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외교적 술수로 집어삼키고도 야욕을 버리지 못한 히틀러는 1939년 9월 1일 새벽, 폴란드에 대한 정면 침공을 단행합니다. (이때 침공의 명분은 '구 독일 2제국 당시의 영토 회복'이라는 명목이었지만, 이 침공은 외교적 모험이라는 성격이 짙었습니다. 당시 폴란드는 프랑스-영국과 더불어 안전보장 협약을 맺고 있어서 이런 폴란드를 친다는 것은 독일로선 대단한 모험이었습니다.) 이때 대다수의 독일 선발부대는 판저(Panzer) 1호, 2호로 기갑부대化 되어 있었고, 공중에서는 슈투카와 같은 급강하 폭격기가 적기의 위험이 거의 없다시피한 하늘을 누비면서 지상목표에 대한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이렇게 진군해가는 독일 기갑부대 앞에 폴란드 군은 최대한 시간을 벌면서 프랑스와 영국의 지원군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폴란드는 의외로 독일군을 향해 역습을 벌이는 대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이야기는 그 와중에 있었던 이야기 한토막입니다. --------------------------------------------------------- 진군해가던 독일 기갑부대 앞에 폴란드의 반격부대가 등장했습니다. 독일군은 긴장을 했으나, 그 긴장은 곧 실소로 변해버렸습니다. 기갑부대를 공격하기 위해 나타난 병력은 다름아닌 기병대였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폴란드 기병대복인 청녹색 군복에 갈색 장화를 착용한채로 기병대는 독일의 기갑부대에 전속력으로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과거, 프랑스의 퀴러쉬어 기병대와 러시아의 코사크 기병대와 견줄 만큼 강력한 폴란드 기병대는 독일 기갑부대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완전히 깨집니다. 전차부대의 주포와 기관총, 그리고 캐터필러에 깔리면서 폴란드의 기병대는 완전히 괴멸당하게 됩니다. ------------------------------------------------------------- 이런 모습을 촬영한 독일 종군기자에 의해 [전차가 뭔지도 모르는 바보같은 폴란드군]이라는 제목으로 신문과 신문을 통해 멀리멀리 퍼져나가게 됩니다. . . . 그러나- 실제로 폴란드 기병대가 전차라는 존재가 뭔지도 모르고 덤벼들었을만큼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폴란드 국방군도 당시에 서서히 기갑화, 현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 있었고, 장비한 숫자는 적었지만, 위력은 독일 기갑부대와 비교해 크게 밀리지는 않았습니다. 죽을것을 알면서도 감행한 그들의 초후의 돌격은, 숨이 끊어져가는 조국에 대한 충성이었고 폴란드 민족의 울분을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고, 근대 시절에 오스트리아-프로이센-러시아 3개국에 의해 강제 병합되기도 했었던 폴란드는 독립을 쟁취한지 20년만에 다시 타민족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그뒤를 이어 소련의 적색이 국토를 물들이게 됩니다. (그런 비극은 바웬사가 영도하는 폴란드 자유노조의 등장에 가서야 끝나게 됩니다.) 그 와중에 폴란드 민족정신을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폴란드의 민족정신을 이끌만한 학자, 의사, 교사 등이 죽임을 당했고, 카틴숲의 대학살, 바르샤바 봉기 등의 사건으로 인해 폴란드는 지독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또한 시콜스키, 미콜와이치크 등의 지도자격 인물들은 런던 망명정부를 세워야만 했습니다.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도 폴란드는 최초로 냉전으로 인한 장벽을 무너뜨린 동유럽 국가가 되었으며, 문화, 과학, 제약 등등의 분야에서 세계 수준급의 강국으로 다시금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 . .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마치 우리나라를 보는 것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다시금 다짐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힘이 있어야 누릴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코 평탄치 않은 역사의 시련을 겪은 우리나라인 만큼, 우리도 그런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공식을 잊지말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