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조선시대 두정갑
앞뒤 길이가 다른 특이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특히 앞길이가 111cm, 뒷길이가 91cm인데
앞쪽 기장은 정충신 갑옷(일반적인 두정갑)이랑 비슷하고
뒤쪽 기장은 정지 장군 경번갑보다 20cm 정도 긴 길이다
이 애매한 앞뒤 기장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렇다고 뒤를 짜른 것 같지도 않음
왜냐하면 찰이 붙은 면적의 길이도 앞뒤가 다르거든
즉 원래 생산될 때부터 이런 형태였단 얘기임
그럼 대체 왜 굳이 앞뒤 기장을 다르게 디자인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두정갑 기장이 사타구니 아래까지만 닿으면 뽀대 안 난다고
갑찰 붙은 면적이랑 별개로 그냥 (천쪼가리만이라도) 발목까지 닿게 디자인하던 게 조선군 아니던가?
앞뒤가 다른 건 분명 도저히 뽀대가 난다 보기 어려운 형태다
이유가 있어서 뒤쪽에 갑찰을 적게 붙였다 해도
천쪼가리 기장만은 앞뒤가 같게 만드는 게 상식적이다
위 갑옷이 미스터리한 점은 이것뿐만이 아님
심지어 뒤트임도 없다
포형 두정갑은 뒤트임이 있어야 정상이다
찰갑이나 체인메일이야 어느 정도 신축성이 있다지만
두정갑은 ㄹㅇ 그냥 코트나 다름없는데
기장도 긴데 트임까지 없으면 아예 움직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물론 옆트임이야 있지
뛰어다닐 땐 다리를 앞뒤로 가동해야 되는데 뒤트임이 없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뛸 때마다 뒤쪽 장포가 존나 걸리적거릴 텐데...
그래서 발상의 전환을 해본 거임
만약 뛰어다녀야 되는 보병의 갑옷이 아니었다면?
그렇다
기병이면 말이 달라지게 됨
저게 기병이 입던 갑옷이라 생각하면 모든 의문이 풀리게 된다
조선시대의 승마복인 도포
옆자락과 뒷자락이 분리되어 있는 디자인이다
그리고 말을 탈 때 옆자락은 말의 양옆에,
뒷자락은 말의 엉덩이 쪽 등에 위치하게 됨
자, 뭔가 생각나지 않음?
그렇다
저 맨 윗짤의 두정갑도 앞쪽의 두 장포가 도포의 옆자락,
뒤쪽의 장포가 도포의 뒷자락에 해당하게 됨
말을 탈 땐 앞쪽의 양쪽 장포가 말의 양옆을 덮고
뒤쪽의 장포가 말의 뒤쪽 등을 덮는 거임
그럴싸하지 않음?
그럼 이 이상한 디자인도 설명이 됨
우선 말을 탈 땐 어떻게 타지?
양다리를 굽혀서 똥 싸는 듯한 자세로 말 등에 앉는다
이때 양다리의 안쪽은 말에 접촉하게 된다
그리고 양발은 등자에 꽂아 거의 움직이지 않음
(허벅지 트월킹으로 말 조종하는 게 전부)
즉, 기병은 하체 부분에 그리 큰 장갑을 요구하지 않는 거임
보병이랑 다르게 말이지
보병은 뛰어다녀야 돼서 갑상이 부채처럼 펴져야 됨
뛰어다닐 땐 다리의 가동범위가 넓기 때문에
갑옷의 하체 부분이 넓은 범위를 커버쳐줘야 되기 때문임
명광개나 일본 갑옷이 그런 구조잖슴 ㅇㅇ
아니면 고구려 갑옷처럼 아예 찰갑 바지를 입던가
하다못해 조선 두정갑처럼 하체 부분의 품이 넓던가 해야 됨
하지만 기병은 그렇지 않지
일단 양다리의 안쪽이 말에게 확실히 밀착하고 있고
사실상 앉아 있는 상태라서 다리가 거의 안 움직이기 때문에
말에 꿇어앉은 두 다리 위만 딱 커버치면 됨 ㅇㅇ
뒤쪽은 커버칠 필요가 없단 거지
뒤쪽은 딱 엉덩이만 가리면 됨
뒤쪽 장포 천쪼가리도 말 탔을 때 쓸데없이 걸리적거리니 짧게 만든 게 명백하다
참고로 다른 문화권의 기병 갑옷도 비슷한 형태임
청나라의 갑옷임
뒤쪽은 딱 엉덩이만 가리고 있고
대퇴갑은 앞쪽의 허벅지만 덮고 있다
맨 첫짤의 두정갑도 실제론 말에 타면 이런 모양일 거임 ㅇㅇ
뒤쪽의 짧은 장포는 딱 엉덩이만 덮고
앞쪽의 긴 양쪽 장포는 말에 탔을 때 양쪽으로 벌어져서 허벅지를 덮게 되는 구조다
즉, 보면 알겠지만 기병 갑옷이라 생각하는 순간 의외로 존나 실용적인 구조란 게 느껴질 거임
그럼 여기서 궁금해질 사람도 있을 거임
저렇게 할 바엔 포형갑옷 말고 청나라처럼 상하분리형 쓰는 게 더 효율적 아님?
