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에도 전립은 있었음. 세종실록에 "금후로는 성문 밖에 거둥할 때에, 사위(四衛) 군사는 강무하는 예에 따라 전립(氈笠)위에 작은 표기(標旗)를 꽂는 것을 항식으로 하라." 라는 기록이 있는거 보면 그때도 병사들이 꽤 착용한 모양.
익명(222.237)2022-04-07 00:47
답글
그럼 전립은 무관이 아니라 병졸들이 먼저 썼다가 조선 후기부터 무관들도 쓰게 된 거임? 트렌드라는건 보통 위에서 아래로가 일반적일텐데 반대네
익명(223.38)2022-04-07 05:17
답글
ㄴ 명나라로 가는 사신이나 삼군도통사에게 전립 하사한 기록이 있는거 보면 조선 초에도 전립은 여행이나 전투하는데 쓰기 좋은 실용적인 모자 취급이었던거 같음. 어디서 읽었는지 출처는 까먹었는데 무관들이 전립 쓰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함. 일단 재료부터가 돼지털을 이용해 만든 모자였고, 무관들의 전립엔 추가로 공작깃과 청깃이 장식되긴 하지만 병졸의 전립이랑
익명(222.237)2022-04-07 18:42
형태적으로 별 차이가 없었거든. 게다가 전립은 마부같은 낮은 계층의 사람들도 착용하던 모자라 조선 후기 일부 무관들은 모전립 안쓰고 죽전립 같은걸 쓰기도 했던 모양. 개인적인 추측인데 아마 무관이나 양반들은 이런 점 때문에 전립 착용하는걸 꺼리는 풍조가 있던거 같음. 다만 임란을 거치면서 조정에서 전립이나 소모자 같은 실용적인 모자 착용을 권장하였고
익명(222.237)2022-04-07 18:49
한동안 무관들이 잘 쓰고 다니다 조선후기에 다시 모전립 대신 죽전립을 쓰는 경우도 나타나고 그랬던거 같음.
익명(222.237)2022-04-07 18:51
서북 사람들이 많이 전립(氈笠)을 썼으니 대개 오랑캐 풍속에 가까운 때문이었다. 무오년 요동으로 들어가 전쟁할 때에 국내에서도 혹 전립을 쓰는 자가 있고, 그것을 서로 본받아서 사방으로 번지게 되었다. 정묘호란(丁卯胡亂) 때에는 사대부도 혹 썼으며 무인들은 대관(大官)이라도 모두 전립을 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금수(allalaallala)2022-04-07 18:59
답글
연려실기술에서 인용한 야곡삼관기 내용인데 다른 기록들 보아도 넓게 퍼진건 17세기라고 보는게 맞을듯. 이전에는 패랭이를 주로 쓴듯함
조선초기에도 전립은 있었음. 세종실록에 "금후로는 성문 밖에 거둥할 때에, 사위(四衛) 군사는 강무하는 예에 따라 전립(氈笠)위에 작은 표기(標旗)를 꽂는 것을 항식으로 하라." 라는 기록이 있는거 보면 그때도 병사들이 꽤 착용한 모양.
그럼 전립은 무관이 아니라 병졸들이 먼저 썼다가 조선 후기부터 무관들도 쓰게 된 거임? 트렌드라는건 보통 위에서 아래로가 일반적일텐데 반대네
ㄴ 명나라로 가는 사신이나 삼군도통사에게 전립 하사한 기록이 있는거 보면 조선 초에도 전립은 여행이나 전투하는데 쓰기 좋은 실용적인 모자 취급이었던거 같음. 어디서 읽었는지 출처는 까먹었는데 무관들이 전립 쓰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함. 일단 재료부터가 돼지털을 이용해 만든 모자였고, 무관들의 전립엔 추가로 공작깃과 청깃이 장식되긴 하지만 병졸의 전립이랑
형태적으로 별 차이가 없었거든. 게다가 전립은 마부같은 낮은 계층의 사람들도 착용하던 모자라 조선 후기 일부 무관들은 모전립 안쓰고 죽전립 같은걸 쓰기도 했던 모양. 개인적인 추측인데 아마 무관이나 양반들은 이런 점 때문에 전립 착용하는걸 꺼리는 풍조가 있던거 같음. 다만 임란을 거치면서 조정에서 전립이나 소모자 같은 실용적인 모자 착용을 권장하였고
한동안 무관들이 잘 쓰고 다니다 조선후기에 다시 모전립 대신 죽전립을 쓰는 경우도 나타나고 그랬던거 같음.
서북 사람들이 많이 전립(氈笠)을 썼으니 대개 오랑캐 풍속에 가까운 때문이었다. 무오년 요동으로 들어가 전쟁할 때에 국내에서도 혹 전립을 쓰는 자가 있고, 그것을 서로 본받아서 사방으로 번지게 되었다. 정묘호란(丁卯胡亂) 때에는 사대부도 혹 썼으며 무인들은 대관(大官)이라도 모두 전립을 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연려실기술에서 인용한 야곡삼관기 내용인데 다른 기록들 보아도 넓게 퍼진건 17세기라고 보는게 맞을듯. 이전에는 패랭이를 주로 쓴듯함
임진왜란때는 병졸들도 전립 거의 안썼을거라는 얘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