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츠크네히트의 의복 중 가장 유명한 건 코드피스 입고다닌 당대인들에게도 과하다고 까였던 괴악한 패션센스일 것이다. 소위 plunderhose의 유래에 대해선 많은 이설이 있지만(대표적인 설로, 그랑송 전투(1476) 이후 노획한 비단천으로 누더기옷을 만들어 입은 스위스 용병의 패션을 모방했다는 설이 있다), 이러한 옷차림은 실용적인 목적이라기보단 그냥 건달이나 야쿠자가 알로하 셔츠 즐겨입는 거처럼 패션 탓이었을 것이다.
워낙 유명해서 란츠크네히트 하면 plunderhosen이고, 이들을 묘사한 판화에도 갑옷이 아닌 평복만 입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평복 란츠크네히트 한 명이나 두셋을 그린 판화들은 대개 '전투 중'인 란츠크네히트가 아니라 그들의 일상 생활사를 묘사한다.
물론 평복 란츠크네히트가 전장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언하는 것은 확실한 거짓말이다. 화승총병뿐 아니라 장창병(speißtrager) 중에서도 갑옷을 안 입은 란츠크네히트들 다수가 전장 기록화에서 확인된다. 하지만 동시에, 란츠크네히트들이 '갑옷 착용을 꺼려했다'거나, 극단적으론 '갑옷을 입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명백한 거짓말이다.
16세기 초, 란츠크네히트의 보편적인 갑주는 투구와 흉갑이었다. 여기에 목 방어구도 흔히 포함되었는데, 여러 판화를 보면 전금속제 방어구(bevor)보다 어깨까지 드리워진 사슬 목도리(standard)가 더 유행했던 걸로 보인다. 여기에 더 돈이 많은 용병들, 주로 고참병(도펠죌트너)이나 장교들은 허벅지를 가리는 추가적인 태싯이나 팔 방어구 또한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투구는 간단한 골무모자가 유행했고, 평상복인 챙모자 아래에 이러한 철제 모자를 착용하는 경우가 잦았다.
흉갑은 대개 양산품이었고, 앞부분만 있는 종류와 앞뒤를 모두 갖춘 몸통갑옷(breast-and-back, brust und rücken) 두 종류 모두 막시밀리안 1세가 대량으로 발주한 기록이 남아있다. 가격대는 시대에 따라 다양했으나, 아주 저렴하진 않아도 용병 급여로 부담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갑옷 가격의 대표적인 예시로, 1512-1513년, 헨리 8세는 프랑스 원정에 대비해 밀라노와 피렌체에 벌당 16실링으로 7000벌의 갑주를 주문했다. 이들은 'almain' 양식, 즉 독일 양식의 보병갑주였다. 동시대였던 막시밀리안 1세의 란츠크네히트 용병들이 착용하는 갑주와 같은 종류였을 것이다. (헨리 8세는 프랑스 원정군을 편제하며 동맹인 막시밀리안 1세에게서 란츠크네히트 용병대를 고용하기도 했다.) 이 갑옷들은 'sallet, gorget, breast and back, splints'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sallet은 schaller의 번역어로, 정확히 샐릿 투구를 콕 집어 말하는 게 아닌 투구 일반의 총칭이다. 일례로, '버고닛'이라고 알려진 뺨을 가린 투구 역시 당대에 'burgundian sallet'이라고도 불렸다. 이외에 gorget은 목 방어구, breast and back은 등까지 가리는 흉갑, splints는 팔 방어구.)
16실링은 약 32크로이처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이를 당시 물가와 비교하면, 1520년대에 고기 1파운드가 1크로이처였고, 1520년대 보병의 월급은 240크로이처(4탈러) 정도였으니 말단 용병도 상당히 합리적인 금액에 '투구, 목 방어구, 몸통 갑옷, 팔 방어구'를 장만할 수 있던 셈이다.
- 1502년 덴마크-스웨덴 전쟁 중 엘브스보리 전투. 그림을 그린 파울 돌른슈타인은 덴마크측에 고용된 란츠크네히트 용병대의 일원으로 이 전투에 직접 참전했다. 좌측이 덴마크군의 독일 용병, 우측은 스웨덴 징집병들.
