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저는 K1A1전차부대 정비병 출신입니다. 복무는 30사단에서 했고요.

자기소개는 이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전차부대에는 전차포 훈련이란게 있습니다. 메인이벤트로는 전차포 사격을 하는 훈련으로 보통 일주일 넘게 훈련장에 나가서 생활하는데 여기서 일주일 내내 주구장창 포쏘는건 아니고 여기에 중대끼리 치고박는 전술훈련이 포함되어 있지요. 전차포 사격때라면 (사람이 모자라서....) 정비병들도 탄약수로 끌려가고 하지만 정작 전술훈련때는 구난전차에 탑승에서 뒤에서 노가리까며 시간 때우다가 중파 판정을 받은 전차(전술훈련에는 경파, 중파, 완파로 나뉘는데 경파는 자체적으로 수리하고 중파의 경우는 중대 정비반이 와야지 수리되는걸로 판정했습니다. 완파는 그런거 엄따)를 고치는 시늉만 하면되는 소위 '땡보'인 위치였지요. 그리고 제 군생활 마지막 전차포사격에 그날 전술훈련때도 어김없이 저는 구난전차 안에서 정비간부 둘과 후임정비병 한명과 함께 부식을 먹으며 간부 휴대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덤으로 열심히 치고박으며 멘붕하는 소대장들의 목소리를 감상하며 말이죠.
그때 갑자기 3소대장이 저희를 불렀습니다.

"정비반, 정비반 여기는 3소대. 3소대 3호차가 정비 필요하니 그쪽으로 이동하기바람."(원래라면 별도의 호출명이 있지만 그런거 상상해서 적기는 귀찮으니.)

저희는 아 귀찮네-하는 느낌으로 구난전차 시동을 걸고 해당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가던 도중 적 중대의 완파당한 장갑차가 길막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여기서 서있냐고 물어보니 여기서 완파당해서 통제관이 여기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3소대에게 무전했습니다.

"3소대, 여기는 정비반이고 현제 3호차에게 가는길이 완파당한 적 장갑차로 막혀있구나. 우회로로 기동해도 되겠는지?"
"정비반 여기는 3소대. 장갑차 승무원에게 비켜달라고 할것."

이 무슨 이상한 말인가. 전술훈련에서 적한테 비켜달라고 부탁을 하다니?

"3소대 적 장갑차에게 비켜달라고 하라는 말인지?"
"정비반 그렇다고 알림. 실제상황이니 비켜달라 할것, 이상"

이게 뭔 헛소린가? 실제상황이라니? 저희는 뭔가 불안감을 안고 적 장갑차 차장에게 '저희 지금 실제상황입니다. 길좀 비켜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적 장갑차는 길을 비켜주었고 저희는 3호차가 있는곳으로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실제상황이 무슨뜻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3호차 왼쪽 궤도가 튀어나온 커다란 돌을 가장자리쪽으로 밟았다가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OMG)

말그대로 궤도는 끊어져서 궤도를 연결하는 3개의 핀이 완전히 비틀려 부러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신을 욕하며 튀어나온 커다란 돌(생긴걸로 봐선 무슨 건물콘크리트가 떨어진듯한 제 몸집만한돌...)을 빼내고 부러진 궤도핀을 떼내고 새핀으로 끼우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중대장으로부터 무전이 날아왔습니다.

"정비반 여기는 중대장. 귀소 현시간부로 완파. 지금 어디인지?"

여기서 '어디인지'는 명백히 어디서 뭘하다 그런 말도안되는 곳에서 죽었냐 라는 말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여기는 정비반. 지금 3소대 3호차 궤도가 끊어져 현재 정비중이다 이상."
"......? 실제로 궤도가 끊어졌다는 말인지?"
"그렇다고 알림. 실제로 끊어졌음"
"........?! 수신완료"
중대장도 적잖이 놀랐던 모양입니다.

그 이후로 중대망을 감청하던 대대장 귀에도 이게 들어간 모양인지 정비반장 휴대폰으로 대대정비반장 전화가 날아와서 지금 진짜로 끊어진건지 전화가 오고 난리가 났었고 저는 뜨거운 햇빛아래에서 온갖 삽질과 망치질로 청춘의 고통을 실감했다는 그런 이야기.

ps. 전차 궤도가 실제로 끊어진건 실제 3호차 전차장이였던 중사(대대내 중사중 최고령최고짬)도 이런경우는 처음 봤다고 하덥니다.
ps2. 왜 궤도가 실제로 끊어진줄을 중대장도 대대도 몰랐는고 하니 보고가 올라갈때 3소대장은 분명 궤도가 끊어진것까지 말을 했는데 중대장 선에서 그냥 통제관으로부터 상황이 실감나게 주어졌나보구나 하고 대대에 보고를 해버렸답니다. 그러니 중대장 대대장 모두 걍 통제관에게 받은 상황인줄 알았다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