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루드비히 베크, 에르빈 폰 비츨레벤, 에리히 회프너, 헤닝 폰 트레스코프 등등 7월 14일의 반란모의 가담자들은 놀랍게도 계속 그저 '반역자'로 취급되었습니다. 이들의 반란을 일으킨 대상이 어찌 되었건, 국가 최고지도부를 상대로 한 반란은 어쨌건 역적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주장의 중심에는 다름아닌 서독연방군에서 계속 영향을 행사하던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 있었습니다. 만슈타인은 상대가 히틀러라 할 지라도 국가에 충성을 맹세한 군인이 국가 최고지도부를 상대로 반란을 모의했다는 것은 독일 군인의 명예를 더럽힌 행위로 절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슈타우펜베르크 등의 복권 움직임에 정면으로 반대했습니다. 만슈타인이 이런 이유는 프로이센 귀족장성들이 가진 보편적인 심리이기도 했지만, 만슈타인 본인이 그러한 이유로 슈타우펜베르크 등의 반란 동참 제의를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슈타우펜베르크가 복권되면, 그들과 뜻을 같이해 히틀러에 맞서지 않은 만슈타인은 비겁한 기회주의자가 되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만슈타인은 슈타우펜베르크의 복권을 절대 눈 뜨고 볼 수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만슈타인 등이 죽고 빌리 브란트가 동방정책을 실시하며 독일의 범죄를 수면위로 부상시키자, 서독연방군은 이전의 국방군 자체에서 전통을 찾기보다는 나치에 저항한 장교단을 통해 전통을 찾아 나치와 독일군을 분리시킬 필요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슈타우펜베르크는 갑자기 역적에서 영웅으로 부상해 버렸습니다. 사실 서독 이전에 동독에서 7월 14일의 반란을 영웅시하기 시작했었습니다. 국가인민군 또한 정통성 없는 군대였고, 그래서 슈타우펜베르크의 "저항의 전통"을 자신들의 전통으로 우선 잡았던 겁니다. 그래서 황당하게도 선전영화 등에서 슈타우펜베르크가 마르크스주의에 어느 정도 우호적인 것처럼 나오는 상황도 나타났습니다. 슈타우펜베르크는 백작 가문에 장군참모대학을 나온 전형적인 프로이센 귀족 엘리트 참모장교인데 말입니다!


그렇게 역적에서 영웅이 되고 어느 정도 신화화의 과정까지 거친 슈타우펜베르크는 1990년대가 되면서 윤색된 신화가 걷히기 시작합니다. 비판자들은 7월 14일의 반란의 성격은 억압적 나치 체제를 근본적으로 무너트리기보다는 과거 프로이센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성격이 더 강한 것이었고, 또한 인종 문제에 있어서는 나치와 군 내 저항세력이 딱히 차이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 때문에 슈타우펜베르크 등은 군 조직에서 나치에 저항한 사례로 남기는 했지만, 과거처럼 무슨 구국의 영웅이 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