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냥 말 타지 말고 뛰어 올라가자




이세환: 우리의 더 굿 장이 가만히 있을 수 없죠.

'내가 이들을 막겠노라' 하고 붙습니다.

그런데 크레시 전투에서 프랑스 기사단이 보병들한테 당했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이 장 왕이 언덕 위에 있는 영국군을 공격할 때, 에드워드를 공격할 때 어떻게 했느냐.

'야. 우리 보병한테 지난번에 당했잖냐. 그러니까 이번에는 우리 말 타지 말고 기사들이 그냥 뛰어 올라가라.' 이런 얘기를 해요.

갈고리에 또 끌려내리고 그러니까 그런거 하지 말고, 우리도 이때부터 걸어서 올라가서 일대일로 하자. 그렇게 가요.


윤지연: 더 안 좋은 전략이잖아요.


이세환: 그런데 애들이 가다가 지쳐요.


임용한: 그게 또 황당했던 게, 그 아이디어까지는 괜찮은데, 길이가 굉장히 길었어요. 그 생각을 안 하고 거기를 다 걸어가라고 그런거예요. 거기다 또 이제 진창이 돼 있었거든요.

1차대전때도 그 유명한 진창. 1km를 가는 데 3~5시간이 걸렸다는 그 유명한 진창을. 기사들이 풀 갑옷을 착장을 하고.

이건 말 타고 가는 것보다 더 위험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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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티에 전투의 전장은 진창이 아니었다. 단지 포도 과수원과 가시덩굴과 산울타리 등 자연 장애물이 가득하고, 잉글랜드군이 프랑스군을 기다리면서 파놓은 참호가 잔뜩 깔려 있는 뭣같은 지형이었을 뿐이다.


사실상 퇴로가 막힌 채 고립되어 있었던 잉글랜드군의 방어진지를 굳이 공격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공격하기 전에 말에서 내린 것은 상식적인 행동이었다.




참호나 목책 방벽을 공격할 때




좁은 다리를 방어하거나 공격할 때




또는 산길을 행군하다가 갑자기 서로 마주쳤을 때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중기병들은 언제나 약속이라도 한 듯 말에서 내리고 보병처럼 대열을 이루었다.








프루아사르의 연대기에 의하면 푸아티에 전투의 전장은 다리나 산길과 마찬가지로 굴곡이 심하고 장애물이 많으며 좁은 지형이었다.


기병이 진입할 수 있는 길은 가운데 뚫린 좁은 도로(중기병 4명이 나란히 지나갈 수 있는) 하나 밖에 없고, 그나마도 양옆에 잉글랜드 궁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운 좋게 양 방향에서 쏟아지는 화살비를 뚫고 길을 돌파하더라도 그 끝에는 말에서 내린 잉글랜드 중장병들과 이들을 옹호하는 궁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찰병들로부터 전장의 지형과 잉글랜드군의 배치를 자세히 보고받은 장 왕과 프랑스군 지휘관들은, 기마술이 뛰어나고 좋은 말을 탄 정예 중장병 300명만 말을 타고 나머지는 전부 말에서 내린 채 박차를 벗고, 창을 든 자들은 창대를 1.5m로 짧게 자르고, 두 발로 걸어서 진격할 것을 지시한다.


'크레시 전투에서 잉글랜드 기사들이 말에서 내린 채 싸워서 우리를 이겼으니까 우리도 한 번 그렇게 해보자' 이런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라.






6. 무기 지급




임세환: 장궁병에 대한 대우가 대단히 개선돼요.

유목민족을 제외하고 나선 궁기병이 없잖아요.

그런데 이 요먼들은 말을 타고 다니는 요먼들이 몇몇 있었어요.

그 정도로 돈을 많이 받았고.


임세환: 배틀훅은 말 그대로 기병을 끌어내리기 위한 갈고리입니다. 사실 할베르트를 쓰기 위해서는 고도의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에, 숙련도가 낮은 병사들에게는 배틀훅이 지급되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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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지만, 이 시대 병사의 무장은 자비로 구해야 하는 것이었다. 병사가 가진 무기의 종류나 품질은 숙련도에 따라 지급되는게 아니라 본인 집안의 재력에 의해 결정된다.


이 프로그램에서 전근대 무기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대체로 이치카와 사다하루 저, <판타지 라이브러리 무기와 방어구: 서양편>의 내용을 그대로 읊고 있다. 할베르트, 배틀훅이라는 근본없는 일본 판타지식 명칭은 둘째치더라도, 할버드를 다루는데 고도의 훈련이 필요했기에 숙련도가 낮은 병사들은 단순한 형태의 갈고리나 빌(Bill)을 사용했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다.


원서 제목이 '판타지'라이브러리라서 저렙은 저렙 무기를 들어야 하고 레벨을 올려야 더 강하고 멋있는 장비가 해금되는 RPG 감성으로 서술한 것 같다.





프랑스나 독일의 많은 군인들이 할버드 비슷한 무기인 폴액스를 어린애, 여자, 농부 수준으로 다룬다고 평가한 15세기 기록.





