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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7


날이 밝으며 대통령 확보와 필수 사단 확보에 실패한 쿠데타군은 상황을 인지하고 항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쿠데타에 가담한 가장 고위급 장교들은 대다수가 모든 것이 자신들의 책임임을 주장하는 유서와 함께 권총자살했습니다.


평양에서도 날이 밝으며 쿠데타에 적극 가담했던 1해병사단과 9공수 일부, 9보병사단 일부 등이 군정측에 항복하며 평양 측의 저항도 일단락 되었습니다. 특히 1해병사단 측은 사단장이 '함흥에서 스러져간 부하들을 잘 부탁한다.'는 유서와 함께 권총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쿠데타에 가담했던 수뇌급 인사 중 생존한 인사에 따르면 쿠데타는 혼란한 정국을 속에 국가가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와중, 참전용사들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 현실에 개탄하여 젊은 장교들이 구국을 위해 천운처럼 찾아온 수도권 주력 사단들의 서울 시내 배치라는 기회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결단이었다고 항변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중은 이번에도 민중의 힘을 통해 위정자들의 정치적 변화를 이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참전 용사에 대한 예우도 확실히 더 나아지겠지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치뤄진 사회적 비용과, 앞으로 펼쳐진 더욱 더 불투명한 경제 전망과 증가된 지출을 생각하면 그것이 반드시 합리적인 결정이었을지는 역사가 말해줄 것입니다. 부채는 늘어나고 있고, 북한 지역에 들어갈 지출은 계산조차 되지 않으며, 쿠데타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 매력도는 더욱 더 떨어졌습니다.


중국은 한국의 혼란상에 내심 즐거워하는 눈치며 미국은 2차한국전쟁으로 발생한 대규모 사상자에 군사적 모험을 매우 꺼리는 태도입니다.


국민들은 이번 사태가 벌어지게 된 단초를 제공한 정부의 태도에 매우 실망했습니다. 염세적 정서, 특히 청년들 사이에서의 허무주의 정서가 만연하며, 고급 인력의 두뇌 유출은 한층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시위는 역설적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단결을 불러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통일 한국의 앞날에 펼쳐진 수많은 과업들을 생각하면 이 단결이 지속될지는 의문입니다.


숙군은 예정되어 있고, 경찰 세력 또한 믿음직하진 않습니다. 북한 지역의 통합은 어려운 과업이 될 것이고, 사회 갈등은 지속될 것이고, 북한 지역이 제대로된 생산성을 낼 긴 시간까지 한국은 구북한지역 난민 2천만과 대량의 상이군인, 전사자 유가족, 실향민을 부양하며 버텨야 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버텨낼 수 있다면, 통일한국의 앞날은 마냥 어둡지만은 않겠지요. 물론, 대기업의 자본과 국가 자본, 해외 자본의 대거 유치로 견인될 북한 지역의 경제 성장의 산물이 과연 통일한국 민중 모두에게 골고루 배분될지는 의문입니다.





- 일단은 승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