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군부가 지금과 같이 강경이슬람근본주의화된 것은 근대터키의 창업자인 아타튀르크로서는 생각치도 못했을 수도...


강력한 세속주의와 아타튀르크전통을 가진 군부를 에르도안은 어떻게 장악했을까?


그것은 2010년의 Sledgehamme 군부 대숙청사건.


이 사건으로 군부내 세속주의 핵심세력들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숙청당했는데 360여명이 혐의를 받고 300여명이 숙청되었다고...

이후, 세속주의 세력의 강력한 축이었던 군부내 아타튀르크주의자들은 군부내에서 궤멸당하다시피 됨....


그리고, 에르도안의 충실한 개들만이 터키의 군부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에르도안의 집권당 정의개발당(AKP)는 1997년 법원에 의해 해산된 집권당 복지당의 후신이고 복지당은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시대에 쫓겨난 강경이슬람세력들의 후신.


2010년의 군부대숙청으로 강력해진 정권은 2013년 술과 낙태등을 금지하는 이슬람강경화 정책등을 추진하고 부정부패가 심화되자

그해 6월 이스탄불 게지공원에서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벌어졌으나 군부를 장악한 에르도안은 무력으로 시위를 강경진압함.

그러나 정권의 부패로 곧 커다란 부패추문이 일어나는데 에르도안정권의 고위층인사들 아들들의 부패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러워지자

그해 12월 에르도안이 아들에게 전화해 삼촌들에게 불법자금을 빨리 옮기라며 숨기라고 지시하는 전화녹취록이 공개되는 추문까지 터졌다.

이 에르도안의 불법자금의 규모는 1조 6천억원이었으며  이 폭로사건에 분개한 에르도안은 유튜브,트위터등 모든 인터넷을 규제하고 감청파일을 공개한 죄로 부패사건을 수사하던 검찰과 판사등 수천명을 전보등의 조치로 쫓아내 마침내 검찰까지 장악한다.


군부, 언론, 검찰, 인터넷까지 통제한 에르도안은 그해 다음해 3월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두며 독재정권의 기반을 확실히 구축하게 된다.


강경이슬람주의자인 에르도안이 시리아와 이라크의 IS와 알카에다 그리고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들을 물신양면으로 지원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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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 인물은 군부 대숙청이 벌어진 2013년 터키 소마탄광사고로 301명이 사망하는 참사에 국제적인 애도가 표시되던 당시


정부의 사고처리와 에르도안의 탄광은 원래 이런 사고가 예정된것 아니냐는 막말에 분개한 항의하는 시민을 발로 걷어차는 에르도안의 보좌관


정부는 당시 분노한 유족과 시민들의 시위를 무력으로 강경진압해 역시 난국을 타개한다...   




참조 : 정치/경제 위기에 처한 터키


.......터키는 아시다시피 아타튀르크의 건국 이후 일관되게 세속주의와 유럽지향 노선을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 이슬람주의를 표방한 정의개발당(AKP)의 집권으로 이스탄불 시장을 역임했던 에르도안이 총리에 오릅니다. 

당초 에르도안이 이슬람주의를 강화하면서 세속주의의 첨병을 자처한 군부와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에르도안은 한동안 온건주의를 내세우며 세속주의 세력을 자극하지 않다가 2010년 일단의 군간부들이 2003년 집권직후 부터 쿠테타를 모의했다는 소위 Sledgehammer 사건을 통해 군부내 반대세력을 일거에 숙청시킵니다. 

당 시 쿠데타 음모는 모스크에 폭탄을 터뜨리고 이를 오랜 숙적인 그리스의 소행이라고 하면서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었는데 여러 증언에 따르면 구체적 계획이었다기 보다는 군 엘리트 집단 회의 중 나온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는 설이 많습니다.

이 사건으로 365명의 혐의자 중 300명이 수감되어 현역 장성의 20%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에르도안은 반정부 성향 군인들을 완전히 제거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무리한 법집행으로 인해 2014년 터키법원에 의해 아직 수감 중인 관련자 전원에 대해서 석방명령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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