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동과 중동 지역에서 발달한 동방세계 갑옷의 역사, 8세기 - 15세기 ]
<8세기부터 12세기까지 이집트와 시칠리아 등지의 갑옷>
파티마 왕조(10세기 - 12세기) 동안 이집트 전사의 그림은 희귀한 편이나, 현존 유물들은 꽤 자세하여 연구에 도움을 준다. 그림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갑옷 종류는 사슬갑옷(디르dir 또는 자르디야zardiyya), 비늘갑옷과 유사하게 끄트머리가 둥근 철편들로 만들어진 러멜러 죠우샨, 그리고 비늘로 안감을 덧댄 콰자칸드 갑옷 등이 보인다. 시리아의 통상적인 짧은 사슬 코트와는 다르게 기다랗게 늘어진 사슬 셔츠는 긴팔 소매가 달려 있었고, 내갑의로 주로 사용되었다. 무릎 길이의 러멜러 갑옷은 앞쪽에 승마를 위해 트임이 있었다. 비늘갑옷과 유사하게 보이는 갑옷도 있었는데, 이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폰초형이었다. 이집트의 갑옷은 흔히 민소매로 묘사되지만, 아랍인들이 묘사한 12세기의 시칠리아 병사들은 팔꿈치까지 가리는 사슬갑옷을 착용한 것으로 묘사된다.
12세기 이집트 투구들은 구형 베이다(bayda) 투구가 대다수로, 두개의 철판을 구부려 무쇠 테로 묶어 만들고, 테에는 동그라미나 마름모꼴의 판 장식을 이어붙였으며 펠트 덮개를 달아 태양의 열기로부터 보호를 꾀하였다. 12세기 시칠리아의 아랍인들은 서유럽 양식을 본따 '노르만' 투구들을 착용했는데, 이는 전형적인 프랑크 기사의 투구인 코가리개가 달린 원뿔형 투구였다. 이 지방에서는 투구에 드리움이나 목가리개를 달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집트와 시칠리아에서는 원형 방패와 카이트 방패가 사용되었다. 원형 방패는 각종 크기로 만들어졌으며, 재질은 항상 그래왔듯이 가죽, 나무, 금속제가 섞여 사용되었다. 시칠리아에서 사용된 원형 방패들은 종종 가장자리에 각종 장식을 달았다. 12세기와 13세기 사이에는 카이트 방패나 원방패(소형은 다라콰daraqa, 대형은 투르스turs)에 약간의 곡률을 주어 적 무기를 잘 튕겨내게 디자인했는데, 이는 초기 중세시대 동로마 제국이나 서유럽 양식을 모방한 것이었다. 이집트와 시칠리아는 구 동로마 제국령이었으며, 십자군이나 이탈리아 정복 등으로 서유럽 문명과 빈도 높게 접하였으므로 그들의 문물을 상당히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예시로 카이트 방패인데, 곧은 수직 손잡이가 달렸고 나무 위에 가죽을 덮은 후 사선 무늬를 칠해 장식한 이 방패는 동로마가 애용하는 방패들과 외관상 차이점이 없었다.
<8세기부터 13세기까지 이란 등지의 갑옷>
이란의 13세기 전 갑옷 발전사는 셀주크 전 시기(8세기 - 11세기)와 셀주크 후 시기(11세기 - 13세기)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우마야드 왕조의 주즈쟌 주화는 이란 갑옷의 초기 묘사를 보여준다. 이 갑옷은 러멜러 죠우샨으로, 사산조 시대의 전통의 계승물이다. 니샤푸르 도기에 그려진 갑옷들은 10세기 이란 동부 갑옷의 예시들을 보여 준다. 몸통과 소매 부분은 중앙아시아 갑옷의 특성을 보여 준다. 몸에 꼭 맞고 옆트임이 난 흉갑, 그를 보강하는 무릎과 허벅지 가리개, 등에 달린 추가적인 직사각형 모양 덮개 등인데, 이는 판자켄트 그림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7-8세기 소그드 갑옷의 특징과 일치한다. 이란의 사슬갑옷은 제레(zereh)라고 불렸는데, 이건 무릎 길이의 민소매 사슬 셔츠였다. 앞과 뒤가 무릎부터 허리까지 깊게 트인 제레는 기사가 말을 탈때 거치적거리지 않아 애용되었다. 간혹 원형 철판이나 누비솜 내의가 추가되어 방어력을 증강시키기도 하였다. 제레 말고 또다른 선택지는 앞서 말한 러멜러 죠우샨 갑옷이었다. 따로 분리되어 사용되기도 한 갑주 소매는 흉갑에 목 부분의 끈으로 연결되었고, 천이나 사슬 위에 비늘 혹은 원판을 꿰매 제작되었다. 누비솜 갑옷은 따로 입기도 했지만 보통은 내갑의로 표준적으로 사용되었다.
10세기의 이란 전사들은 비늘이나 통짜 쇠로 주조된 정강이받이를 착용했는데, 이에는 금속이나 가죽 따위로 갖은 장식을 했다. 이란 북부에서는 어깨와 가슴 윗부분까지 가리는 넓은 목가리개가 사용되었으며, 천에 철편을 연결해 만든 갑주 장갑 또한 사용되었다.
8세기부터 9세기 사이의 이란 투구는 초창기에는 사산조의 그것을 본따 높고 긴 원뿔형이었다가, 점차 납작하고 끄트머리에만 가시가 달린 반구형으로 변해 갔다. 10세기 페르시아 문헌은 이 투구를 쿠드(khud)라고 부르지만, 정확히 어느 양식을 콕 찝어 말하는지는 판단이 불가능하다. 방패(세파르, separ)는 작고 둥글었으며, 금속 테와 돌기가 있었다. 또한 이 작은 기병방패들은 금속 판들로 장식되었다.