할버드와 빌





roncha는 빌을 의미한다. 당대에도 할버드와 빌을 유사한 형태와 사용법을 가진 무기로 봤다.


할버드건 빌이건 폴액스건 주된 공격법은 창날로 찌르는 것이었고, 갈고리로 걸어당기거나 망치로 때리거나 도끼날로 베는 것은 보조적인 용도였다.







당시(14세기 중후반) 인구와 국력에서 잉글랜드의 1/5에 못 미치는 전력을 가졌던 스코틀랜드에서도 중기병, 경기병, 승마보병, 승마궁수로 구성된 기동부대 2~4,000을 모집해서 주기적으로 잉글랜드 국경을 약탈할 수 있었다.

경무장병이 탄 말은 대부분 조랑말이었겠지만.


말을 탄 장궁병이 몇몇 있는 정도가 아니라 잉글랜드 전체에 승마궁수만 1~2만은 있었을 것이다.






7. 잉글랜드 농민 vs 프랑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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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티에 전투의 잉글랜드군 전력은 중장병 2,000 장궁병 4,000 경무장병 1,500





미늘 화살촉이 달린 무거운 화살로 말을 쏴 죽이는 장궁병과 낙마한 기사를 덮쳐서 죽이거나 포획하는 하마중장병.

그리고 이들의 협동 공격에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프랑스군 중기병들




중기병도 장궁병과 마찬가지로 잉글랜드군의 중요 전력이었다.


잉글랜드군의 전술이 경무장 궁수부대의 역량에 더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 있을 뿐 프랑스군이건 잉글랜드군이건 소규모 또는 대규모 군사작전에 투입되는 중장병과 경무장병의 비율은 대략 1:2~4 정도로 비슷했다.


직업군인이라고 모두 평민인 것은 아니고. 프랑스 중기병도 다 기사는 아니었다. 14세기 프랑스의 중장병 집단의 90%는 기사신분을 유지할 인맥이나 재력은 없지만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계층이었던(그러므로 중장병의 조건인 전신갑옷과 2-3필의 군마와 1-2명 이상의 보조병을 유지할 수 있었던) 종자Ecuyer로 구성되었고 잉글랜드의 중장병들도 비슷한 사회 유력자들이었다.






8. 기사들의 형식적인 결투와 목숨을 건 실전의 차이



이세환: 결투에서 단 하나의 룰이 있어요. 철퇴 안 쓰기. 기사들이 결투할때는 칼만 쓰게 돼 있어요.

근데 그때 플레이트 아머는 칼이 잘 안 먹혀요.

그렇기 때문에 진짜 전투가 있을 때 기사들이 뭘 갖고 다녔나면 배틀액스라고 도끼나 아니면 철퇴.

왜냐하면 이걸로 하면 찌그러지거든.


허준: 그러면 갑옷이 찌그러지면서 흉부를 압박하거나 두개골을 압박해서.


이세환: 그렇게 해서 복합골절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기사들끼리 결투를 할 때는 절대 철퇴를 안 써요. 그게 불문율이었어요.


허준: 서로 안 죽이겠다. 그러니까 안 죽이겠다가 아니라 나 살겠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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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는 마상창에 찔려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된 갑옷인데 철퇴로 몇 번 친다고 찌그러질리가 있나.





실제로 도끼나 철퇴를 들고 어떻게 싸웠는지 추측하기에는 너무 단편적인 내용이지만,

손가락과 겨드랑이가 검의 찌르기에 취약한 것처럼 어깨, 손등, 팔꿈치 갑옷은 워해머의 타격에 신경써서 대비해야 하는 부위라고 조언하는 기록이나

도끼로 머리를 강하게 맞아서 넘어질 뻔했다가 일어서서 반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14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토너먼트 시합 규칙:

마상이든 도보든 창으로 3번, 검으로 3번, 전투도끼로 3번, 단검으로 3번씩 겨루기.

단단하고 날카로운 진짜 무기를 사용하는 대신 흉갑과 투구만 공격 가능





















칼은 창, 도끼, 단검과 함께 14세기의 기사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한 전쟁무기였다.










후대의 기사나 중기병들도 마찬가지






인용, 참고문헌:

프루아사르의 연대기(존스 역본/버너스 역본/축약본)

제프리 르 베이커의 연대기(프리스트 역본)

데즈먼드 수어드, 백년전쟁 1337~1453

Jonathan Sumption. The Hundred Years War: Volume II, Trial by Fire

유발 하라리, 대담한 작전

홍용진, 백년전쟁 초기 프랑스 시가에 나타난 정치적 감정들

성백용, 백년전쟁과 프랑스 귀족사회의 변화

Per Magnus Haaland 역, Opus Amplissimum de Arte Athletica. 뮌헨 필사본. 1548.

Exercitiorum Atque Artis Militaris Collectanea. 1509 (Prendergast & Sperber 역본/ 포겡 역본)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II_of_Navar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