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과 급제자가


1618년 2200명


1620년 3000명


1621년 4031명


~1676년때면 17652명을 무과로 뽑음


무과 시험엔 기본적으로 기사, 기창이 있어서  말, 갑옷은 필수


당연히 고위급 무관 티오가 적기에 저 뽑은인원들은 대다수가 한량으로 살거나 하급무관에서 일생을 보냄


= 기병으로 이루어진 상비군



대신 그만큼 갑사가 소멸되고 갑주있는 보병이 사라진거같음


조선초에는 군역진 양민들이 갑주를 직접구해오도록 되어있지만 


중후기때부턴 중앙정부에서 갑옷 제작하고 보급하는거보면 


양민 보병들의 무장은 빈약해지고 무장상태 좋은 무관들 숫자를 늘린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