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팩트) 조선수군(사병)은 갑옷을 못입었다.
홍삼마일드(hongsamild2)
2022-08-0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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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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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시대에 뭔 갑주를 입고 오른 전례가 없어 ㅋㅋㅋ난중일기에 본인 손으로 직접 총맞은 상처에 갑옷 입어서 힘들다 라고 썼는데 이건 뭔데 그럼
사병 병신아 사병
<난중일기> 임진년 3월 6일자 <맑았다. 아침을 먹은 뒤 출근해 군 기물을 점검했다. 활, 갑옷, 투구, 통아, 환도가 깨지고 헐은 것이 많고 기준에 미달하는 것들이 매우 많았다. 색리, 궁장, 감고 등을 논죄했다. 晴. 朝食後出坐. 軍器點閱 弓甲兜鍪桶兒還刀 則多有破毁之物 不成樣者甚多 色吏弓匠監考等論罪.>
왜시발 니 보고싶은것만보고 믿고 싶은것만 처믿는데
그래서 시발 저 난중일기가 사병들 갑옷이냐고
얜 아직도 이러고 있네. 병신아 수군이 애초에 노젓는 격군도 수군으로 포함되고, 전투 병력들도 수군으로 치는데 격군도 뭐 갑옷 줄거냐?? 그리고 시발 기물 점검을 장교만 쳐한다고 생각함?? 미필이냐?
동국신속 삼강행실도에 있는 갑옷입은 애는 그럼 장교인데 직접 전투에 나서서 활 댕기고 있겠냐??
http://www.choongmoogongleesoonsin.co.kr/sub_10/board_view.asp?strpage=&boardidx=527&boardtype=11
그런데 조선 후기 전선 1척과 사후선 1척을 운영했을 당시에 작성된 함평현 읍지에서 <수군기물 목록>에는 함평현이 수군용으로 철갑과 투구 50벌씩을 보유했다고 적혀 있다. <영암읍지> 진보鎭堡 편에는 당시 영암현 관할구역에 위치한 이진진과 어란진에 각각 철갑과 철 투구 47벌씩 비치돼 있다고 기록됐다. 어란만호진은 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을 운영하고, 이진만호진은 여기에 방선 1척이 더해졌는데도 철갑과 투구 보유량은 함평현보다 오히려 더 적다. 그런데 어란진은 피갑주皮甲冑, 즉 가죽찰갑으로 만든 갑옷과 투구 20벌을 추가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진도군은 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을 운영했는데 철갑과 철 투구 69벌에 종이로 만든 엄두, 엄심갑 각 4벌을 보유했다.
철갑 47벌에서 69벌이라면 판옥선 상장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수졸이나 병선 등 소형 함선, 혹은 사후선에서 노를 젓는 격군 대부분이 입을 수 있는 수량이다. 여기에 피갑주 20벌이나 엄심갑 등이 추가되면 기라졸과 사공 등 비전투원을 빼면 거의 100% 착용 가능한 셈이다. 참고로 판옥선 상장 안에서 충분히 보호받으며 노를 젓는 격군 같으면 갑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
조선군의 갑옷 부족은 실록에도 두고두고 기록되어있었을테니 '모두' 입고 전투했을리는 당연히 없을테지만, 니 주장대로 무조건 안입고 싸웠다 라는 건 근거가 부족하다고 등신아. 조선군도 대가리가 있는데 장교들만 갑옷입고 병사들은 왜 안입겠음?? 직접 싸우는 건 병사들일텐데 걔넨 뭐 피부가 철갑이라 안입었겠냐? 있으면 입고 없으면 못입는거지.
그리고 니가 들고온 그림만 봤을 경우엔 일본 애들도 갑옷 안입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고. 아예 입은 애들이 0인데.
전선은 판옥선이고, 전투원이 60명 정도라고 함. 사후선은 비무장선이니 수군기물목록 함평현의 갑옷은 전부 전선에서 썼다는 거고 대충 80%는 갑옷을 입었다는게 됨.
