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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제배갑, 줄여서 면갑. 조선의 갑옷으로서 삼베를 여러겹 겹쳐서 만든 방탄 조끼이다.

세계 최초의 방탄조끼라고도 불리지만 사실 방탄복의 아이디어는 옛날부터 나왔다.

흥선대원군의 명령으로 고종 초 1867년에 개발되었고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군과의 전투에서 사용되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와 싸우며 서양 총기의 강력한 위력에 주목한 흥선대원군은 신병기를 개발하게 되는데, 이때 김기두와 안윤(또는 강윤)이란 사람이

좋은 아이디어를 낸다.


삼베를 겹쳐서 한번 방탄복을 만들어보자는 것. 프랑스식 조총으로 실험해보니 12겹의 삼베를 겹치니 총알이 뚫지 못하게 되었다.

만약의 경우를 위해 1겹을 더 추가해서 만든 것이 바로 면제배갑.(문제는 병인양요 다음해 프랑스는 후장식 샤스포 라이플로 화기를 바꾼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질긴 섬유를 사용하여 여러 겹의 섬유들을 겹쳐서 탄환의 운동에너지를 막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관통성 무기들을 막기 위해 사용했던 직물들 중 가장 성능 좋고 많이 쓰였던 것이 바로 비단인데,

몽골군은 비단옷을 입고 싸워 화살이 잘 관통하지 못했고, 서양에서는 권총 결투를 할 때 비단 갑옷을 입어 몸을 보호하는 것이 관례였다.


왜 면제배갑 만들 때 삼베보다 좋은 비단을 안썼느냐고? 여긴 조선이다.

종이갑옷을 제식갑옷으로 쓸 정도로 예산없는 나라에 뭘 바람.(성능이 나쁘진 않지만.)


면제배갑의 형태는 총 길이 85cm, 무게 3.5kg(복구품)으로 생각보다 가벼웠다.

양 겨드랑이 부분을 깊게 파서 활동하기 편하게 만들고, 어깨 좌측에 뚫어놓아 매듭단추로 입고 벗게 되어있다.

양쪽 옆에도 두개의 끈으로 매게 되어 있음.


나름 편의성을 고려한 디자인이지만, 문제는 오질나게 덥다는 것. 삼베를 13겹이나 겹치고, 투구까지 쓰면 딱 더워뒤지기 알맞는 스타일이다.

통풍 구조도 만들어놨지만 저 투구 쓰면 말짱 헛것. 게다가 하필이면 신미양요가 6월에 일어났다.

또 종이갑옷과 마찬가지로 소재가 불에 약하다보니 병신떡밥에도 활활 잘타는 갤럼들처럼 존나 잘탄다.

당시 미군은 대포공격 중 파편 맞고 불타는 조선병사를 봤다고 한다.


또 다른 단점으로는 비나 강 건널 때는 면제배갑이 물을 흡수하여 기동성 저하를 유발하기도...


총탄 하나 막기위해 많을 것을 희생한 갑옷이다.(다만 현대 방탄복도 겨울 아니면 더운건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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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제품은 요렇게 생겼다.


이후, 신미양요 당시 미군을 막기 위해 병사들에게 배급되었다. 하지만 조총과는 비교도 안되는 서양 화기를 막는데는 당연히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점점 더 발전하는 서양 화기들 때문에 발전이 중단되게 되었고,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기며 사라지게 된다.


그래도 미군에게는 총에도 굴하지 않고 용맹하게 싸우는 조선병사가 꽤나 인상이 깊었는지,

1893년 시카고 엑스포에서 한국관 메인 전시물이 바로 이 면제배갑이였다.


참고로 유교를 믿는 조선에서 주술적인 의미가 있는 부적문양이 적혀져있는데,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우월한 서양무기에 대항해야하는 병사들의 사기진작 용도로 추정된다. 사실 다른 나라의 갑옷들에도 이런 주술적 상징 넣는 일이야 흔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