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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막시밀리안 아머'의 특성에 대해 알아보려면 무엇이 '막시밀리안 아머'인지부터 정의내려야 한다. Mann에 의하면 '막시밀리안 아머'란 분류가 처음 사용된 건 1840년경인데, 이때 갑옷 분류체계는 무슨 형태적인 특징이 아니라 그냥 '무슨 군주 재위기'를 기준으로 갑옷의 연대만 가지고 싸잡아서 분류하는 거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막시밀리안 아머'도 그냥 '조지 시대', '빅토리아 시대', '에드워드 시대' 이런 거처럼 '막시밀리안 시대'의 갑옷들이면 다 막시밀리안 아머라고 불렀고, 무슨 플루팅이 있느니 흉갑이 동글동글하느니 따위로 분류한 것이 아니다. 정작 막시밀리안 1세가 착용한 갑옷으로 가장 유명한 갑옷은 고딕 갑옷이다...



그래서 19-20세기에는 Boeheim, Oakeshott, Mann 등이 형태를 기준으로 더 체계적인 분류를 시도했는데, Oakeshott은 플루팅이 없거나, 있어도 기존의 '고딕 갑옷'처럼 일일히 요철 양측면을 두드려서 만든 갑옷양식을 '쇼트-존넨베르크 갑옷'이라고 분류하고 플루팅이 있는 같은 형태의 갑옷양식을 '진짜 막시밀리안 아머'로 분류했다.
근데 이건 임의로 분류한 거고, 민무늬 흉갑이 어느 특정 연도 다음부턴 안 보이고 그런 것도 아니라 그냥 '근세 초기 갑주'를 싸잡아서 '막시밀리안 아머' 또는 '초기 르네상스 독일갑주 양식'으로 부르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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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트-존넨베르크'에서 '쇼트'. 로텐베르크 성백 쿤츠 쇼트 폰 헬링엔의 갑주. 현재는 개인 소장품이라 사진이 몇 없는데(그래서 사진도 오크샷이 찍은 거임), 흔히 '막시밀리안 아머'라고 분류하는 독일 갑주의 특징들이 막 보이기 시작하는 과도기(1490년대-1510년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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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넨베르크'를 담당하는 존넨베르크 백작 안드레아스의 갑주. 역시 과도기에 속하는 갑주로, 1506-1511년 사이 제작한 걸로 추정되며, 콜만 헬름슈미트의 극초기 갑주 중 하나다.



위의 '쇼트-존넨베르크'는 다 민무늬 흉갑이지만, 그렇다고 막 임의로 선을 그어서 1515년 전에는 다 민무늬, 1520년 후에는 다 플루팅 이렇게 무작정 분류해도 오류다. 1520년 이후에도 막시밀리안 아머의 다른 요소들은 다 유지하면서 민무늬 흉갑인 경우 많다. 그래서 이런 민무늬까지 다 포함한 걸 광의적인 의미로 막시밀리안 아머라고 부를 수 있고, 그중에서 플루팅을 넣은 걸 좁은 의미에서 '막시밀리안 아머'라고 부를 수 있겠다.



사실 독일어권에서는 이 좁은 의미의 막시밀리안 아머만 물결주름 갑옷(riefelharnisch)라고 따로 부르는데, 어찌보면 이게 그냥 막시밀리안 시대 쓰인 전신갑주 다 싸잡아서 부르는 거보단 정확한 명칭이긴 하다. 대신 riefelharnisch는 위의 쇼트, 존넨베르크 갑주 부류는 포함하지 않아서, 갑옷의 발전사를 보기 다소 힘든 분류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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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하르트 폰 리히텐슈타인의 초상(1512). 초상 부조가 생전이나 사후에 제작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여서 -5년 범위 내 정도를 잡아주는 게 좋은데, 플루팅이 있는 흉갑을 이때부터도 확인할 수 있다.



고로 이 글에서 '막시밀리안 아머'의 특징에 대해 얘기할 때는 형태적 특징(ex. 견갑 모양이 어쩌고, 흉갑 허리부분이 어쩌고)에 대해서만 다루고, 막시밀리안 아머의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인 플루팅에 대해선 많이 얘기하지 않으려 한다. 플루팅이 '안 중요해서'는 절대 아니고, 플루팅을 분류기준에 포함시키면 쇼트-존넨베르크니 riefelharnisch니 하도 분류가 복잡해져서 머리아파지기 때문...




[PS/]


독일 갑옷의 요철은 당대 패션의 옷주름을 그대로 묘사하는 '미적인 모티브'가 가장 컸지만, 실리적인 기능도 존재했다. 솔직히 뭐 칼날 방향을 튼다느니 그런 효과는 적었는데, (1) 투사체 입사각이 90도이지 못하게 해서 쇠뇌 등을 상대로 한 방어력을 증가시키고, (2) 외부 충격을 분산할 때 일종의 철심 지지대 비슷하게 작용해서 더 구조적으로 강한 효과를 냄. 그래서 상대적으로 갑옷 두께를 줄여서 더 얇으면서도 기존과 비슷한 방어력을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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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란츠크네히트 복식을 모사한 콜만 헬름슈미트제 갑주. 1525년경. 옷소매까지 다 강철로 따라한 걸 볼 수 있다. 갑옷도 엄연히 패션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실전적인 목적 없어도 그냥 미적으로 아름답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비싼 갑옷일수록 더더욱. 그렇다고 치장한 갑주는 신줏단지처럼 모셔놓고 그런 건 아니고, 실전에서도 잘만 썼다.



