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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렸던 류성룡 갑주.

류성룡 투구는 철로 만들었고 갑옷은 옻칠한 돼지 가죽으로 만들었음. 여기에 종이와 면포를 안감으로 사용함. 보통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 땐 가죽 여러겹을 겹쳐서 갑찰을 만들기 마련인데 류성룡의 갑옷은 딱 한겹의 가죽만 이용한지라 그만큼 방어력은 일반적인 피갑보다 더 떨어졌을거임. (사족으로 임란 시기 갑옷 유물 중 정공청 장군의 두정갑은 내부에 갑찰이 없었고, 동래성 해자에서 발견된 철찰갑은 순철로 만들었음이 확인됨. 임란시기 갑옷 유물 세점이 모두 방어력에 다소 문제가 있었다는 기묘한 공통점....) 물론 류성룡이 신분 상 직접 칼 들고 앞장서서 싸우진 않았으니 갑옷의 방어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름.








아래는 본 그림의 오류들임.

본 그림은 -서애 류성룡 갑옷의 형태복원을 위한 기초조사- 에서 제시한 세번째 복원안을 따라 그렸음. 차이점은 해당 복원안에 따르면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갑옷의 하단부가 비대칭 형태여야 하는데 미관상의 이유로 걍 대칭을 이루게 그림.

또 등채가 동개에 꽂혀있지 않고 허리춤에 꽂혀있는데 처음 그림을 그릴 땐 류성룡이 실제로 사용했던 갑옷과 투구 그리고 환도로만 그림을 구성하려 했음. 그런데 막상 완성하고보니 갑옷 자체도 수수한데 칼만 덜렁 차고 있으니 그림이 너무 볼품 없어서 장식적 요소로 등채와 복주머니를 추가로 그려넣음. 이때 동개가 없으니 등채는 걍 허리춤에 꽂아둔걸로 그렸는데 이번에도 막상 완성하고 보니 허전해서 그제서야 활과 화살을 그려넣었음. 이런 까닭에 활과 같이 동개에 꽂혀있어야 할 등채가 허리춤에 꽂히게 됨 ㅇㅇ. 그리고 활도 실전용 각궁은 옻칠 때문에 검은색을 띄어야하는데 검은 갑옷에 검은 활을 그리면 안보일거 같아서 일부러 습사용 각궁을 그렸음.

마지막으로 그림 그릴 때 당시 조선인 평균 신장 생각해서 류성룡의 키를 작게 그렸는데 나중에보니까 류성룡이 신던 신발 유물이 길이만 35cm더라고... 겨울철에 버선 여러겹 신고 신발 신었던거라 가정해도 신발 크기로 보건데 류성룡은 엄청난 장신이었을 확률이 높음. 고로 그림 속 유성룡의 체격도 어찌보면 고증오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