- 16세기 초반 란츠크네히트의 전형적인 갑옷. 일반적인 흉갑보다 좀 더 둥근(kugelförmig) 흉갑을 착용하고 있는데, 16세기 흉갑 중 일부에서 갈수록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 막시밀리안 1세가 발주한 란츠크네히트 흉갑. 오스프리 고증화.
- 한스 브루크마이어의 판화. 좌측은 스위스 용병이고 우측이 란츠크네히트다. 골무모자를 쓰고 짧은 태싯이 달린 흉갑만을 입은 장창병을 볼 수 있다.
- 한스 브루크마이어 외, 라벤나 전투. 엄밀히 말하면 <백색왕(Weißkunig)>이란 소설의 한 장면인데 백색왕 자체가 대놓고 막시밀리안 1세의 (미화된) 일대기다. 등장하는 전투들도 다 실제 벌어진 전투들.
- <백색왕>의 다른 전쟁장면들. <백색왕>은 희한하게도 란츠크네히트 용병들이 없거나 소수만 있던 전장(ex.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전쟁)에도 '란츠크네히트 끼워넣기'를 종종 하는데, 고증적으론 틀렸지만 란츠크네히트 복식을 관찰하기엔 좋다.
- 1520년경의 인스브루크산 '란츠크네히트' 갑옷. 평복인 plunderhose를 갑옷 위에도 정교한 세공으로 모사했다. 말단병이 살 수 있었을 만한 갑옷은 절대 아니고, 란츠크네히트 보병대를 지휘하는 귀족 장교가 부하들과 전우의식을 쌓기 위해 마련한 갑주였을 것이다.
1520년대 이후, 란츠크네히트 장창병들의 갑주는 증가 경향을 보인다. 태싯은 더 길어져 거의 무릎까지 닿는 경우가 많았고, 끈과 버클이 아닌 내부 리벳들로 유연하게 휘었다. 작은 골무모자 역시 계속 사용되었지만 새롭게 개발된 '부르고뉴식 투구(bourguignotte)', 즉 버고닛 역시 널리 사용되었다. 고전 그리스, 로마 투구들처럼 뺨 가리개가 달린 버고닛은 시야 확보와 방어성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었다.
흉갑 역시 기존의 민무늬 흉갑에서, 막시밀리안 아머처럼 플루팅을 더한 흉갑을 입은 란츠크네히트들의 판화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흉갑은 8에서 10탈러 정도 했을 것이며, 고참병이나 장교들이 주로 착용했을 것이다.
- '막시밀리안' 요철 흉갑 차림의 란츠크네히트들. 많은 수가 이렇게 무장하진 않았겠지만, 여기서 더 갑옷을 껴입는 것도 순전히 개인의 선택 문제였지 딱히 중무장을 금지하는 규칙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한편, 음경을 강조하는 코드피스(샅보대) 역시 이 시대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시적으로 유행했는데, 갈수록 더블릿 아랫단이 짧아지며 하의에 가리개를 따로 부착했다가, 그 가리개 자체를 주객전도식으로 강조하는 게 유행한 민간 의복을 강철로 따라한 것이다.
1530-40년대, 란츠크네히트들은 더욱 중무장하기 시작했다. 기록화 중 버고닛의 착용비율이 증가하고, 버고닛에도 양뿔이나 투구뿔, 깃털장식 등 다양한 치장이 가미되었다. 태싯 또한 무릎까지 가리는 경우가 많았고, 사슬 망토도 여전히 사용되었지만 판금 목 방어구의 착용 또한 증가했다.
- 루카스 크라나흐, 세례자 요한의 설교(1549). 군인, 귀족, 시민들이 뒤섞여 있다. 배경의 군인들은 창기병, 앞줄의 군인들은 란츠크네히트들이다.
- '중장 란츠크네히트' 갑주. 'Almain rivet'은 준수한 성능의 갑옷을 보급형으로 시장에 공급했고, 전신은 아니라도 팔과 허벅지를 가리는 갑옷 정도는 고참병이면 많이 챙겨입었다.