↑ 사산조 말엽 기사. 이란 초기는 이 모습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몽골 도래 이전의 이란 갑옷을 묘사한 출처들은 셀주크 왕조의 몰락기, 즉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초반 정도의 기간이 대다수이다. 이란의 주요 도시 레이나 카샨 등에서 출토된 도기와 조각품들에는 전사들이 묘사되어 있으며, 13세기 초에 서사시 '바르퀘 바-골샤흐'를 모티브로 조각가 압드 알-무민 이븐 무함마드가 제작한 모형들이 아제르바이잔 도시 코이에서 발견되며 갑옷 연구에 크게 도움 되었다. 여기에서는 앞서 말한 제레 사슬셔츠, 누비솜 '카프탄(khaftan)' 갑옷, 천에 작은 직사각형 철편을 꿰매 만든 갑옷(방패의 보호를 받는 왼소매를 오른편보다 짧게 재단한 게 특이점이다), 누비솜과 철판을 혼성하여 엮어서 만든 죠우샨 갑옷 등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카프탄 갑옷은 누비솜 셔츠였는데, 팔꿈치까지 오는 소매와 여기저기 난 통기 구멍이 특징적이다. 또다른 특이한 양식은 누비솜과 철판을 혼성한 것으로, 이는 순수하게 이란에서 창작된 양식의 반팔 소매가 있는 짧은 코트였다. 하지만 여기에 연결된 무릎 길이의 가리개 한쌍은 중앙아시아의 영향으로 보인다. 코트의 누비솜은 커다란 금속 원판과 러멜러 철편들로 강화되었다.
12세기 중반부터 13세기 중반까지의 이란 투구들은 반구 형태를 유지한다. 몇몇 종류는 끝부분의 가시와 술이 안 달린 대신 원판이나 원기둥, 원뿔 장식이 달려 있기도 하다. 이는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투르크 전사들이 애용한 치차크(chichak) 투구의 전신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란 투구들은 흔히 좁은 코가리개를 가졌고, 가죽이나 사슬 드리움을 따로 연결해 사용하였다. 투구에 드리움을 고정적으로 달지 않은 이유는 투구 아래에 사슬 두건을 따로 걸쳤기 때문이다. 이 두건은 종종 얼굴까지 덮었으며, 어깨까지 늘어트려져 방어를 보강하였다. 이러한 사슬 두건은 12세기 말엽 십자군 기사들의 영향, 또는 얼굴까지 사슬로 가리고 다니던 후기 사산조의 중장기병들의 전통 계승으로 볼 수 있겠다.
<10세기부터 13세기까지 소아시아와 코카서스 등지의 갑옷>
아나톨리아 반도, 룸 술탄국의 갑옷들을 묘사한 이슬람 회화는 적다. 사실 적은 정도가 아니라, 12세기 말 - 13세기 초의 전사들을 묘사한 벽화 딱 한 점만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허리 길이의 러멜러/비늘 갑옷이 묘사되었다. 투구는 둥글었으며 뾰족한 끄트머리가 있었고, 기다란 금속 판들을 천에 꿰매 만든 목가리개가 있었다. 아마 이 목가리개가 유일한 지역적 특색일 것이다. 조그마한 원형 방패는 단순한 손잡이가 있었다. 이처럼, 이들의 갑옷은 이란 북부의 갑옷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로는 사료가 부족하다 느낄 수 있는데, 따라서 룸 술탄국에 대해 알려면 12세기 동로마 제국이 제국의 적들을 기록해 둔 문헌들을 펼쳐 보아야 한다. 동로마 역사가들은 적에 대하여 대단히 자세하게 기록해 두었는데, 이를 통해 룸 술탄국이 셀주크 투르크와 거의 동일한 무구를 사용했으며, 동로마나 유럽에서도 쓰인 양식의 케틀 햇 투구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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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렇게 장황하게 잡설을 나열했어도, 본질적으로 13세기 전까지의 이슬람 세계 갑옷은 다 비슷했습니다. 사산조를 베이스로 동로마 양식을 가미, 거기에다가 간혹 가다가 십자군의 서유럽 요소를 추가. 사실 동로마도 얘네 갑옷 중에 좋아 보이는 거 베꼈고, 십자군도 중동식 복장을 일부 도입한 데다 중동 용병들을 보조병으로 사용하며 중동 지역의 군대들은 다 그놈이 그놈 같아 보이는 잡탕이 되었습니다. 특히나 글에 많이 언급한 러멜러 갑옷은 각 지방마다 특색이 있달손 해도, 일단 너무 비싸고 만들기도 지랄맞아서 주력 갑옷이 아니었거든요. 나름 귀족층인 중동 기사들도 어디까지나 주력 갑옷은 사슬갑옷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슬갑옷 입고, 동로마식으로 무장하고, 곧은 검을 쓰면서 중기병의 거창돌격을 (물론 서유럽보단 한수 딸렸어도) 주 전술로 삼곤 했던 중동 군대들은 대격변을 맞이하게 됩니다. 동쪽에서 이상한 야만인 놈들이 왔거든요.
<다음화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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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추!
글 재밌네
한번 다 읽어봐야겠다
사슬갑은 진짜 널리 쓰였네
정보글 개추
아랍군대도 석궁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