갑주에 관심이 아주 많았던 막시밀리안 1세가 인스브루크에 설립한 갑주제작소에서 개발한 '압판기술(presstechnik)'으로 이 주름을 잡는 작업의 효율이 빠르게 개선되었다고 막시밀리안판 용비어천가 <백색왕>에서 서술하는데, 막시밀리안 개인에 대한 찬양을 거르고 봐도 효율 개선 자체는 사실로 보인다. '고딕 갑옷'에 비해 '막시밀리안 갑옷'의 기록화 묘사도 부쩍 많고, 특히 기사의 전유물이었던 전자에 비해 후자는 흉갑 정도는 흔히 보병 갑주로 여기저기서 보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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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색왕>에 나오는 갑주제작소의 풍경. 판화 제목은 <갑옷제작술의 실력 그리고 새로운 방법의 발명(Die geschicklicheit und new erfunding der harnaschmeisterey)>으로, 맨 왼쪽의 무릎꿇은 인물은 콘라트 조이젠호퍼고 어깨에 손을 올린 귀족은 막시밀리안 1세 본인이다. 오른쪽의 이름 모를 갑옷장이가 망치로 흉갑을 두드리는 중인데, 주름을 넣는 공정으로 추정되지만 확정할 수는 없다.



2019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막시밀리안 흉갑 유물에 현대 포렌직 기술을 적용해서 이 '새로운 공정'의 정체를 추측해 보았는데, 아마 요철 넣기를 기존처럼 (1) 끌으로 쳐서 선을 딴다 -> (2) 튀어나온 선의 양측을 두드리거나 끌로 밀어서 더 도드라지게 한다 -> (3) 요철 옆면의 망치 자국을 두드려서 지운다 의 3과정으로 만드는 대신 '요철넣기 전용 도구를 사용해서 한번에 넣는다'로 간단화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2), (3) 과정에서 일일히 망치랑 끌을 옮겨가며 약하게 수차례 두드리는 대신 한방에 전용 도구로 선을 때려박아 버리면 공정 시간이 훨씬 단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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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에서 주장하는 막시밀리안식 요철의 제작과정. 주요 근거로는 흉갑의 요철 바깥쪽 양측면에 '밀린 자국'이 있다는 걸 제시하고 있는데, 고딕 갑주 요철의 경우엔 갑옷을 밀면서 선을 따는 과정에선 안쪽면에만 도구가 있고, 바깥쪽면의 마무리 공정 때는 망치랑 끌을 대었다가 떼었다가 하지 질질 밀지는 않기 때문에 이런 자국이 없다.



이건 현대에 재현가설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로 이렇게 했을 거다, 란 증거는 없지만, 실제로 이러한 도구를 제작해서 흉갑에 주름을 넣어본 결과 막시밀리안 갑주 주름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그리고 고딕 갑주의 요철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삼각형 모양 마무리가 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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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0년대 초 흉갑에서 보이는 '삼각형' 마무리. 전용 공구의 흔적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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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막시밀리안 갑주의 특성엔 뭐가 있을까? 이걸 이해하려면 막시밀리안 갑주의 유래를 알아야 된다. 막시밀리안 갑주는 기존에 유행한 '고딕 갑옷'이나 '부르고뉴 양식'과는 많이 다르다.
각진 팔꿈치? 잘록한 허리? 가로방향 물결층? 뾰족한 신발코? 좁은 목가리개와 샐릿 투구? 전부 찾아볼 수 없는 특징들이니, 단순히 플루팅 좀 넣었다고 고딕 갑옷의 진화라고 보기엔 어렵다. 애초에 아우구스부르크를 중심으로 히트친 '고딕 갑옷'과는 달리 뉘른베르크랑 인스브루크에서 선도한 디자인이고.



그럼 유래가 어디냐고 하면, 이탈리아 밀라노다. 막시밀리안 1세는 밀라노의 갑옷장이들인 가브리엘레 다 메라테, 프란체스코 다 메라테 형제를 1490년대에 고용해서 부르고뉴 공국 아르브와에 갑주제작소를 설립하도록 계약했고, 인스브루크의 조이젠호퍼 갑주제작소에도 밀라노 출신 장인들을 고용했다.
특히 인스브루크의 경우엔 막시밀리안이 직접 팍팍 밀어주던 궁정갑옷장이(hofplattner) 콘라트 조이젠호퍼가 운영하는 제작소였으니만큼, 헬름슈미트 가문의 아우구스부르크만큼이나 독일 갑옷의 유행을 선도했다.