이유는 간단함
상하분리형은 포형갑옷보다 더 무겁거든 ㅋ
청나라 기병이랑 조선 기병은 운용개념이 다름
청나라 기병은 창기병이 주력임
근접전을 주로 벌이는 딜탱이란 말임
즉 고구려 개마무사나 윙드후싸르같은 중갑기병이 대부분이다
그런 만큼 스피드보단 방호력에 치중한 형태다
반면에 조선 기병은 세조 이래 거의 100% 궁기병밖에 없었다
쉽게 말해서 스피드가 중시되는 기동형 원딜이다
즉 경기병이 대부분이었단 얘기임
이쪽은 반대로 방호력보단 스피드에 치중한 형태다
참고로 전세계 어느 문화권이건 궁기병에겐 최소한의 방호력만 보장하는 경장갑을 입힌다
말의 스피드를 살리기 위해선 경량화가 생명이었거든
참고로 고구려도 창기병 말고 궁기병은 씹경장갑 입었다
과장 좀 보태서 수렵도 복장에 흉갑 하나 입은 수준임
조선 궁기병은 저거보단 방호력이 우수한 갑옷을 입었단 얘기지
즉 청나라의 중기병 갑옷이 경기병 스타일로 가볍게 바뀐 버전이 첫짤의 갑옷일 거라 본다
물론 저게 청나라 갑옷에서 나왔단 건 아니고 비유하자면 그렇단 거
결론만 말하자면
보병은 뒤트임이 있고 앞뒤 기장이 같은 두정갑을,
기병은 뒤트임이 없고 뒤쪽 기장이 앞쪽보다 짧은 두정갑을 입었을 거라 본다
3줄 요약
1. 라이프치히 박물관 소장 조선 두정갑은 뒤쪽 기장이 앞쪽보다 짧음
2. 그건 기병용 갑옷이기 때문으로 추정됨
3. 말 타면 엉덩이랑 허벅지 바깥쪽만 덮으면 되니까 말임
(+ 쓸데없는 부분은 과감히 없애서 경량화한 거임)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C%82%BC%EA%B0%91%EC%B0%BD(%E4%B8%89%E7%94%B2%E6%A7%8D)
세조 시절에도 삼갑창이라고 해서 마상기창馬上騎槍으로 대련했고, 기록 보면 조선 초에는 기각掎角이라고 맞돌격하는 일종의 주스팅도 연습했다고 추정할수 있는 부분이 있읍네다.
근데 왜 임진왜란 때쯤엔 경기병밖에 안 남게 된 거지
조선은 성종 때 병사 수가 피크를 찍었다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함. 이와 더불어서 오랫동안 큰 전면전이 없다보니 군사력의 질 역시 같이 하락하기 시작함. 특히나 중기병뿐만 아니라 칼들고 육박전 벌이는 단병접전에 대한 질이 급격하게 하락해서 임란 초반에도 이거에 심하게 털려나갔고, 항왜를 써먹어서 보충하는 식의 꼼수로 급하게 땜빵하기도 함. 왜 이렇게 질이 하락했냐?? 돈 문제지 뭐. 사람 입고 먹고 싸고 하는 건 다 돈인데. 밥먹고 활만 쏴제끼던 조선에선 중기병보다 궁기병 키우기가 더 쉬웠거든.
궁기병이 창기병에 비해 3:1정도로 많았지만 그렇다고 얘들이 경기병이란 소리가 아님, 애초에 정주민족 기병은 직업군인인데 기창 기사 다 하는애들이고 마상무예 익힐 경제력또한 되던애들이라 경장할 이유가 없음
ㄴ내가 알기론 원간섭기 이후엔 몽골의 스웜전술 영향으로 기동력 살리는 방향으로 바뀐 걸로 아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갑옷하나 입는다고 기동력에 큰영향은 없음, 또 기마사격을 상대 코앞까지 가서 해야하는데 갑옷없으면 접근하기도전에 다 쓸려나감 공들여 키운 전문군인들이
ㅇㅎ
왜냐하면 갑사들이 칼쓰고 창쓰는게ㅜ힘들어서 하기 싫어했으니까.
온갖 뇌피셜로 점철된 개소리
청나라 기병이 창기병이 주력? ㅋㅋㅋㅋㅋㅋㅋ 도대체 이 뭐 ㅋㅋㅋㅋㅋ 전혀 이상하지도 않고 갑옷이나 의복쪽에 관심있으면 바로 아는 사실을 장황하게 써놨누
저거 다 아는 사실이었음? 관련된 글을 한번도 못 봐서 한참 동안 고민해서 추측한 건데
청나라도 궁기병을 적극적으로 썼음. 이건 그냥 그 당시 유목 애들이면 기본적인 패시브로 돌리던 거고, 어느 특정 병종만 몰빵 스팸하는 건 게임에서나 가능한거지 실제론 그렇게 굴렸다간 망함.
그래도 조선보단 창기병의 비중이 컸던 건 맞지
팩트: 청나라도 궁기병이 주력이였고 걔들 갑옷도 그것때문에 궁술에 맞춰서 발전했다
조선도 청나라 스타일 갑옷을 모방하여 같이 병용했는데 ㅋㅋㅋㅋ
저건 전기 유물같음. 그리고 조선 후기는 오히려 마상육기같은 거 도입해서 중갑기병 편제가 부활한 시기임
걍 앞쪽이 짧은건 갑상을 따로착용해야되니까 저렇게 비워둔거 아님? 그냥 딱 갑상위치인데
사실 앞부분은 괜찮은데 뒷부분이 긺
궁기병관련은 그냥 완전 자기 뇌피셜이네 궁기병이 경장이란건 몽골같은 갑옷보다 말이 많은 유목민족 한정임
ㅇㅎ
동양권은 궁기병 중기병 구별이 명확하게 딱딱 나눠지지 않는 경우가 많음. 당장 조선 후기 기병은 적이 근접하기 전에는 보병이랑 같이 조총 쏘다가 적이 근접하거나 후퇴하면 편곤 들고 들이박는 역할임.
즉 청나라=중기병 조선=궁기병 이런 식으로 구별이 안 된다는 거임
호오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