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0대, 만토바 후작 프란체스코 2세 곤차가는 오스만 술탄 바예지드 2세랑 활발히 교류했는데, 사절단의 선물 품목엔 이탈리아제 갑옷도 포함됨. 이건 1363년 이후 반복적으로 선언된 교황칙서 In coena Domini 중 '신앙의 적'에게 무기 수출금지 조항을 정면으로 어기는 행위였음. 이 선물들을 들고 가는 만토바 사절들은 베르나르디노 미살리아, 알레시오 베카구토, 조르조 디 세르비아 등이었는데, 전자는 유명한 갑옷장이 가문원이고 후자 둘은 만토바 후작 휘하의 군인이었음
오스만은 만토바에서 갑옷을 사절단 예물로 받을뿐만 아니라, 만토바 중간상인을 거쳐 이탈리아제 갑옷을 구매하기도 함. 1504년, 볼로냐의 학자 플로리아노 돌포는 프란체스코 후작에게 볼로냐의 벤티볼리오 가문에서 일하는 서기관 크리스토포로 델 포지오가 후작을 비난했다고 편지를 썼는데, 비판받은 행동이 이 '금지된' 갑옷 거래였음.
그럼 구체적으로 무슨 갑옷을 받았을까? 1492년 4월, 프란체스코 후작의 서기관은 술탄이 작년 미살리아가 들고 간 코라치나(corrazine ; 큼지막한 철판들을 포함해 엮은 브리건딘) 몇 점에 크게 만족했고, 더 많은 코라치나와 예닐곱 마리의 노새를 요청했다고 기록함. 1492년, 미살리아와 베카구토는 술탄이 요청한 바에 더해 파샤들에게 선물할 코라치나 및 판치에라(panciere ; 배 갑옷)를 들고 감.
짤같은게 14-15세기 코라치나, 이건 밀라노 카스텔로 스포르체코 소장품
1492년 10월 26일, 만토바 후작에게 고용된 갑옷장이 미켈레토 델레 코라치네는 고용주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후작 각하를 위해, 그리고 대(大) 튀르크(=술탄)을 위해" 노고를 다했다고 서술함. 또다른 편지에선 "예니체리 장교 레이날도"가 미켈레토제 코라치나 한 점을 발주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장교는 1492년에 미살리아 사절단을 호위해 만토바로 왔다가 갑주공방에서 패싸움을 벌인 기록이 확인됨.
이탈리아제 갑옷을 수령한 건 바예지드뿐이 아니었던 걸 또 확인할 수 있는데, 1494년에 프란체스코는 '안드레아'라는 인물을 오스만령 블로레로 파견해서 산자크베이인 무스타파 베이에게 "백 두캇이 넘게 나가는" 판치에라를 발주하고, 흉갑과 고라치니(gorazini ; 고짓) 2-3점을 만들기 위한 신체측정 자료를 송부함. 베네치아랑 최전선에 놓인 쉬코드라의 산자크베이 피루즈 베이도 만토바를 통해 "이쪽 지방에선 얻거나 구매할 수 없던" 북이탈리아제 갑옷을 구매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프란체스코 후작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며 갑옷 거래의 확대를 의논함.
이탈리아 갑옷장이들이 쓰는 강철은 오스만보다 탄소 함량이 낮아서 통짜 곡면으로 성형하기 쉬웠고, 열처리를 거치면 강도도 쓸만했기 때문에 몸에 꼭 맞는 판금갑을 만들지 못한 오스만 쪽에선 북이탈리아제 흉갑이 인기였다고 함. 특히 1490년대 초엔 프랑스의 샤를 8세가 성전을 감행할 거라고 선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유럽과 일전을 각오한 오스만은 좋은 갑옷을 적극적으로 구함.
Cevizli, Antonia Gatward. “More Than a Messenger: Embodied Expertise in Mantuan Envoys to the Ottomans in the 1490s.” Mediterranean Studies 22, no. 2 (2014): 166–89.
Cevizli, Antonia Gatward. “Portraits, Turbans and Cuirasses: Material Exchange between Mantua and the Ottomans at the End of the Fifteenth Century.” Global Gifts: The Material Culture of Diplomacy in Early Modern Eurasia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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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이 사다 쓴 유물사진은 없음? 뭐 장식도 자기들 식으로 했을거같은데