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적 흐름임
방패를 한손에 들면 필연적으로 반대쪽에 들수있는건 단병뿐임.
창을 들어도 한손으로 컨트롤할수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양손창처럼 긴 창을 쓸수도 없고 창대 중앙을 잡아야 해서 양손창처럼 창 뒤쪽을 잡고 리치를 살릴수도 없음.
한손으로 창대잡으려니 움직임도 한계가 있음.
그라서 창방은 막상 검방과 비교해서 리치가 그다지 긴것도 아니고 위력이 강하지도 않음.
그래서 창방은 고대그리스 이후로 딱히 메이저한 병종이 아니고 그나마 검방이 그나마 좀 나옴.
마케도니아 팔랑크스는 양손창 병종이고.
방패+단병 병종중 가장 메이저한 사례가 로마군단병임.
방패+단병 병종은 특성상 높은 숙련도가 요구되는데 직업병인 군단병의 높은 숙련도와 단병무장의 특징과 결합해서 지형적응력이 높고 소수만 붙여놔도 일정수준의 전투력이 보장됨.
로마군단병들의 최소전투단위도 냉병기시대에 맞지 않게 소규모인데 이건 군단병의 전투력이 보장되니 최소전투단위를 잘게 쪼개서 전술적 응용력을 가지려는 목적임.
이는 군단병의 무장을 보면 알수있는데 칼과 방패 투창등 각종 무기를 때려박아서 다재다능한 병종을 만들려는 의도로 해석됨.
로마의 안보상황상 갈리아와 게르만의 숲과 늪지 동방의 사막까지 각종 험지에서 싸워야 해서 특정 지역에서만 강한 병종이나 전투단위가 커서 느리고 둔한 전술은 선호되는 방식이 아니었음.
그런데 당시 군단병들은 갈리아나 게르만 야만인들의 땅에 쳐들어가서 토벌하는 비정규전 형식의 전투에서 큰 재미를 봤고 동방전선에서 정규제국의 군단들을 상대할때는 큰 재미를 못봤는데 이것 또한 무장과 전술적 특성에 기인하는 바임.
부족단위의 통제되지않는 야만인들과 정규제국의 군대는 특성이 전혀 다르고 느슨하고 최소전투단위가 작은 군단병전술은 병력의 집단운용과 전술적 움직이을 아는 정규제국 병력과의 힘싸움에서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함. 서유럽의 야만인들도 로마와의 전투경험이 쌓이고 세월이 지나자 로마의 전술을 습득하면서 더이상 통제되지않는 야만인 수준이 아니게 되는데 기존 군단병전술과 무장로는 한계에 봉착하게 됨.
로마이후 유럽에선 스페인 로델레로들이 유명한 방패+단병병과로 나타나는데 이들은 전장에서 주로 아군 장창병대의 측면을 보조하는 보조적 병과에 머물러있었음.
다른 유럽에서와는 달리 총기시대까지 스페인에서 검방병과가 살아남은 이유는 스페인의 산지에서 이 검방병과들이 쓸모가 많아서였고 레콩키스타 때 무어인들을 몰아내면서 효과를 입증해서임. 그나마도 이탈리아 원정에서 피를 보고 창+총으로 부대를 전환하면서 로델레로들은 점점 축소되다 사라졌는데 남미를 식민지화 하면서 남미의 각종 험지에서 높은 전투력을 보이기도 항
아시아에서 살펴보면 근세에서 조선전기의 팽배수들과 명나라 남병들이 대표적 방패+단병 병과로 나타남
둘의 공통적 특징은 주로 상대했던 적들이 여진오랑캐이거나 왜구해적, 그러니까 정규군이 아닌 게릴라들이라는 것임.
조선전기 팽배수들이 상대했던 여진족들은 이 당시까지 갑옷도 없이 말과 활밖에 없는 야만인들에 불과했음.
그래서 전열에 서서 적의 궁시를 막고 돌진해오는 적을 받아치는게 주 역할이었음.
여진족들은 길목이나 숲에서 매복했다가 진군하는 조선군을 습격하는 전술을 쓰기도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팸배수들이 일정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임.
