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 이후.


총리는 오늘도 밤을 설친 모양입니다. 눈이 잔뜩 충혈되어 있습니다. 그의 모습은 이제 사람이라기보단 좀비에 가까워보입니다.


라트비아 사태 직후 영국의 구르카 여단 증파와 북해지역 해군 증원은 미국에게서 '믿음직한 동맹'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약화된 NATO와 서방세계의 불황속에 러시아와 중국은 더욱 더 강경한 외교 노선을 추구하는 모습입니다.


스코틀랜드와는 뱅가드급을 인수하고 특수전 부대의 개인 선호에 따른 분할을 합의한 대신, 하일랜더 연대의 인계와 유전 지분율을 잉글랜드측 40, 스코틀랜드측 60으로 합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독립이 성사되더라도 스코틀랜드는 '형식적으로나마' 동군연합 아래 남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 측과 공동시장을 동의하였음에도 EU가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 공동시장이 붕괴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 공화국 합류 국민투표가 합의되었습니다. 국민투표의 시기는 스코틀랜드 국민투표 1주 뒤 진행되기로 합의되었습니다. 아일랜드 공화국은 일단은 북아일랜드민들의 의지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입니다만, '합리적인' 투표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낸 런던 소요가 마침내 종결되었습니다. 런던 소요 과정에서 최소 29명의 민간인과 경찰이 중상을 입었고, 수천의 경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런던은 유럽으로 가는 금융의 중심지 역할에서 밀려날 것이 거의 확실해보입니다. 영국 GDP의 7%를 점하던 금융산업은 런던의 대체지로 떠오르는 프랑크푸르트와 파리에 밀려 축소될 것이 확실시 됩니다. 런던 각지의 대학교에서는 앞으로 학생 시위가 빈발할 것이 거의 확실해보입니다.


영국 경제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재무부 장관이 경고하는대로, 향후 20년간 영국은 성장은 커녕 재건에 힘써야 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금융산업은 축소되었고, 부동산은 침체되었으며, 물가는 상승세에 있고, 국민 소득은 줄 것이 확실시 됩니다.


그 결과 영국 경제는 결국 IMF와 커먼웰스국들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는 기존 서구권과 대비되는 권위주의 국가들에게 큰 교훈을 남겼습니다. 바로 직접민주주의의 위험성입니다. 향후 그들의 국민통제와 사상검열은 더욱 엄격해지겠죠.


미국은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한 '잉글랜드' 측의 지지자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특별한 관계는 분명 그 의미가 많이 바랬습니다. 영국은 이제 미국의 평범한 동맹국 중 하나가 되겠죠. 영국의 상임이사국 지위 또한 계속해서 도전받게 될 것입니다.


커먼웰스와의 통화 스와프와 투자는 그나마 영국 경제를 총체적 붕괴에서 막아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호주, 캐나다, 인도의 영국에 대한 영향력도 커졌고, 영국의 외국자본 의존율은 더욱 더 커질 전망입니다.


하지만 커먼웰스를 일종의 경제블록화 하는 것은 실패했습니다. 커먼웰스 국가들이 EU와 별개로 무역협정을 맺은 것은 물론, 커먼웰스에 나이지리아와 같은 인권침해국이 다량 포함되어 있어, 국내적으로 심한 역풍을 불러오는 결과를 맞았기 때문입니다.


정보공조가 다시 이루어지기 이전, 영국의 치안 불안을 놓치지 않은 IS는 런던 홀본역에서 폭탄테러를 저질렀습니다. 통근 지하철에서 발생한 이 테러로 172명이 죽고, 380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중 30여명은 유학생이었습니다.


극우파의 준동과, 브렉시트의 부작용에 대한 희생양을 찾으려는 국민정서는 난민과 무슬림들을 그 대상으로 지목했고, 중장년층과 저소득, 저학력층을 중심으로 이슬라모포비아 정서와 제노포비아 정서는 날이 갈 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당장의 정치 판도는 온건한 좌파와 우파가 이끌어 나가고 있으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영국은 총체적 경제붕괴와 내전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댓가를 치뤄야 했죠.


스코틀랜드는 아마 독립이 확실시 되고, 북아일랜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연합왕국의 마지막 여왕으로 남겠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디시전 2회차 종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