신보군의 똥을 치우지 않으면 무슨수를 써서라도 이 글을 폭파시키겠음
북베트남군은 T-55와 PT-76을 썼습니다. 사이공 최후의날 대통령궁으로 밀고 들어가는 T-55는 사이공 함락의 아이콘처럼 인식되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