때문에 이 새로운 '막시밀리안 아머', 즉 르네상스 초기의 독일 갑주는 필연적으로 이탈리아식 갑주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현존하는 '과도기' 독일 갑옷 중 초반 갑옷이랑, 15세기 말의 이탈리아 갑주를 양옆에 두고 비교하면 정말 비슷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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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은 작센 하인리히공의 갑옷(c.1499), 우측은 쿠르타토네 교회에 있던 밀라노/브레치아제 갑옷(c.1490). 샐릿이 아닌 더 머리에 밀착한 아멧을 사용하고, 슬슬 전장에서 대두되는 무기인 장창(1422년 아르베도 전투 후 스위스 아우스추크에서 장창 비율을 대폭 증강)을 마상에서 방어하기 위해 견갑에 추가된 창막이 돌기(passegarde), 둥글둥글한 흉갑 형태 등이 유사하다.



하지만 '막시밀리안 아머'는 단순히 밀라노식 갑주에 요철 좀 넣은 게 아니다. 구체적인 차이점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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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바톤의 형태변화. 신발코가 넓적한 소입 신발(kuhmaulschuh) 모양 사바톤을 사용. 이탈리아 갑주는 사바톤 대신 사슬 덮개를 쓰거나 아예 가죽신으로만 때우는 편이었고, 고딕 갑옷은 뾰족한 신발코가 특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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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싯의 형태변화. 이탈리아식 후기 태싯은 삼각형꼴이었고, 고딕 갑옷은 태싯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해 막시밀리안 아머의 태싯은 대개 직사각형 형태로 허벅지에 꼭 맞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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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틀릿. 대개 이탈리아식 벙어리장갑보단 고딕 갑옷처럼 더 손가락 하나하나에 신경쓴 정밀한 건틀릿이 선호되었다. 그런데 갑주 부품 중에서 제일 바꿔끼우기 편한 게 투구 건틀릿 사바톤이라 이건 사실 추적하기 어렵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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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터의 형태변화. 고딕 갑주든, 밀라노식 갑주든 쿠터를 팔꿈치쪽에서 튀어나온 형태로 크게 제작했는데, 바깥쪽이 줄어 오히려 팔오금 쪽이 더 커진 걸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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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갑의 형태변화. 비대칭적이긴 한데 이탈라식으로 과장된 비대칭은 아니고 왼쪽이 심하게 크지도 않다. 또한 상박갑으로 넘어가는 부분에 관절부(lame)를 도입했다. 오른편 견갑에는 랜스를 겨드랑이에 끼기 좋도록 움푹 들어간 부분이 있는데, 밀라노식 갑주에서도 존재한 설계이긴 했지만 1500년대 갑주에서 더욱 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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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갑의 형태변화. 일단 흉갑이 통짜다. 플래커트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바로 폴드로 연결된다. 아래 얘기할 목 방어구의 변화 때문에 흉갑이 기존의 목선보다 훨씬 아래에서, 깔끔하게 말려올라가 정돈된 가장자리 형태로 끝난다. 목걸이(collar)를 강철로 묘사하거나 IHS MARIA(예수 마리아) 등 각종 문구를 상단에 새겨넣어 장식한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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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방어구. 흉갑 위에 장착한 비버가 아닌, '흉갑 아래'에 장착한 고짓이다! 매우 매우 중요한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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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구의 변화. 아멧도 썼는데 구조가 미묘하게 다른 close helm을 갈수록 더 많이 썼고, 기존 바이저와 함께 새로 나온 '풀무형 바이저'도 썼다. 풀무처럼 주름잡힌 면갑에 긴 시야용/통기용 슬릿들이 뚫린 게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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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이런 아멧이나, 새로 대두된 close helm 형태도 쭉 많이 썼다.



결론적으로, 막시밀리안 아머는 'alla tedesca', 즉 독일 소비를 위해 제작된 밀라노식 갑옷의 후예로 볼 수 있겠으나, 독자적인 면모 또한 보이기에 밀라노식 갑옷의 아주 기초적인 개념만을 기반으로 한 독일 갑옷장이들의 새로운 설계로 보아도 될 것이다.



아래는 뭔가 글 짧고 허전해서 넣는 '막시밀리안 아머' 과도기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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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차례대로; 작센공 하인리히의 갑주(c.1499, 독일 또는 네덜란드), 'Barfus' 갑주(c.1500, 뉘른베르크),
촐레른백 아이텔 프리드리히 3세의 갑주(c.1505), 'W' 갑주(c.1505/1510),
마테아스 도이치의 갑주(c.1505/1510, 란츠후트), 존넨베르크백 안드레스의 갑주(c.1506/1511, 아우구스부르크),

빌헬름 폰 보름스의 갑주(c.1510, 뉘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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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막시밀리안 전신갑주 한 벌(c.1515-25)의 구성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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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립하면 일케됨.




이젠 진짜 당분간 퇴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