명나라 남병들도 마찬가지임
이 남병들 중 등패수들이 방패를 들었는데 이들은 철저히 수비적인 역할이었음. 적이 돌진해오면 등패수는 공격을 막고 낭선이 움직임을 봉쇄하고 장창이 딜을 꽂는게 표준운용법이었음. 즉 부대의 방어담당이고 왜구 게릴라들을 상대하면서 돌발상황에 대처하려는 목적이었던 것.
여기에 강남의 산과 강등 복잡한 지형도 한몫함.
정리해보면
역사적 사례를 볼때
방패+단병의 장점은 방패로인한 방어력보장으로 다재다능하고 험지에서 일정수준의 전투력이 보장됨. 그래서 전투단위를 잘게 쪼개도 무방. 이는 게릴라를 토벌하거나 역으로 게릴라전을 할때 큰 강점임. 영국인들도 아일랜드 반군을 토벌할때 검방보병들을 소수 편성함.
단점은 전투력보장은 되지만 그 전투력 보장을 위해 높은 훈련도와 담력이 요구됨. 그에비해 썩 높은 공격력을 보이는 것도 아님. 역사적으로 검방이 공세적으로 운용된 건 레기온 뿐이고 대개 검방은 창과 조합되어 보조적으로 운용됨.
특히 대규모 전투에서.
게릴라를 상대하는 소규모 습격이나 토벌에서야 다재다능한검방이 매력적이지만 각종병과들을 모아서 조합가능한 회전에서는 이 다재다능함이 어정쩡함으로 변함.
결론적으로
국가가 발달하고 고도화되면서 국가간 전면전이 되는 흐름이 역사적 대세가 되면서 전투의 대형화가 필연적으로 따라붙음. 이런 흐름에 방패+단병이라는 병종이 적응을 못했던 것.
방패를 한손에 들면 필연적으로 반대쪽에 들수있는건 단병뿐임.
창을 들어도 한손으로 컨트롤할수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양손창처럼 긴 창을 쓸수도 없고 창대 중앙을 잡아야 해서 양손창처럼 창 뒤쪽을 잡고 리치를 살릴수도 없음.
한손으로 창대잡으려니 움직임도 한계가 있음.
그라서 창방은 막상 검방과 비교해서 리치가 그다지 긴것도 아니고 위력이 강하지도 않음.
그래서 창방은 고대그리스 이후로 딱히 메이저한 병종이 아니고 그나마 검방이 그나마 좀 나옴.
마케도니아 팔랑크스는 양손창 병종이고.
방패+단병 병종중 가장 메이저한 사례가 로마군단병임.
방패+단병 병종은 특성상 높은 숙련도가 요구되는데 직업병인 군단병의 높은 숙련도와 단병무장의 특징과 결합해서 지형적응력이 높고 소수만 붙여놔도 일정수준의 전투력이 보장됨.
로마군단병들의 최소전투단위도 냉병기시대에 맞지 않게 소규모인데 이건 군단병의 전투력이 보장되니 최소전투단위를 잘게 쪼개서 전술적 응용력을 가지려는 목적임.
이는 군단병의 무장을 보면 알수있는데 칼과 방패 투창등 각종 무기를 때려박아서 다재다능한 병종을 만들려는 의도로 해석됨.
로마의 안보상황상 갈리아와 게르만의 숲과 늪지 동방의 사막까지 각종 험지에서 싸워야 해서 특정 지역에서만 강한 병종이나 전투단위가 커서 느리고 둔한 전술은 선호되는 방식이 아니었음.
그런데 당시 군단병들은 갈리아나 게르만 야만인들의 땅에 쳐들어가서 토벌하는 비정규전 형식의 전투에서 큰 재미를 봤고 동방전선에서 정규제국의 군단들을 상대할때는 큰 재미를 못봤는데 이것 또한 무장과 전술적 특성에 기인하는 바임.
부족단위의 통제되지않는 야만인들과 정규제국의 군대는 특성이 전혀 다르고 느슨하고 최소전투단위가 작은 군단병전술은 병력의 집단운용과 전술적 움직이을 아는 정규제국 병력과의 힘싸움에서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함. 서유럽의 야만인들도 로마와의 전투경험이 쌓이고 세월이 지나자 로마의 전술을 습득하면서 더이상 통제되지않는 야만인 수준이 아니게 되는데 기존 군단병전술과 무장로는 한계에 봉착하게 됨.