병선과 방선은 무장하는 걸로 알고 있음. 영암읍지를 기준으로 할 때 전투원 수를 대충 판옥선 60명, 방패선 30명, 병선 20명 정도로 두면 이진만호진은 대충 50%, 어란만호진은 77% 정도가 입었다고 보면 됨
진도군도 대충 비슷하니, 해당 자료가 평시 기준이긴 해도 갑옷 착용률은 50%~80%로 폭이 많이 넓다는 걸 알 수 있음
사병 비율로 하면 조금 더 떨어지겠지만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거임. 임진왜란 때는 전시라 노획물도 쓰고 하면서 거의 대부분이 갑옷을 입긴 했을 것
다만, 그게 다 전신을 보호하는 갑주이진 않겠지
흔히 생각하는 찰갑 두정갑 같은 금속 갑옷 비율은 극히 낮겠지만 지갑 같은 건 착용 비율 꽤 높지 않을까 싶더라
갑갤에 이거 모르는 놈없을듯
ㅈㄴ많음
1600년대 거북선도 보면 갑옷 입은 조선군과 안 입은 조선군이 섞여있음 그리고 위의 난중일기 기록 보면 갑옷도 있는 것 같은거 같은데 그냥 있는 놈 없는 놈 섞였겠지 - dc App
말그대로 전후에 사병한테 "보급"이 안된거지 임진왜란때마냥 전시는 또 모름, 흉갑이나 투구는 노획해서 쓴 기록도 있고 전시 특성상 최소 엄심이라도 구해서 썼을듯
그리고 저런 공식기록에서 말하는 갑주는 제대로된 찰갑이나 두정갑을 말하지 엄심같은 부분적 갑옷은 갑주로 안침
저거 뒤에 또다른 기사 나오는데 격군은 갑옷을 입을 일 없으니 자기가 잘못 알았다는 논지로 해명한 기사 있음 단장취의하면 수군들 갑옷을 싹다 벗길수도 있는거임 찾아보셈
좀 찾아봤는데, 일단 '반드시 갑옷을 입혀야 한다'는 아닌 것 같음.
그런데 삼포왜란, 사량진왜변, 을묘왜변을 거치면서 방어에 투자하기도 했을 거고
중간중간 전투 치르면서 노획도 해서 썼을 거임
그러다 또 전투 뜸해지면 수리도 못 할 물건은 폐기하고 했겠지
그러니까 조선 전기 기준으로는 평시에는 갑옷을 거의 안입다가 전란을 거치면서 입는 놈들이 늘었다가 또 줄었다 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움
그리고 2010년에 일반 사병은 납의(누비옷인데, 군용으로 특별히 만든 물건 같음)를 입었을 거고 계급 올라가면서 엄심갑, 두정갑과 찰갑이 더해지는 식이었다는 연구결과를 담은 기사가 있었음
비변사등록에서는 철갑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 기사 내용을 참고해서 한지나 가죽을 가지고 만든 엄심갑 정도는 계급 따라 보급도 했을 거라고 보는 게 맞는 듯
물론 조선전역해전도마냥 전원 똑같이 두정갑 둘둘 하고 있지는 않았을 거임
요약하면 갑판에서는 기본적으로 두꺼운 납의를 기본으로 계급 따라 엄심갑과 찰갑, 두정갑을 입었을 것. 시기에 따라 구성비가 변하고 노획물도 추가될 수 있음.
저 그림에는 왜군도 다 유카타 쳐입고 있는데 뭔ㅋㅋㅋ
뭐 과거 사람은 다 바보같고 니만 똑똑하고 잘난거 같냐? ㅋㅋㅋㅋ 전쟁하러 가는데 군대에서 갑옷 보급 안해도 사비 털어서라도 갑옷 비슷한거 만들어 입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