한편, 시대적으로는 마상사격이 가능한 휠락 권총의 발명 후 머리부터 발끝까지(cap-a-pie) 무장한 중장병들에서 투구, 흉갑과 상완, 상박갑 정도만 입은 '경기병'의 시대로 점차 넘어오며 귀족들도 전신 판금갑 이외의 복장으로 전장에 나서는 경우가 늘어났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뮐베르크 전투(1547)에 경기병 갑주를 입고 참전한 카를 5세를 들 수 있다.
특이한 점으로는 흉갑이 마치 이전 시대의 상자형 흉갑(kastenbrust)처럼 툭 튀어나온 형태가 유행하기 시작했단 것이다. 동시대 경기병 갑주(Trapharnisch)에도 관찰되는데, 1540년대 중반에 시작해서 1560-1580년대 독일 보병 갑주와 경기병(pferdschütz, speisser, reiter) 갑주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요소이다. 흉갑의 가운데 돌출선이 한 점에서 유독 도드라진 것으로, 독일 외의 다른 지역 흉갑들은 이걸 건너뛰고 소위 'peascod(공작)' 또는 'gänsebauch(거위배)' 유행으로 바로 넘어갔다.
- tapulbrust 흉갑. 'tapul'은 이탈리아어로 원뿔을 뜻하는 'tappo'에서 유래되었다.
- 1550년대의 란츠크네히트 장교 갑옷. 장교인 걸 감안해도, 위의 16세기 초 복장들과 비교하면 많이 중장화되었다. 버고닛과 tapulbrust 흉갑, 팔과 다리 갑옷이 눈에 띈다.
- 1570년대의 tapulbrust 흉갑 복원품. 이런 중장갑 장창병들은 추가수당을 받고 전열의 앞줄에 많이 포진했을 것이다.
이후 1570년대부터 17세기 초까지 유행한 peascod/gänsebauch 양식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프랑스 국왕 앙리 3세(1551-1589)의 민간 복장에서 유래하여 갑옷 설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과, 갑옷에서 먼저 유래하여 민간 복장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이 공존한다. 양쪽 현상 모두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Peascod' 흉갑은 민간복장의 유행시기 때 전 유럽에서 유행하였고, 17세기 '장창병 흉갑'의 표준이 되었다.
- Peascod 흉갑들. 전자는 독일, 후자는 잉글랜드 갑옷이다. 전자는 16세기 중후반의 'almain rivet' 군수용 갑옷에서 유행한 'black and white' 도색이다.
나름 조사하면서 쓴다곤 했는데 구체적인 연대 같은 건 사실 다 틀렸을 수 있음... 16세기 갑주는 19세기 뵈하임 때 정론이랑 현대 학자들이 그시대 영수증 같은 거 찾아내고 그걸 근거로 기존 이론에 대한 반박하는 거랑 너무 헷갈려서...
글고 다음에는 막시밀리안 아머의 특징들 중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지만 엄청 중요한 passegarde(양쪽 어깨에 튀어나온 그거)에 대해서 함 쓰거나... 토비아스 캡웰 책 주문한 거 배송오면 1450-1500년대 장미전쟁기의 잉글랜드 갑주 발달사에 대해 글 써보려고 함... 근데 현실살아야돼서 텀 좀 있을듯...
정보추 - dc App
토비아스 책 개비싸던데 부럽다 막시밀리안 갑옷 글좀 써줘
혹시 월래스 컬렉션 책들도 있음?
Masterpieces 그거나 Joust는 못삼 ㅠ real fighting stuff 중고로 구했는데 ㅆㅅㅌㅊ여서 armour of the english knights만 큰맘먹고 지름 ㅋㅋㅋ
시벌 마스터피스 개비싸서 손가락만 빨았는데... 개부럽다 ㅋㅋㅋㅋ 마스터피스는 지금 600달러가 넘어가네 ㅅㅂ
ㄹㅇ 이게 책 사는사람 거의없어서 적게 비싸게 팜 + 금방절판 + 해외구매 시너지로 가격 미침 ㅋㅋㅋ 로열아머리 유투브나 걍 갑옷 큐레이터들 논문보는게 나을지경...
대리만족이라도 하게 좋은 책들 있으면 나중에 대충 리뷰라도 부탁드립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