로마이후 유럽에선 스페인 로델레로들이 유명한 방패+단병병과로 나타나는데 이들은 전장에서 주로 아군 장창병대의 측면을 보조하는 보조적 병과에 머물러있었음.
다른 유럽에서와는 달리 총기시대까지 스페인에서 검방병과가 살아남은 이유는 스페인의 산지에서 이 검방병과들이 쓸모가 많아서였고 레콩키스타 때 무어인들을 몰아내면서 효과를 입증해서임. 그나마도 이탈리아 원정에서 피를 보고 창+총으로 부대를 전환하면서 로델레로들은 점점 축소되다 사라졌는데 남미를 식민지화 하면서 남미의 각종 험지에서 높은 전투력을 보이기도 항
아시아에서 살펴보면 근세에서 조선전기의 팽배수들과 명나라 남병들이 대표적 방패+단병 병과로 나타남
둘의 공통적 특징은 주로 상대했던 적들이 여진오랑캐이거나 왜구해적, 그러니까 정규군이 아닌 게릴라들이라는 것임.
조선전기 팽배수들이 상대했던 여진족들은 이 당시까지 갑옷도 없이 말과 활밖에 없는 야만인들에 불과했음.
그래서 전열에 서서 적의 궁시를 막고 돌진해오는 적을 받아치는게 주 역할이었음.
여진족들은 길목이나 숲에서 매복했다가 진군하는 조선군을 습격하는 전술을 쓰기도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팸배수들이 일정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임.
명나라 남병들도 마찬가지임
이 남병들 중 등패수들이 방패를 들었는데 이들은 철저히 수비적인 역할이었음. 적이 돌진해오면 등패수는 공격을 막고 낭선이 움직임을 봉쇄하고 장창이 딜을 꽂는게 표준운용법이었음. 즉 부대의 방어담당이고 왜구 게릴라들을 상대하면서 돌발상황에 대처하려는 목적이었던 것.
여기에 강남의 산과 강등 복잡한 지형도 한몫함.
정리해보면
역사적 사례를 볼때
방패+단병의 장점은 방패로인한 방어력보장으로 다재다능하고 험지에서 일정수준의 전투력이 보장됨. 그래서 전투단위를 잘게 쪼개도 무방. 이는 게릴라를 토벌하거나 역으로 게릴라전을 할때 큰 강점임. 영국인들도 아일랜드 반군을 토벌할때 검방보병들을 소수 편성함.
단점은 전투력보장은 되지만 그 전투력 보장을 위해 높은 훈련도와 담력이 요구됨. 그에비해 썩 높은 공격력을 보이는 것도 아님. 역사적으로 검방이 공세적으로 운용된 건 레기온 뿐이고 대개 검방은 창과 조합되어 보조적으로 운용됨.
특히 대규모 전투에서.
게릴라를 상대하는 소규모 습격이나 토벌에서야 다재다능한검방이 매력적이지만 각종병과들을 모아서 조합가능한 회전에서는 이 다재다능함이 어정쩡함으로 변함.
결론적으로
국가가 발달하고 고도화되면서 국가간 전면전이 되는 흐름이 역사적 대세가 되면서 전투의 대형화가 필연적으로 따라붙음. 이런 흐름에 방패+단병이라는 병종이 적응을 못했던 것.
근데 또 보면 완전히 퇴출은 안되고, 현대전에서도 전경이라던지 대테러전이라던지 시가전에서 쓰이는 걸 보면 아이러니 함.
막상 로마 군단병들 투창 들고다니던 것도 웬만한 단창수준이 길이인 거 보면 얼핏 생각했던 거랑은 꽤 다르기도 하더라
기병때문에 퇴출된적 없음
비정규전이라고 써있지 기병이라고 안써있잖냐 ㅋㅋ
오히려 화기의 발전으로 없어졌다고 보면 모를까
기병때문이라고 어디써있냐
현대에도 방패가 쓰이는거 보면 참 질겨.. 사실 가성비 면에서 보면 방패+투구+흉갑(갬비슨이라도..) 조합이 돈 그나마 적게 쓰면서 목숨 보장 가능한거긴 한데..
중간에 논리적 비약이 존내 많아서 12톤 덤프 10대는 지나가겠다 씨ㅡ빨
갑옷이 발달해서 방패가 필요없고 타격력이 필요해서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