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략적인 사회 상황 개괄입니다.

약 2달에 걸친 기간동안 벌어진 구 조선인민군과 대한민국 국군의 정면충돌에서 아군은 승리했으나 그것은 쉽고 값싼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더럽고, 힘들고, 질척거리는 승리였습니다.

전쟁 발발 초기부터 대규모로 행해진 조선인민군의 화학전과 대규모 포병공세, 그리고 이어진 제파 공격에 아군은 압도적 화력과 우월한 병기의 질, 훈련도 등으로 극복을 시도하였으나 선형 배치와 짧은 종심 등으로 인해 상당한 희생이 불가피했습니다.

그 결과 약 2개월간의 전쟁에서 - 대부분은 전쟁 초기에 발생하였지만, 약 6만명의 전사자, 4만명의 영구적 장애를 입은 부상자, 그리고 이들을 포함하여 법적으로 인정된 11만의 상이군인이 발생했습니다. 한미연합군 공동으로 펼쳐진 함흥 상륙작전에서 발생한 핵자폭이라는 대참사는 미해병대 1개 원정단 전투병의 절반 이상, 해병대 1사단 전투병 2/3 이상의 전사, 혹은 영구적 상해를 입은 중상자의 발생이라는 결과로 귀결되었습니다.

조선인민군은 약 10:1의 교환비로 격퇴당하며 거의 70만명 수준의 전사자가 발생하였으며, 구 북한 지역은 현재 공기업과 대기업, 인증을 받은 중견기업, 정부부처, 군, 그리고 일부 인가 받은 해외 자본의 연계로 재건중에 있습니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남한내의 높은 세율과 같은 사회적 비용은 통일 이후 가뜩이나 뒤숭숭한 분위기를 더욱 부채질 하고 있습니다.

민간인 피해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개전과 함께 새벽에 처음 벌어진 무차별적 화학전 공세와 포병의 화력 투사에 경기 북부, 심지어 서울 일부와 인천 일부 지역까지 피해를 봤고, 이는 약 11만명의 민간인 사망자, 22만명의 부상자, 30만명의 실향민을 발생시켰습니다.

구 북한 지역 또한 조선인민군이 민간인을 방패로 쓰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등의 행태를 보임에 따라 약 100만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구 북한 지역 주민들은 한미연합군 병력에게 일단은 협조하고는 있으나 계속해서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