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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서울대학교박물관 발굴조사팀이 경기도 연천의 고구려 유적(무등리 2보루)에서 발견한 갑옷(사진 맨 위)과 출토 당시 그려진 복원도(두번째 사진). 현재까지 발견된 고구려 갑옷 중 복원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온전히 출토된 유일한 예임. 

 

 논문 -연천 무등리 2보루 출토 찰갑으로 본 6세기대 찰갑 양상- (저자  이현주)에서 해당 갑옷을 자세히 다루길래 본 갑옷의 구조에 대한 설명만 간단히 요약해서 여기 적어봄.


*알아보기 쉽게 사진에 가공을 좀 해봤음.


 붉은색으로 칠해진 부분은 투구.

투구의 종류는 소찰주로 가로 5.6cm, 세로 6.7cm의 상원하방형 소찰 47매를 엮어 만듦. 투구 소찰 사이로 부정형의 소찰도 확인되는데 볼가리개로 추정됨. 5번이라 씌여진 ()모양의 철제부품은 소찰주의 복판에 해당함. 복발은 발견되지 않았음. 해당 논문에선 머리에 쓴 모자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추정하였는데 그냥 가죽으로 복발을 만들었는데 썩어서 사라진 걸지도 모름.  


 노란색으로 칠해진 부분은 어깨를 보호하는 상박갑.

출토상태로 보아 가로 3.5cm, 세로 6cm 정도의 상박찰을 둥글게 4~5단으로 엮어 복원도에서 그려진 어깨 위로 얹기만 하는 덮개형 상박이 아닌 완전한 반팔 소매의 형태였던 것으로 보임.


 초록색으로 칠해진 길쭉한 소찰들은 요찰로 갑옷의 허리에 해당함. 크기는 가로 3.6cm, 세로 12cm 정도이며 단면은 > 형으로 이 >형 요찰은 고구려 찰갑의 특징으로 규정됨. 복원도에선 요찰이 묘사되지 않았음.


 아무런 색도 칠하지 않는 소찰들은 신갑, 즉 갑옷의 몸통 부분을 구성하는 소찰들로서 크기는 가로 3.8cm, 세로 9cm 정도임. 최소 10단 이상의 길이였던 걸로 보이며 중앙에서 열리는 구조임.


 마지막으로 푸른색으로 칠해진 다양한 모양의 철판들이 남았는데, 1~3번은 복원도에선 목가리개로 그려졌으나 본 논문에선 어깨판으로 추측함. 아래 왜계 갑옷 사진을 보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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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고구려 찰갑이 왜계 갑옷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고 별도의 부속갑으로 존재하는 왜계갑옷의 어깨판과 달리 무등리 찰갑의 어깨판은 소매와 몸통을 연결하면서 전동과 후동을 어깨에 이어주기 위해 고안된 형태로 추정됨. 포항에서 출토된 4세기 찰갑에도 어깨판이 있다는 듯.


 4번 U자형 철판은 언뜻 보기엔 투구 차양처럼 생겼으나 투구와도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나왔고 투구와 결합하기 위한 절곡부가 없어서 현재로선 용도를 알 수 없음.




재매정지 찰갑이나 울산 하삼정 찰갑처럼 연천 무등리 찰갑도 언젠가 복원품이 나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